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우상이 되면 이미 그에게는 자유가 없어진다. 무대 아래서도 그는 마네킹 같은 존재가 되기를 대중이 요구한다. 그들의 원초적 욕망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
점잖은 신사풍 이미지로 국민적 인기가 있는 분과 속을 터놓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는 절대적으로 비밀이 보장되는 클럽에서 이따금씩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고백했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절대적 비밀 보장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굶주린 하이에나 떼에게 쫓겨 먹이가 되는 짐승을 봤다. 하이에나는 뒤에서 항문 쪽을 집요하게 물어뜯는다. 그리고 잔인하게 먹어 치웠다. 이 사회에도 곳곳에 그런 굶주린 포식자들이 들끓었다. 그들은 먹이가 될 유명인의 치정이나 마약 혐의를 뒤졌다.
공갈범뿐 아니라 저질 언론도 하이에나다. 한 미녀 탤런트의 임신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그 집 앞에서 며칠 밤을 새며 잠복하다가 마침내 산부인과로 가는 걸 알아낸 기자가 있었다. 미혼인 탤런트의 임신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대중은 우상을 그대로 두지 않는 것 같다. 옷을 하나하나 벗겨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상이 저잣거리의 진흙탕 속에서 뒹구는 걸 즐기고 싶은 잔인함을 가지고 있다.
수사기관의 공명심도 한몫 거든다. 그들은 평범한 마약범 10명보다 인지도가 있는 연예인 한 명이 훨씬 영양가 있다고들 한다. 뉴스에 나올 수 있는 연예인 한 명에 대한 첩보만 얻을 수 있으면 그 대가로 여러 명의 범죄를 눈감아 주기도 한다. 그들은 사건을 슬며시 언론에 띄우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걸 즐기기도 하는 것 같았다.
대중의 우상이라는 존재들은 자칫하면 거미줄에 걸린 먹이가 된 벌레 같은 신세일 수 있다. 이 사회는 드러난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선의 봉건시대보다 더 엄격한 도덕의 잣대를 들이댄다.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을 써서 사회의 몰매를 맞고 감옥에 갔다 온 마광수 교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죽기 전에 개인적으로 만나 밥을 먹은 적이 있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그는 기자들이 나타날까 두려워했다. 세상에 알려진 이름을 힘겨워하는 것 같았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속으로는 불같은 욕정이 이글거리면서 겉으로는 신사인 양 하는 게 우리 사회 지식인들의 이중성이에요. ‘즐거운 사라’는 여성의 해방을 얘기한 건데 왜 법이 나를 감옥까지 보낸 건지 모르겠어요. 담당 판사가 문학과 예술에 대해 얼마나 이해할까요? 문학이 법의 단죄를 받으면 포르노는 왜 안 받죠? 내가 쓴 책보다 더 독한 다른 사람들의 책이 처벌받는 걸 보지 못했어요.”
그는 막막한 세상에 힘겨워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성경 속의 위대한 인물로 알려진 다윗은 부하의 여자를 빼앗았다. 그리고 그걸 은폐하기 위해 부하를 죽이기까지 했다. 동성애나 부녀간 또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불륜들이 들어있는 성경은 최고의 성스러운 책이기도 하다.
변호사로서 대중의 우상이 된 인기 연예인들을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의외로 내면이 공허한 경우가 많았다. 학력이나 경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숨겨져 있는 걸 느꼈다. 인기가 하락하고 대중에게 잊히는 허망함 때문에 섹스와 마약에 빠진다고도 했다. 예술인으로서 자기관리에 철저해야 할 것 같다. 최정상의 영화배우 신영균 씨나 이순재, 안성기 씨 등을 보면 내면이 단단한 모범 배우들이 아닐까.
제일 나쁜 건 차고 날이 선 인정 없는 이 사회다. 로마 경기장의 흥분한 군중같이 대중은 한 우상의 추락에 흥분한다. 수사기관과 언론 그리고 사법부까지도 어쩌면 합법을 가장한 불법을 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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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