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책임자’ 판단, 직권남용 유죄 나올 가능성…법원 내부 “검찰의 먼지털이식 수사” 비판도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도 계속되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전·현직 판사 14명을 기소했지만 유죄는 2명, 무죄는 11명에 달한다. 유죄를 선고받은 2명 역시 일부 혐의에 국한해 유죄가 선고됐다. 워낙 보수적 조직인 탓에 대놓고 밖으로 나오는 목소리는 없지만, 법원 내부에서는 “검찰의 무리한 먼지털이식 수사가 사법부의 신뢰를 떨어트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1심만 5년 넘게 걸려
2월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1부(김현순·조승우·방윤섭 부장판사)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받는 임종헌 전 차장에 대한 선고를 진행한다. 검찰 공소장이 법원에 접수된 지 1909일 만으로, 1심 결과가 나오는 데 5년 넘게 걸린 셈이다.
임 전 차장은 법원행정처에서 실질적으로 사법행정권 남용을 지휘했다고 지목받는 인물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등 재판에 개입하고, 법원 내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등에 대해 압력을 가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돼 기소된 전·현직 판사 가운데 아직까지 1심 선고가 이뤄지지 않은, 사법농단 의혹의 1심 마지막 피고인이다.
임 전 차장의 상사 격인 법원행정처장(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고, 거꾸로 임 전 차장 밑에서 근무했던 실장급 판사 가운데 2명(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1·2심 모두 유죄가 선고됐다. 임종헌 전 차장의 경우 ‘일부 유죄’ 가능성이 거론되는 대목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해 1심 재판부는 “대법원장은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고, 설령 직권을 행사했다고 보더라도 이를 남용했다고 할 수 없다”고 통무죄(전부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직권남용에 대해 주어진 권한에 해당하는지, 직권이 있다면 이를 남용했는지, 남용했다면 타인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했는지 등을 쪼개 모두 해당해야 유죄로 판단한다. 그리고 이 기준으로 볼 때,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고영한, 박병대 전 대법관)들은 ‘직권이 없으니 남용도 없었다’고 판단한 셈이다.
하지만 임 전 차장은 조금 다르다. 재판 외 법원행정처를 통한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및 소모임 와해 시도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데 이는 ‘직권남용’으로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제기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을 맡은 1심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2016년과 2017년 법원 내 국제인권법 연구회와 연구회 소모임인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와해를 시도한 혐의는 유죄로 보인다”고 판단한 것도 임종헌 전 차장이 ‘몸통’으로 유죄 판단을 받을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임 전 차장이 행정처 심의관 등에게 연구회 와해 방안을 담은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것에 대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 재판부는 “법관의 표현의 자유와 연구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를 지시받고 움직인 이들 가운데 2명은 유죄가 선고됐기에 대법원장, 대법관(법원행정처장)들과 다르게 ‘사법행정권 남용의 실질적 지휘자’로 판단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수사팀장을 맡은 검찰 특별수사팀은 윤석열 대통령(당시 서울중앙지검장) 지휘 아래 2019년 2월 양 전 대법원장과 두 대법관을 재판에 넘긴 바 있다.
법원에서는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에 대한 불편한 내색이 감지된다. 무리하게 먼지털이식 수사를 진행해 판사 100여 명을 소환 조사하고 전·현직 판사 14명을 기소해, 3명(임 전 차장 유죄 판단 시) 유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드는 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 전 차장까지 유죄가 나오거나, 혹 무죄를 선고받는다고 해도 이상한 해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무죄일 경우 유죄가 선고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최종 책임자가 된다.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들을 동원해 헌재 내부 정보를 수집해 보고했다는 혐의로, 이민걸 전 실장은 국제인권법 연구회와 인사모 와해에 관여하는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하급심에서 일부 유죄를 받았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임 전 차장에게 유죄가 선고될 경우, 법원행정처장과 대법원장은 책임이 없고 법원행정처 2인자였던 임종헌 전 차장이 ‘홀로 저지른 사법행정권 남용이었다’는 판단이 나오는 셈이다.
이번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은 바 있던 한 판사는 “검찰에서 이메일을 모두 털어 하나하나 다 확인하는 등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은 모두 확인해 혐의를 최대한 늘려 기소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렇게 무리해서 수사를 하다 보니 14명 가운데 유죄는 2명만 나온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검찰 항소 만지작
결국 각각의 하급심 판결이 대법원에 모인 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아야 정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윤석열 정부에서 대법관 전원을 교체 임명하기 때문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에게 유리한 판단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함께 나온다. 이번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법원을 떠난 한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 당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나 임종헌 전 차장이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는 등 재판을 지연시킨 것은 문재인 정부 때 재판을 받지 않기 위함도 있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현재 검찰은 무죄를 받은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 항소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검찰이 항소하면 1심이 혐의 적용을 부정한 직권남용 법리에 대해 치열하게 다툴 것으로 점쳐진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당시 수사를 이끌었던 이들이 모두 정치의 한복판에 가 있는 상황에서, 무죄가 나왔지만 사법부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기 때문에 항소를 그 어느 때보다 고민할 것”이라며 “대법원까지 항고한다고 가정했을 때 못해도 2~3년의 시간이 더 소모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