“임시완 은퇴 연기” 첫 코믹 열연에 시청자들 호평…“토종 충청인 이선빈에 사투리 연기 큰 도움 받아”
은퇴를 결심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만큼 사정없이 망가졌고, 정말 신이라도 내린 것처럼 열정적으로 작품에 임했다. 매회 예고편부터 방영 후기까지 캐릭터와 혼연일체 된 그의 짤(짧게 가공한 영상 콘텐츠)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들썩이게 하길 여러 차례. 그의 팬을 포함한 많은 시청자들을 즐거운 경악과 혼란 속에 빠트렸던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시대’를 뒤로하고 ‘온양 찌질이’ 장병태를 떠나 배우 임시완(36)으로 다시 돌아온 그를 만났다. 누구라도 한 대 쥐어박지 않고서는 못 견딜 정도로 찌질하지만 제 나름대로의 정의가 있고, 그래서 더 미워하지 못한 채로 나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어느샌가 ‘감겨버리는’ 이 캐릭터에겐 임시완 역시 더할 나위 없는 애정을 쏟아냈다.
“병태는 애초에 대본 자체가 사랑 받지 않을 수 없게끔 짜여 있었어요. 이런 ‘언더도그’(Underdog·경쟁에서 열세에 있는 약자) 정서는 응원 받기가 굉장히 좋으니까요(웃음). 누구보다도 부족한 모습으로 시작하면 그 사람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일반적인 사람의 심리인 것 같아요. 그래서 병태가 더 사랑스러워 보이기에 유리했던 것 같고, 애초부터 그런 설정이 잘 됐던 거죠. 응원을 받을 수 있는 포지션이니까요(웃음).”
1989년 충청남도 부여, 안 맞고 사는 게 일생일대의 목표인 온양 찌질이 병태가 부여농고로 전학 오는 과정에서 충남 일대를 사로잡은 ‘짱’인 아산 백호 정경태(이시우 분)로 오해 받으며 벌어지는 청춘 코미디를 그린 ‘소년시대’는 임시완의 첫 코미디 도전작이다. 이미 장르를 막론하고 연기력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였지만, 이미지를 다 내려놓고 망가지는 코믹한 임시완을 상상해본 사람들은 아마 거의 없었을 터였다. 임시완에게도 여간 모험이 아니었을 이 도전의 성적표는 어땠을까. 일단 작품 자체로는 1화 대비 마지막 화인 10화의 시청량 증가율이 3000%에 육박할 정도로 껑충 뛰어올랐다니, 엄청난 성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뜨거운 관심과 작품에 대한 애정은 배우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소년시대’를 하고 나서 제가 촬영 중인 다른 작품 현장에서 어떤 단역 연기자 분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분이 제가 지나갈 때마다 ‘푸풉’하면서 웃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죄송하시다고(웃음). 알고 보니 ‘소년시대’를 보셔서 그랬대요. 사실 저란 사람에게서 어떤 개그적인 요소를 찾기가 쉽지 않고 저 자체도 개그와 거리가 먼 사람인데 ‘나를 보고 피식 웃는다?’, 이건 저한테 있어서 굉장히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제가 바라왔던 현상이거든요(웃음). 그래서 저도 팬 서비스 차원에서 그분 앞을 지나갈 때 ‘지나갈게유’ 했더니 또 웃으시더라고요. 이게 정말 제일 원초적인 반응인 거잖아요. 너무 기분이 좋은 거죠.”
장르 자체만으로 두고 본다면 ‘청춘 로맨스+액션 코미디’지만 아무래도 그 시절 일진들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이 작품은 마냥 실없는 코미디로만 흐르진 않는다. 일진을 무작정 미화시키지도, 그렇다고 갱생의 여지조차 없는 악당으로 몰지도 않는 이 작품만의 특별한 지점이 임시완을 ‘소년시대’로 이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산 백호 정경태로 오해 받으면서 어영부영 ‘부여 짱’ 자리에 오르게 된 병태는 그 호가호위에 취하면서도 일진에게 고통 받았던 과거를 잊지 않고 권력을 이용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어우르며 그들에게도 즐거운 학창 생활을 안겨주려 애쓴다.
그러나 병태의 정체가 밝혀지고, 동시에 경태가 다시 짱의 자리에 오른 중반부부터 이야기의 색채는 짙고 어둡게 변해간다. 특히 다시 찌질이로 돌아가 교실 피라미드의 가장 아랫자리에 머물고 싶지 않았던 병태가 절친인 호석(이상진 분)을 공격하는 6화를 보고 이전의 코믹한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던 시청자들이 충격을 호소하는 일도 있었다.
“6화는 저에게도 굉장히 마음이 아픈 신이었어요. 굉장히 ‘센’ 신이기도 했고요. 제일 친한 친구를 때리고 싸움으로 안 되니까 의자까지 가지고 내려치는, 대본으로만 봐도 정말 크기도 크지만 마음이 아픈 신이더라고요. 이 대본대로 하기로 결정하기 전에 감독님께 딱 하나를 여쭤봤어요. ‘이 신은 제가 마음이 좀 많이 아프다. 혹시 조금 더 수위를 낮추거나 다른 방향으로 풀어가는 것은 생각하지 않으셨는지.’ 그때 감독님은 병태가 그 정도로 무너져 내려야만 앞으로의 동력이 가열차게 발동되기 때문에 그렇게 가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고 설명해주셨어요. 그래서 저도 믿고 가게 된 거죠.”
‘청소년 관람 불가’ 딱지가 붙을 만큼 폭력의 수위와 표현 정도가 높지만, 그럼에도 ‘소년시대’에는 분위기가 반전된 후반부에도 시청자들이 숨을 돌릴 휴식처들이 곳곳에 마련돼 있다. 일진들의 이야기를 떼어 놓고 본다면 병태와 그의 소꿉친구이자 싸움 스승인 ‘부여 흑거미’ 지영(이선빈 분), 병태를 경태로 착각하고 계산적인 연애를 시작하는 ‘부여 소피 마르소’ 선화(강혜원 분)의 가슴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삼각관계 러브스토리까지 그 시절 청춘 로맨스도 고스란히 담겨있는 덕이다. 특히 30대 중반에 교복을 입고도 청춘의 한 페이지에 자연스럽게 섞여드는 임시완을 보고 있자면 강렬한 폭력신으로 상처 입었던 시청자들의 마음도 치유되는 느낌이 든다. 실제 나이의 딱 절반을 쳐줘서 아주 만족스러웠다는 임시완은 “그래도 그 시대 고등학생들은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20대까지만 해도 교복에 대해 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어요.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살자’가 제 삶의 모토이기도 했거든요. 이번 병태 역할은 제 모토에 충족되는 행위였던 거죠(웃음). 또 함께 하는 부여농고 친구들도 감독님이 의도적으로 제게 맞춰주신 거예요. 누가 봐도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제 비슷한 또래로(웃음). 심지어 저보다 한 살 많은 형도 계셨거든요. 그래서 ‘이 형도 계신데!’ 하면서 연기했죠(웃음).”
그런가 하면 일진 패거리를 포함한 부여농고 친구들과 촬영 현장에서도 가까워질 수 있었던 데엔 이선빈의 도움이 컸다며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충청남도 천안 출신으로 ‘충청도 사투리’의 네이티브 스피커로 큰 활약을 보였다는 이선빈은 작품 내의 지영 역으로는 물론이고, 현장에서도 배우들 사이의 중간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저는 선빈이 도움을 진짜 많이 받았어요. 사투리에서 제가 잘못한 것도 나중에 선빈이가 얘기해줘서 후시 녹음으로 고치기도 했고요. ‘제발’이라고 대사를 친 게 있었는데 정확히는 ‘지발’이라고 해야 한대요(웃음). 현장에서 선빈이는 확실히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했어요. 저희 현장에 아무래도 이제 막 시작하는 배우들이 많았는데 분위기가 경직된다면 그 기세에 눌린 나머지 본인 역량을 끌어내지 못할 수 있거든요.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끔 유도해주는 역할이 필요한데 저는 그런 게 유려한 편이 아니었지만 선빈이가 오면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편해지더라고요. 덕분에 도움을 많이 받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더 쉽게 잡혔죠(웃음).”
2010년 보이그룹 제국의 아이들로 데뷔한 뒤 2012년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배우 임시완을 대중들에게 한 번에 각인시켰던 그는 연기자 데뷔 13주년을 맞이한 2024년, OTT 역사상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2’로 돌아온다. 공개 전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이 작품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소년시대’를 통해 더욱 확장된 배우 임시완의 세계를 만끽한 이들이라면 어떤 도전이더라도 그의 변신을 느긋하고 만족스럽게 기다릴 준비가 됐을 터다.
“제가 요즘 들어서 ‘소년시대’를 하길 너무너무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있는데, 사람들이 이제 저를 보고 웃음을 터뜨린다는 거예요. 그게 정말 살면서 제일 뿌듯했던 순간인 거 같아요(웃음). 그리고 제 새로운 얼굴을 많이 볼 수 있었다는 점도 뿌듯해요. 실제 생활에선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어, 저거 나도 못 봤던 내 얼굴인데’ 하는 얼굴들이 많았어요. 이렇게 첫 시도를 통해 많은 분들이 저를 재미있게, 새롭게 봐주셨으니 다음에도 코미디를 해 본 경험을 토대로 더 확장해서 도전해볼 수 있겠단 자신도 생겨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