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의원 연루 돈봉투 사건 소환조사 부담…통계조작·선거개입·특혜채용 동시다발 조준
그런 가운데 검찰은 수사 방향을 조금 비틀어 접근하고 있다. 민주당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를 겨눈 잇따른 수사 관련 굵직한 흐름들이 연출되고 있다. 서울고검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 등 5명을 재수사키로 했고, 대전지검과 전주지검은 각각 문재인 정부 통계조작 의혹 관련 사건과 문 전 대통령 전 사위 서 아무개 씨의 특혜채용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모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수사 대상에서 제외된 사건이지만, 문재인 정부 인물들을 겨눈 수사로 ‘정치적 논란’은 최소화하되 존재감은 과시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속도 조절 들어간 민주당 돈봉투 사건
민주당 돈봉투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최재훈)는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의심되는 의원들을 특정, 소환 조사를 시도 중이다. 수사팀은 사건의 실체 파악은 물론, 방어권 제공 차원에서 금품 수수 의혹을 받는 의원들에 대한 소환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검찰의 소환 요청에 민주당 의원들 중 일부는 “선거 이후 정하자”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고 한다.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8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 국회 내 동선 파악 등 의원을 특정하고도 소환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검찰이 선거 앞에서 약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정치 관련 수사 경험이 있는 한 검사는 “원래 선거에 수사로 영향을 주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고, 총선 100일은 그런 룰의 마지노선 같은 시기”라며 “지금부터는 어떤 행동도 정치적으로 영향을 줬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에 소환 조사 등 정치인의 이름이 검찰로부터 새어나가 언론에 알려지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검찰은 브리핑 등을 통해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수사가 정당 민주주의로 거듭나기 위한 기회가 되기 위해서는 신속·명확한 실체적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미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요청드린다”고 원칙론적인 요청만 거듭하고 있다.
소환 조사 없이 기소하기는 더 부담스럽다. 소환 조사 없이 기소했다가 법원에서 무죄라도 나올 경우 정치적인 수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송영길 전 대표에 대한 재판이 2월 2일 첫 공판기일을 시작으로 막이 오르지만, 수사는 4월이 넘어서야 끝날 것이라는 관측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서울 대전 전주에서 진행 중인 문 정부 수사들
대신 검찰은 문재인 정부를 겨눈 수사를 전국 각지 검찰청에서 진행 중이다. 대전지검 형사4부(송봉준 부장검사)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통계조작 의혹 사건 수사 관련 당시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는 등 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4명에 대한 검찰 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사건은 감사원 수사 의뢰 건이다. 감사원은 2023년 9월 문 정부 대통령 비서실이 2017~2021년 최소 94차례에 걸쳐 당시 부동산원 통계 작성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통계 수치를 조작했다며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등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 4명 등 22명에 대해 수사 의뢰한 바 있다. 검찰은 1월 15일 이호승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시작으로 장하성·김상조 전 실장을 하루 간격으로 불러 조사했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한 차례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이들이 당시 정책실장을 지내면서 부동산 통계 조작에 조직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정부 참모진을 주축으로 한 ‘권력형 조직적 범죄’라는 판단이다.
서울고검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해 재수사를 지시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정원두 부장검사)가 다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은 첫 번째 수사 당시인 2020년 1월 압수수색을 시도했다가 당시 청와대의 비협조로 의혹을 규명할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재기수사 명령이 나오면서 자연스레 조만간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자료들이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된 상황인데, 수사팀은 서울고검으로부터 캐비닛 2개 분량의 기존 수사·공판 기록을 넘겨받아 검토 중이다. 과거 수사 과정에서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법정진술도 있는 만큼 이를 토대로 수사 밑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전주지검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 사위였던 서 아무개 씨의 특혜채용 혐의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전주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이승학)는 1월 23일 문재인 정부 당시 김우호 청와대 인사비서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김 전 비서관을 상대로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의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 이사장 임명과정에 윗선의 부당한 지시가 있었는지 등을 확인했다.
검찰은 특히 문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서 씨가 2018년 7월 이 전 의원의 중진공 이사장 임명을 대가로 이 전 의원이 실소유한 타이이스타젯에 전무이사로 취업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서 씨는 항공 분야 실무 경험이 없는데도 항공사 임원으로 취업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소환에 앞서 검찰은 대통령 기록관과 서 씨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고, 홍종학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불러 조사했다.
그동안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 전 의원과 전 정부 인사들은 이스타항공과 타이이스타젯은 무관하다고 주장해왔지만, 검찰은 이상직 전 의원이 타이이스타젯 실소유자로 서 씨의 채용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타이이스타젯 직원들로부터 “이 전 의원이 직접 프로필을 주며 서 씨 채용을 지시했고 서 씨에게 월급 800만 원과 매월 콘도 렌트비 350만 원을 제공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이 민주당 대신 문재인 정부로 상대를 바꿔 ‘정치개입 논란’에서 벗어나면서도 영향력을 보여주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윤석열 정부는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이 된 첫 케이스이기도 하지만, 야당에서 ‘검찰 개혁’을 대놓고 외치는 상황이기도 하다”며 “검찰이 공정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총선 출마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수사는 잠시 멈춰야 하기에 논란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전 정부의 문제들을 통해 ‘존재감’은 보여주려 하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