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포섭하려면 대통령실 동조화 탈피해야 하는데…찬성 여론 높은 ‘김건희 특검법’ 놓고 껄끄러운 상황
#차별화 나선 한동훈
한동훈 위원장은 새해 첫 일정이었던 대구 방문 행사를 길게 잡았다.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TK)에서 확실한 인증 도장을 찍겠다는 의도였다. TK에서 보수의 새로운 적자임을 인정받은 뒤 수도권과 중도층으로 외연 확장을 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출발은 좋았다. 1월 2일 한 위원장이 참석한 TK 국민의힘 신년 인사회 행사장은 지지자들과 유튜버 등이 대거 몰리면서 북새통을 이뤘다. 한 위원장은 이날 오후 대구 동구 국립신암선열공원을 찾아 참배한 뒤 30여 분 뒤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 행사장에 도착했다. 행사장에는 지지자, 유튜버, 카메라를 든 시민 등 1000여 명이 한꺼번에 몰린 탓에 한 위원장이 엑스코 행사장 입구로 들어오는 데만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 위원장이 자리를 잡은 뒤에도 몰려든 인파가 해산되지 않는 바람에 행사 관계자가 “행사 진행을 위해 협조해 달라”는 안내를 여러 차례 한 뒤에야 행사가 시작됐다. 팬덤이 확인된 동시에 지역 기반이 없는 한 위원장에 대해 TK의 거부감이 전혀 없다는 점까지 한꺼번에 인증된 장면이었다. 한 장관은 분위기에 잔뜩 고무된 듯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지지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한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이곳 대구는 저의 정치적 출생지 같은 곳”이라고 말하면서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2023년 11월 대구 방문을 언급하며 “사실 그때 저는 정치를 하겠다는 결정을 하기 전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리고는 당시 동대구역에서 만난 시민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저는 이런 동료 시민이자 생활인들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나서야겠다고 그 자리에서 결심했다”고 밝혔다. TK가 자신을 정치로 이끌었고 때문에 TK가 자신의 정치 출생지라는 논리였다.
한 위원장은 여세를 몰아 같은 날 오후 6시 대구 호텔수성에서 열린 매일신문 주최 ‘2024 대구·경북 신년교례회’에도 참석할 예정이었다. 이 행사는 TK여론 주도층들이 총집결하는 행사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이날 발생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을 의식해 TK에서의 추가적 세몰이를 낮 행사에서 멈췄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언론 공지를 통해 “예기치 않은 유감스러운 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일정을 최소화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지지기반의 동의를 확실히 다진 한 위원장은 이번엔 광주로 갔다. 한 위원장은 1월 4일 광주를 찾아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수록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고 했다. 이날 광주 5·18 민주묘역을 참배하고 광주시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한 위원장은 “5월의 광주 정신은 어려운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정신이다.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과 정확히 일치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 위원장은 기존의 여의도 문법과는 다른 정치를 내세웠다. 여권 정책과의 차별화, 정당의 기존 행태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그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진다. 한 위원장은 1월 3일 비대위 출범 후 두 번째로 열린 회의에서 총선 키워드로 ‘불합리한 격차 해소’를 제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 입문 후 줄곧 경제적 자유를 부르짖었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노타이’에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 푼 한 위원장은 위원들의 발언 순서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메모하거나 발언 내용에 일일이 ‘피드백 코멘트’를 해 눈길을 끌었다. 김경률 비대위원이 ‘약자와의 동행’ ‘경제민주화’ 등이 담긴 당의 강령을 구현하자고 말하자, 한 위원장은 “강령을 봤는데 세상에서 제일 좋은 말, 그대로만 하면 될 말만 써 있다. 그것을 보며 우리가 나아갈 길을 다져보자”고 답했다.
일반적으로 정당 회의는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사전에 준비해 온 발언을 읽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회의를 주재하는 당 대표가 위원들의 발언마다 피드백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한 위원장은 12월 29일 첫 비대위 회의 때는 위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가운데가 아닌 가장자리에 서기도 했다.
법조인 출신 전직 국회의원은 “상대를 봐가며 자신의 태도를 달리하는 모습은 오랜 수사 검사 생활에서 다져진 행태로 보이고 강경 일색인 용산의 태도와 차별화하려는 시도로도 보인다”며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따뜻하고 온화한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기존 여권에 등을 돌렸던 중도층에게 다가가려는 것”이라고 했다.
#동조화 굴레, 벗을 수 있나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서 통과된 특별검사 임명 법안 2건에 대해 예상대로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1월 5일 행사했다. 2건의 특검법안은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김건희 특검법)’과 ‘화천대유 50억 클럽 뇌물 의혹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50억 클럽 특검법)’이다. 이른바 ‘쌍특검법’이다.
이관섭 비서실장은 국무회의 의결 직후 용산 대통령실에서의 브리핑을 통해 “이번 특검법안들은 총선용 여론조작을 목적으로 만들어져 많은 문제점이 있다”며 “재판 중인 사건 관련자들을 이중으로 과잉 수사해 인권이 유린당한다”고 비판했다. 이 실장은 “도이치모터스 특검은 12년 전 결혼도 하기 전 일로 문재인 정부에서 2년간 탈탈 털어 기소는커녕 소환도 못 한 사건”이라며 “이를 이중으로 수사함으로써 재판받는 관련자들의 인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정치 편향적인 특검이며, 허위 브리핑을 통한 여론조작 등의 문제점이 있다”고 했다.
한동훈 위원장은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대통령실과 보조를 맞춰왔다. 이 법안을 총선용 악법으로 규정하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제는 여론이다.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를 볼 때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국민 여론은 찬성 쪽이 더 많다. 여론을 보고 움직여야 하는 한 위원장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대목이다. 결국 윤 대통령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태생적 논란에 또다시 휩싸여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민주당은 특검 거부 규탄대회를 열고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을 함께 끼워 대대적 비판 세몰이에 나서는 형국이다.
이준석 전 대표가 주도하는 ‘개혁신당(가칭)’ 합류를 선언한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1월 5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한동훈 위원장의 김건희 특검법 대응과 관련해 “좀 더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면서 “보수의 가치 중에 가장 중요한 게 법 앞에 평등한 거다. 그렇다면 그 부분을 이야기해야 되는데 사실은 그 문장을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중진 의원은 “비서실장에 서울대 출신 의원, 사무총장에 법조인 출신 등 여전히 윤 대통령과 동조화되는 인선이 엿보이고 국민들 주목도가 높은 특검에서도 동조화의 기류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정치인은 돌파력이 필요한데 지금 한 장관은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시험대에 섰고 동조화에서 탈피하는 묘수를 발휘해야 중도 포섭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공천 정국, 용산 그늘 벗어날까
한 위원장은 총선 인재 영입을 위한 당 인재영입위원장을 자신이 직접 맡는다고 1월 3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밝혔다. 한 위원장이 이번 총선 지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당에서는 풀이했다.
그런데 한 위원장은 “업무 효율성과 연속성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해 온 이철규 인재영입위원장도 나와 함께 계속 같이 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인재영입위가 한동훈·이철규 공동위원장 체제로 운영되는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용산 입김설을 제기했다. 친윤 핵심으로 불리는 이철규 의원이 인재영입위원장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색안경을 쓰고 보는 이들이 적잖은 것이다.
공천관리위원회 인선이 예상보다 늦춰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이 나오기도 했다. 국민의힘 당규는 공관위 구성 시점을 ‘총선 90일 전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1월 11일 이전에는 공관위가 꾸려져야 한다는 의미이고 민주당은 일찌감치 공관위원장 인선을 끝냈다. 그러자 국민의힘 내부에선 공관위원장 인선에 용산이 관여하고 있어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번지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은 1월 5일 정영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공관위원장으로 내정했다고 밝혔다. 정 내정자는 강릉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25회에 합격, 서울고법 판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판사 출신이다. 한 위원장은 정 내정자에 대해 “공정한 법 연구로 유명하고, 좌우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판단으로 국민의힘에서 설득력 있고 공정한 공천을 맡을 적임자라고 판단한다”고 내정 이유를 설명했다.
정 교수는 ‘한동훈 비대위’ 출범 이전부터 정치권에서 이름이 거론됐던 인물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검사 출신 비대위원장, 판사 출신 사무총장(장동혁)에 이어 공관위원장까지 법조인으로 발탁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새로운 인물 발탁 가능성이 점쳐졌었다. 그럼에도 정 교수가 내정되면서 그의 내정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할 전망이다. 정 교수는 김홍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특수통’ 남기춘 전 서부지검장 등과 사법연수원 동기(15기)다.
국민의힘 한 현역 의원은 “2016년, 2020년 총선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에는 한 위원장이 어떤 외압도 받지 않고 공정한 경선 관리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며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결단력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것을 해내야 비대위도 성공하고 총선도 이길 수 있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