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람 금보다 값진 ‘힐링 메달’ 걸었다
▲ 되찾은 미소 펜싱 에페 대표 신아람이 9월 21일 충남 계룡시청에서 국민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마련한 ‘국민 금메달’을 목에 걸고 미소를 짓고 있다. 연합뉴스 |
# ‘인생역전’
‘도마의 신’양학선(20·한체대)은 런던올림픽이 낳은 최고의 스타다. 전북 고창 비닐하우스에서 금메달의 꿈을 키운 양학선은 ‘세상에 없던 기술’ 난도 7.4의 ‘YANGHAKSEON(양학선)’으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52년 만에 대한민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구본무 LG 회장이 이 시대에 보기 드문 기특한 젊은이에게 5억 원의 통큰 후원금을 내놨다. 광주 연고의 SM그룹은 광주 남구 월산동에 건축 중인 우방 아이유쉘 35평형 한 채를 양학선 가족에게 제공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신한금융그룹은 1억 원의 금메달 포상금과 함께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까지 2년간 2억 원 규모의 굳건한 후원을 약속했다. 대한체조협회가 1억 원, 모교인 한국체육대학교가 3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했다.
▲ 양학선 |
양학선은 가장 빛나는 순간, 가장 어려운 시절 손을 내밀어준 이들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지난 22일 10년간 남몰래 자신을 후원해준 ‘월드비전’ 드림스쿨 토크콘서트에서 청소년들의 멘토로 나섰다. 어려운 환경에서 꿈을 키우는 후배들에게 “큰 꿈을 꾸고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설파했다. 로또같은 ‘인생역전’ 속에서도 담담하게 나만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3바퀴를 비트는 자신의 신기술에서 180도를 더 비트는 비장의 기술 ‘양2’ 개발에 착수했다. 양학선의 부모님은 여전히 전북 고창에서의 삶을 고집한다. 기적 같은 금메달을 선물해준 기운 좋은 땅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 ‘예능 올킬’
런던에서 돌아온 올림픽 스타들의 금메달급 예능감도 화제였다. 런던올림픽에서 사상 최고의 성적 세계 5위에 오른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17·세종고)는 ‘연세대 지원’ ‘갈라쇼’ ‘화보 촬영’ 등 일거수일투족이 이슈가 됐고, 최고의 스타덤을 구가했다. 자타공인 예능 러브콜 1순위였다. <런닝맨>(SBS) <무한도전>(MBC) <승승장구>(KBS) 등 지상파 방송 3사의 간판 예능프로그램에 등장, ‘요정’의 깜찍한 매력을 드러냈다. <런닝맨>에서 절친 선배 박태환(23·단국대 대학원)과 함께 출연해 무한 매력을 뽐냈다. <무한도전>에선 ‘리듬체조 선생님’으로 원포인트 레슨에 나섰고, <승승장구>에선 리듬체조 선수의 삶과 각종 오해, 편견에 대한 진솔한 속내를 드러냈다. 러시아에서 홀로 훈련할 때 위안 삼던 예능프로그램 속에 자신이 등장한 것이 마냥 신기한 듯 ‘까르르’ 웃어대는 순수한 모습에 삼촌들의 ‘팬심’이 요동쳤다.
‘국민오누이’ 박태환과 장미란(29·고양시청)의 훈훈한 우정은 새삼 화제가 됐다. <승승장구> 장미란 편에 박태환이 깜짝 게스트로 출연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딴 이후 서로를 마음으로 응원하고 의지했다. 같은 꿈을 꾸며 성실하게 한길을 걸어왔다. 런던올림픽 시련의 순간에도 눈빛만으로도 의지가 됐다. 박태환은 런던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실격 사건 당일 선수촌 식당에서 만난 장미란의 “많이 묵어”라는 한마디 위로가 큰 힘이 됐다고 털어놨다. 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 통하는 두 걸출한 스포츠 스타의 우정이 세상에 공개되며 큰 감동을 줬다.
‘괴짜 검객’ 최병철(31·화성시청)은 <해피투게더3>에 출연해 타고난 입담과 끼를 발산했다. 런던 현지 인터뷰에서 이미 예능 본능이 감지됐었다. 출연진들과 즉석에서 선보인 ‘뺨 펜싱’이 방송 직후 유행이 됐고, 타고난 패션 센스도 화제가 됐다.
‘유도스타’ 송대남(32·남자유도대표팀 코치) 김재범(27·한국마사회) 조준호(24·한국마사회)는 <라디오스타>(MBC)에 출연해 거침없는 예능감을 뽐냈다. 유도대표팀만이 아는 포복절도할 올림픽 뒷얘기들을 술술 풀어놨다. ‘조준호-김연경’ 열애설의 근거지가 됐다. 이후 김연경이 조준호의 사주를 받아(?) 다정하게 찍은 인증샷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했다. 각 포털 검색어 1위를 순식간에 장악한 올림픽스타, 청춘남녀의 열애설은 결국 장난기 많은 조준호의 자작 해프닝인 것으로 밝혀지며 일단락됐다.
복싱의 한순철, 탁구의 유승민 등 ‘품절남’ 메달리스트들은 부부 예능프로그램 <자기야>(SBS)에 출연해 미모의 부인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남다른 부부 금슬도 과시했다.
▲ <승승장구>에 출연한 손연재. |
▲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김재범. |
▲ <런닝맨>에 출연한 박태환. |
빛나는 금메달보다 값진 메달, 메달보다 뜨거운 투혼, 우아한 패배에 대한 국민적인 성원도 뜨거웠다. ‘1초 오심’의 아픔을 딛고 에페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따낸 신아람(26·계룡시청)은 네티즌들이 직접 뽑은 질레트 퓨전 프로글라이드 ‘최고의 선수 어워드’ ‘코카콜라체육대상 7월 MVP’ ‘국민 금메달’을 잇달아 수상했다. 대한펜싱협회는 신아람에게 개인전 은메달에 준하는 포상금을 추가로 지급했다. 피스트의 눈물을 진심으로 위로했다. 비록 은메달은 뺏겼지만 전국민적인 사랑을 얻었다.
신아람은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3>(KBS) <고쇼>(SBS) <1억 퀴즈쇼>(SBS)에 잇달아 출연하며 스타덤을 입증했다. 원우영 구본길 등 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찍은 생애 첫 화보도 핫이슈가 됐다. 또렷한 이목구비의 신아람은 신인 아이돌의 뮤비에도 카메오 출연했다. 스타덤 이후 만난 그녀는 ‘예쁘다’ ‘멋지다’는 주변의 찬사를 일부러 흘려듣는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 정도가 아닌데 옆에서 자꾸 띄워줄 때는 민망하다. 나는 그대로다. 변치 않을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런던올림픽 유도 동메달리스트 조준호 역시 신아람과 함께 온라인 공모전 사이트 ‘더콘테스트’가 주는 ‘국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심판 판정에 쿨하게 승복했고, 동메달을 딴 후에도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스포츠맨십을 보여줬다. ‘국민 금메달’ 시상식장에선 조준호의 소녀팬들이 몰려들었다. 플래시 세례를 펼쳤다. 고3 수험생이라는 한 소녀팬은 “대학에 들어가면 밥을 사주겠다”는 조준호 ‘오빠’의 깜짝 공약에 새끼손가락을 건 후 함박웃음을 지으며 돌아갔다. 런던에서의 눈물은 팬들의 사랑으로 치유됐다. ‘힐링’이었다.
# ‘가족여행’
지난 4년간 올림픽 꿈에만 매달려온 선수들은 올림픽 직후 바쁜 일정을 쪼개 ‘꿀맛 휴가’를 즐겼다. ‘마린보이’ 박태환은 9월 초부터 2주간 달콤한 가족여행을 떠났다. 하와이를 거쳐 누나 박인미 씨가 살고 있는 미국 플로리다주 베로비치에서 하나뿐인 조카 태희(1)와 모처럼의 자유시간을 만끽했다. 귀국 직후 생일(27일)을 맞아 25일 오후, 팬 200명과 비공개 생일파티를 가졌다. 유난히 사연이 많았던 런던올림픽에서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해준 팬들에 대한 고마움이 사무쳤다. 따뜻한 ‘프리허그’로 일일이 감사를 표했다. 내달 4일 논산훈련소 4주 군사훈련을 앞두고 있다. 이후엔 물살을 가르는 틈틈이, 단국대 대학원에서 학업을 이어간다.
‘레슬링 훈남’ 김현우(24·삼성생명)도 최근 가족과 발리 여행을 다녀왔다. 시퍼렇게 멍든, 보이지 않은 눈으로 금메달 투혼을 발휘한 김현우는 “멍이 없으면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며 “멍을 그리고 다녀야 하나”라며 코믹한 고민을 털어놨었다. 9월 초 아버지 김영두 씨(60)의 환갑을 맞아 부모님, 형과 함께 첫 가족 해외여행을 준비했다. “아버지 환갑 선물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금메달 포상금으로 가족에게 행복한 여행을 선물했다. 발리 현지에서도 금메달리스트에 대한 예우는 각별했단다. 리조트 직원들의 사인 공세와 동시에 할인 혜택이 이어졌다. 부모님도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 ‘승승장구’
여갑순 이후 30년 만에 여자사격 금메달을 목에 건 스무살 김장미(부산시청)는 6일 봉황기 전국대회에 이어 21일 경찰청장기 전국사격대회 여자 25m 권총에서도 2관왕에 오르며 실력을 입증했다. 본선에서 만20세 이하 한국 주니어 타이기록(592점)을 쐈다. 결선에서 203.4점을 더하며 대회신기록(795.4점)으로 우승했다.
기보배(24·광주광역시청)는 한 해의 최고 궁사를 가리는 국제양궁연맹(FITA) 월드컵 파이널에서 우승했다. 런던올림픽 개인전-단체전 2관왕의 위엄을 과시했다. 2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월드컵 파이널 여자부 결승전에서 디피카 쿠마리(인도)를 6대4(23-26 25-27 28-24 26-23 26-25)로 꺾고 올해 최고의 선수임을 입증했다.
런던올림픽에서 금2 은1 동3의 역대 최고 성적을 올린 펜싱 대표선수들 역시 국내 첫 대회에서 선전했다. 지난 14일부터 사흘간 강원도 양구에서 펼쳐진 최고 권위의 김창환배 펜싱대회에서 김지연(여자 사브르 개인전 금) 구본길(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 신아람(여자 에페 단체전 은) 전희숙(여자 플뢰레 단체전 동) 등 메달리스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1위를 휩쓸었다. 올림픽 이후 한 달 동안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절대적인 훈련량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녹슬지 않은 칼끝을 겨눴다. 클래스가 달랐다. 이구동성 “올림픽 메달의 경험이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데 큰 힘이 됐다”며 웃었다.
내달 11일부터 17일까지 대구에서 열리는 제9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런던 메달리스트들의 품격’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전영지 스포츠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