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 vs 을 충돌에 불똥 맞은 병정들
▲ <협상종결자> 포스터. |
▲ 충무로 기대주 한예리는 출연하기로 한 영화 <협상종결자> 등 3편이 모두 감독 하차ㆍ교체 사태를 맞아 혹독한 스크린 신고식을 치렀다. |
하지만 오랜만에 등장한 충무로 기대주의 활발한 행보는 의외의 ‘복병’을 만나 주춤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한예리가 출연하기로 한 영화 3편 모두 제작진과 연출자의 의견 출동과 갈등으로 인해 감독이 도중하차하거나 촬영이 중단되는 사태를 맞은 것. 이로 인해 한예리의 출연이 무산된 건 아니지만 날개를 달고 한창 활발히 활동해야 할 한예리 입장에서는 혹독한 충무로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한예리가 <코리아> 직후 선택한 영화 <협상종결자>는 촬영 초반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이야기 전개와 캐릭터 설정을 두고 이명세 감독과 제작사가 의견 충돌을 빚은 탓이다. 촬영은 중단됐고 양측의 갈등은 폭발했다.
▲ 이명세 감독 |
연출 경력이 30년에 가까운 이명세 감독이 처한 이 같은 상황에 가장 난처해 한 건 배우들이다. 설경구와 문소리는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입을 닫고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갈등이 촉발된 민감한 상황에서 섣불리 입장을 밝혔다가 혹시 논란이 불어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협상종결자>는 첨예한 갈등 끝에 이승준 감독이 새로운 연출자로 투입됐고 현재 촬영을 모두 마쳤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근 영화감독이 촬영 도중 돌연 하차하면서 제작에 차질을 빚고 연쇄작용으로 출연 배우들이 난처한 상황에 빠지는 사례가 부쩍 잦아지고 있다.
▲ <미쓰GO> 포스터. |
<미쓰GO>에서 벌어진 갈등의 최대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은 주인공 고현정이다. 정범식 감독이 하차할 당시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감독과 고현정의 갈등설이 제기됐다. 사실 여부를 가늠할 수 없는 이런 소문 탓에 고현정은 ‘까다로운 배우’라는 구설에도 한동안 시달렸다. 영화를 포기할 수도,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시간도 보냈다.
고현정은 <미쓰GO> 개봉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촬영 중단과 감독 교체 당시를 돌이키며 “촬영 내내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모든 스태프가 마찬가지였겠지만 촬영하면서 이 영화가 무사히 개봉하기만을 바랐다”고도 말했다.
▲ 임순례 감독 |
일단 직격탄을 맞는 건 제작사와 배우들. 하지만 제작사는 감독과 의견 충돌을 벌이는 주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사이에 끼어 난처한 상황을 견뎌야 하는 건 배우다. <남쪽으로 튀어>에 출연하는 오연수, 조정석이나 <동창생>의 탑, 조성하 등은 촬영이 재개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감독이 바뀔 경우 연출자의 개성에 맞춰 촬영장 분위기가 바뀌기 마련. 이에 빨리 적응해 작품을 이어가야 하는 일도 오직 배우의 몫이다.
이들 영화 가운데 한 편에 출연 중인 한 배우의 소속사 관계자는 “어떻게든 영화를 완성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크지 않겠느냐”며 “촬영장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문제를 삼거나 불만을 표시한다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영화와 배우에게 오기 때문에 참는 수밖에 없다”고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
문제는 이런 갈등이 앞으로 더 많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영화 제작에 있어서 제작사와 투자·배급사의 입김이 거세지면서 촬영장에서 감독 고유의 권한이 침해를 받는 사례가 늘고 있는 탓이다. 일부 영화 촬영장에서는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란 건 옛말”이라는 자조까지 나온다.
위기의식을 반영하듯 영화감독조합은 19일 ‘한국영화계에 드리는 제안서’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최근 제작현장에서 불거진 이명세 임순례 박신우 등 감독과 제작진의 갈등에 대해 “유사 사례 분야를 초월해 모든 영화인들에게 알 수 없는 위기감과 무력감을 조성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아직까지 배우들은 침묵하고 있다. 영화에 있어서 감독과 제작진으로부터 ‘선택받는 입장’이기 때문. 하지만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경우 배우들 역시 자기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즉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