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패스’ ‘구독형’ 등 다양한 수익모델 시도…“아직 ‘확률형’ 완전한 포기 어려워”
지난 1월 3일 공정위는 확률형 아이템 판매와 관련한 넥슨의 이용자 거짓‧기만행위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116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소비자의 구매선택에 중요한 요소인 확률 변경 사실을 누락하거나 거짓으로 알렸음이 확인됐다”며 과징금 부과 이유를 설명했다. 공정위의 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 넥슨은 공식 사과에 나서는 한편 논란이 된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확률형 아이템 ‘큐브’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큐브는 메이플스토리 전체 매출액의 약 30%를 차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목할 기점은 오는 3월 22일로 예고된 ‘게임산업법 시행령 개정안’ 시행이다. 게임 속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게임사가 이용자에게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이 개정안의 골자다. 확률 정보 미표시나 거짓 표시 문제로부터 게임 이용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취지로, 2023년 11월 입법 예고돼 지난 2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 공개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실제적인 규제 정책이 나오기 시작한 만큼 게임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추가 정책이 나올 것이란 전망도 있다.
확률형 아이템은 넥슨이 2004년 일본에서 서비스하던 메이플스토리에 ‘가챠폰티켓’을 도입하며 처음 선보였다. 점차 다른 게임들에도 확률형 아이템이 도입되며 확대됐고, 현재는 국내 게임사들의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로서 실적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신, 또 이를 고려한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게임사들 입장에선 수익 모델 다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게임 개발자는 “복권보다 어려운 확률로 설계를 하거나 확률 자체를 속여서 서비스를 하는 등 몇몇 문제 사례로 인해 게임 이용자들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며 “해외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국내 게임사들도 확률형 아이템 이외의 수익모델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 게임사 관계자는 “게임사마다 주력 게임이 다르겠지만 게임업계 전반적으로 확률형 아이템이 수익 측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며 “당장 큰 변화는 어렵겠지만 확률형 아이템 조작 논란과 이용자들의 신뢰도 하락 등을 계기로 게임의 장르나 수익방식의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모든 게임사가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게임사들은 ‘배틀패스’ ‘구독형 시스템’ ‘PC·콘솔(가정용 게임기) 위주 게임 개발’ 등을 방안으로 내세워 확률형 아이템의 의존도를 낮추는 모습이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12월 출시한 다중역할수행게임(MMORPG) ‘쓰론 앤 리버티(TL)’에서 플레이를 통해 레벨을 올리거나 특정 임무를 달성할 경우 보상을 지급하는 방식의 ‘배틀패스 수익모델’을 도입했다. 이에 더해 ‘외형 꾸미기’ 수익 모델도 도입해 확률형 아이템을 대체했다.
넷마블은 지난해 방치형 역할수행게임(RPG) ‘세븐나이츠 키우기’에 일정한 수익이 들어올 수 있는 월 정액제를 도입했다. 매달 일정 금액을 결제하면 게임 내 광고를 제거할 수 있다. 물론 월정액을 선택하지 않아도 광고를 보면서 게임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용자가 광고를 보면 회사는 광고 수익을 얻고 이용자들은 무료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네오위즈는 국내 시장에서 좀처럼 성공하지 못했던 콘솔 게임 ‘P의 거짓’을 출시해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실제로 ‘P의 거짓’을 출시한 지난해 3분기 네오위즈의 PC·콘솔 게임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69% 증가했다.
B 게임사 관계자는 “넥슨의 ‘데이브 더 다이버’나 네오위즈의 ‘P의 거짓’이 대표적으로 확률형 아이템을 배제하고도 성공한 게임”이라며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장르나 수익모델의 게임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고, 시간은 걸리겠지만 다양한 시도들을 한 게임들이 과실을 맺으면 자연스럽게 수익모델의 패러다임이 이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국내 게임사들이 확률형 아이템을 완전 포기하는 것은 아직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진단이다. 확률형 아이템이 아직 중요한 수익모델 위치에 있는 것이다. 게임사들이 콘솔게임이나 구독형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여러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꽤 많은 투입 비용이 들 수 있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확률형 아이템을 계속 이용하길 원하는 기본 수요도 있어 확률형 아이템을 완전히 없애거나 큰 폭으로 축소하기란 쉽지 않다. C 게임사 관계자는 “확률형 아이템은 수익적으로도 그렇고, 게임의 본질인 재미 측면에서도 게임사에 도움이 되는 비즈니스 모델이라서 다른 다양한 모델을 함께 병행하지 않을까 싶다”라며 “단기간에 확률형 아이템 비중에 크게 변화를 주면 기존 유저들이 오히려 반발을 할 수 있어 큰 변화를 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D 게임사 관계자는 “확률이 있으면 재정 능력이 부족한 이용자들에게 좋은 아이템을 뽑을 수 있는 기회가 갈 수 있다”며 “조금만 투자를 해도 큰 재미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확률형 아이템을 대체하는 수익모델을 찾는 것도 좋지만 확률을 투명하게 공개해 계속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업계 상황에 정통한 전문가들 역시 확률형 아이템의 ‘완전 폐기’는 어려운 시나리오로 본다. 다만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확률은 낮은데 현금을 과도하게 쓰도록 몰아가는 구조가 이용자들의 피로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사들에게 더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한국게임학회장인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극단적인 확률로 이용자들을 착취하거나 조작하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며 “게임사들은 관련 규제 시행 예정에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확률형 아이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위 교수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법이 시행되기 때문에 앞으로 게임사들이 확률형 아이템을 기반으로 한 수익모델을 끌고 가기 어려워 이를 다원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하며, 확률 정보는 더욱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확률형 아이템 이외의 다른 수익모델로 바꾼 뒤 수익이 감소할 우려가 있는데 이는 게임을 글로벌 시장에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이용자의 범위를 넓히면 된다”고 조언했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부분 유료화를 시키기보다 구독형, 종량제, 정액제로 수익모델을 정착시키면 좋을 것 같다”며 “OTT처럼 한 달에 일정 금액을 내고 게임을 이용하거나 100일권, 1년권을 끊어서 게임을 이용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앞으로 시행될 ‘게임산업법 시행령 개정안’과 관련해서는 업계 전반의 위축을 우려하는 의견도 내놨다. 김 교수는 “확률형 아이템 의무 공개 법안이 게임 생태계에 좋은 건 맞다”면서도 “다만 중소 게임사나 인디게임사들은 규제가 부담돼 해외로 옮기거나 서비스를 없애버릴 수도 있어 국내 게임산업 발전을 고려하는 안을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