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불출마 “물갈이 신호탄 쐈다” 분석…‘김건희 특검법’ 용산과의 관계 분수령
하지만 일단 첫 타석은 합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기현 지도부에 비해 언론의 주목도 역시 높아졌다는 반응이다. “한동훈이 달라졌다”는 얘기도 곳곳에서 나온다. 한 위원장의 총선 불출마 카드 역시 적어도 국민의힘 내부에선 호평 일색이다. 다만, ‘용산과의 관계 정립’이라는 대형 난제를 어떻게 풀어낼지가 한 위원장 앞에 놓여있다.
#황교안 2탄은 없다
한 위원장과 서울대 법대를 함께 다닌 선후배들, 그리고 그와 검찰에서 한솥밥을 먹은 검사 출신 인사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그는 사실 장관 재직 때 보여줬던 강성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평이 주를 이룬다.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라 내성적인 동시에 절대로 앞에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 말을 먼저 하는 성향이 아니라 주로 듣는 경우가 더 많았고, 검찰 선후배들에게도 깍듯한 성향을 보이는 모범 검사의 전형이라는 게 그와 함께 일해 본 검사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 이른바 소년급제라 검찰 내부에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후배 검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형님’ ‘동생’ 등과 같은 호칭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인간관계를 맺는데 서툴다는 말이 나온 이유였다.
“법무부 장관 재직 때 보여준 야당에 대한 공격적 성향은 본래 한 위원장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술자리에는 동석했지만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주로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했던 것으로 뚜렷이 기억한다. 사건을 수사하는 데는 집요함을 보였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수줍어하는 모습이 훨씬 많이 보였는데 감춰뒀던 발톱을 이제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의지를 통해 달라진 모습을 창조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검찰 출신 인사들도 지금 깜짝 놀라고 있다.” 한 검찰 출신 법조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를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의 기우부터 돌려세운 한 위원장은 초보 정치인에 대한 보수층의 걱정도 초반부터 잠식시키고 있다. 첫 타석에서부터 풀스윙을 휘두른 셈이다. 사법 리스크에 휩싸여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잡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차원에서 첫 전술을 국회 다수당이자 제1야당 압박 모드로 삼았다.
한 위원장은 12월 26일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에서 민주당의 ‘86(19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세대를 특권 정치세력으로 규정하며 대공세에 시동을 걸었다. 그는 이날 “상식적인 많은 국민을 대신해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그 뒤에 숨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 세력과 싸울 것”이라며 “개딸 전체주의 운동권 폭주를 막는 것이 총선 승리의 이유”라고 강조했다.
야당을 강하게 때리는 것으로 시작된 그의 행보는 야당은 물론, 일부 보수 지지층에서 제기한 ‘황교안 2탄’ 이미지를 벗어버리려는 시도로도 읽혔다. 같은 법무부 장관 출신으로 미래통합당(옛 국민의힘)을 이끌었지만 좌충우돌의 혼란을 보인 끝에 21대 총선 참패로 대표직에서 물러났던 황교안 전 대표를 그의 이미지에 투영하려는 시도를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실제로 여야를 막론하고 ‘황교안 2탄’에 대한 예측이 쏟아졌었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12월 25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나가 “(한 전 장관은) 경험이 부족해서 여러 가지 실수를 많이 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실패할 것”이라면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황교안 길을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교안 전 대표조차 ‘한동훈 비대위원장 임명’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황 전 대표는 12월 20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한 장관은) 더 큰 일에 써야지 비대위원장 해 봐야 6개월 하나. 그러고 나서는 또 뭐 할 것이냐. 만약에 그것도 혹시라도 실수하거나 실패하거나 하면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그렇게 하는 건 안 맞다”라고 했다.
재선을 지낸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소심한 성격이라는 선입관, 황교안 2탄, 윤석열 대통령 아바타 등의 나쁜 이미지를 최대한 빠른 시일, 아니 단숨에 벗어버리고 정치인 한동훈으로 올라서려는 다중 포석이 첫 행보에서 엿보였다”며 “정치 전문가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많은 조언을 정말 빠르게 흡수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치인으로서의 첫 이미지를 제대로 심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선민후사 실천"
한동훈 위원장은 총선 공천을 앞두고 어수선한 당 내부도 장악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는 12월 26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 선민후사를 실천하겠다”며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겠다. 비례대표로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그리고는 “승리를 위해 무엇이든 다 하겠지만, 내가 그 승리의 과실을 가져가지는 않겠다”며 “여기 계신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뛸 것”이라고 다짐했다. 자신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당을 위해서만 희생·헌신하겠다는 뜻을 공표한 것이다.
당내에서는 술렁임이 강하게 감지됐다. 예상하지 못했던 한 위원장의 불출마 카드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취임 기자회견 직전까지도 이를 인지한 이는 거의 없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이준석 신당, 명낙대전 등 굵직한 뉴스가 쏟아졌지만 한 위원장 불출마에 스포트라이트가 가장 많이 쏠렸다. 여의도 문법을 따르지 않겠다는 한 위원장이 당을 장악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 위원장 불출마가 국민의힘 공천 물갈이의 신호탄이라는 풀이도 나왔다. 비대위원 인선안을 봐도 그 폭은 짐작된다. 한 위원장은 20대와 40대 비정치인들을 비상대책위원회에 전면 배치했다. 비대위는 50세인 한동훈 위원장을 포함한 11명으로 구성됐는데, 이 가운데 한 위원장이 직접 인선한 지명직 비대위원은 8명이고 3선 현역 의원인 윤재옥 원내대표와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당연직 비대위원이다.
45세 동갑인 한지아 을지대 재활의학 부교수, 구자룡 법무법인 한별 변호사, 장서정 보육·교육 플랫폼 ‘자란다’ 대표가 비대위원으로 참여했다. 최근 인재영입위원회가 영입한 윤도현 ‘자립준비 청년 지원(SOL)’ 대표는 21세로 최연소 비대위원이 됐다. 39세인 박은식 ‘상식과 정의를 찾는 호남대안포럼’ 대표도 합류했다.
과거 학생운동권에서 활동하다 운동권 정치 청산을 주창하는 민경우 대안연대 상임대표(58), ‘조국 흑서’ 저자로 유명한 김경률 회계사(54) 등 이른바 86세대도 합류했다. 민경우·김경률 비대위원을 포함해 7명의 비대위원이 한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여의도 정치’ 경험이 없는 인사들이다. 지명직 비대위원 중 유일한 현역은 직전 지도부에서 최고위원을 지낸 김예지 의원(43)이다.
물갈이와 관련해 가칭 ‘개혁신당’ 창당을 선언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12월 28일 유튜브 채널 ‘장윤선의 취재편의점’에 출연해 “한동훈 위원장이 내년 총선에서 영남권 현역 의원의 3분의 2가량을 물갈이할 것”이라며 “영남 60명 중 40명을 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위원장은 보수 진영의 지지기반을 다지는 데에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영남 물갈이 등을 앞두고 여당에 대한 전통적 지지층이 흔들리는지 여부를 틈틈이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연장선에서 그는 1월 초 첫 지역 방문지로 대구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보수의 심장을 찾아 2023년 11월 대구 방문에서 확인했던 자신에 대한 보수 핵심 지지층의 동의를 재확인하고 차세대 보수의 적자임을 확실하게 공인받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김건희 특검법 어쩌나
용산 대통령실과의 수직적 관계에 대한 지적을 한 위원장이 일거에 해결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이 공교롭게도 한 위원장이 취임하자마자 통과되면서 한 위원장의 딜레마는 더 커지고 있다.
한 위원장은 김건희 특검법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12월 28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본회의에 상정되는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총선용 악법’이라고 단언했다. 한 위원장은 “(총선 시기인) 4월 8, 9, 10일에도 계속 생중계한다는 거 아닌가. 총선을 그렇게 치르겠다는 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이고, 국민 선택권 침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건희 특검법’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고, 대통령실도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즉각 행사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그러나 윤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것과 맞물려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다는 점에서 여권의 고민은 크다. 보수 언론들조차 한 위원장과 여권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국민 민심을 고려해야 한다”며 일제히 비판적 의견을 쏟아내는 중이다.
민주당도 한 위원장과 용산과의 관계를 계속해서 연결 짓고 있다. 강선우 대변인은 12월 26일 국회 브리핑에서 “한 위원장은 5000만 명이 쓰는 언어를 쓰겠다고 폼을 잡지만, 결국 윤 대통령의 공천 지령을 전달할 대리인이고,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지키는 호위무사일 뿐”이라고 때렸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한 장관이 결국 용산과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지식 흡입력이 좋은 한 위원장은 결국 여론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수십 년 쌓은 정을 때로는 냉혹히 뿌리쳐야 하는 것이 정치인데 한 위원장이 용산과의 기존 관계를 뒤집는 결단을 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반면, 친윤계 초선 의원은 “다른 것도 아니고 대통령의 부인이 걸려 있는 사안이다. 대통령실이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강력한 입장을 당에 전해왔다. 한 위원장으로서도 이 문제만큼은 용산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아직 정권 중반인데 집권당 대표에게 대통령과 차별화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