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파업 예고에 해운동맹 재편 악재까지…‘홍해 리스크’에 기업가치 상승, 산은 생각 바꿀 수도
#HMM을 둘러싼 변화의 소용돌이
지난 1월 23일 예정이었던 산은과 하림의 1차 협상기간이 2월 6일로 2주일 연장됐다. 당초 산은의 목표는 2023년 연말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는 것이었으나 인수 조건을 놓고 줄다리기가 이어지며 목표 기한을 넘어선 상황이다.
이 사이 HMM 매각을 둘러싼 환경은 계속 변하고 있다. 우선 글로벌 5위 선사인 하팍로이드가 HMM이 소속돼 있는 디 얼라이언스를 탈퇴하고 2025년 2월부터 머스크와 새로운 동맹체인 제미나이 협력(Gemini Cooperation)을 결성키로 했다. 디 얼라이언스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던 하팍로이드가 탈퇴하면서 하팍로이드를 제외한 디 얼라이언스의 시장 점유율은 18.5%에서 11.5%로 줄어들 전망이다. 디 얼라이언스의 점유율은 향후 오션얼라이언스(29.2%)와 제미나이 협력(21.6%)은 물론 MSC(19.8%)에도 뒤처지게 된다.
HMM 입장에서는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해운동맹은 일종의 카르텔로 볼 수 있는데, 동맹을 맺은 선사들끼리는 동일 노선에서 운임을 협의해 결정하고 선복량을 공유하는 등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다. HMM으로서는 새로운 파트너가 필요하다. 문제는 하팍로이드를 대체할 만한 선사가 마땅치 않은 데다 해운동맹이 대단히 배타적이기 때문에 다른 동맹에 끼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HMM 역시 2017년에 2M(MSC·머스크 연합으로 2023년에 해운동맹 해체 발표)과 임시로 제휴했다가 2020년에서야 디 얼라이언스에 어렵게 편입된 바 있다.
해운동맹 재편은 HMM 인수를 희망하는 하림 측에는 악재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은 “글로벌 선사들 사이에서는 사업 철학과 신뢰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하팍로이드가 디 얼라이언스를 탈퇴하고 머스크와 동맹을 맺은 까닭도 넷제로(탄소중립) 등 이슈에서 서로 지향점이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이런 배타적인 업계에서 하림을 누가 새롭게 재편될 얼라이언스에 끼워주려 하겠느냐. 해운동맹이 깨진 건 하림에 굉장히 큰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준우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 또한 “선사들의 배타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외국 선사들은 이미 HMM 매각을 둘러싼 이슈들을 긴밀히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HMM해원연합노동조합(HMM해원노조)이 역대 최초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도 압박을 더하는 요인이다. HMM해원노조는 지난 1월 30일 사측과 제1차 조정회의를 진행했으나 합의하지 못했다. 노사는 오는 2월 7일 마지막 조정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날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파업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파업 후에도 특근이나 야근 등을 통해 납기를 맞출 수 있는 일반 중공업 분야와 달리 해운업의 경우 컨테이너 하나에 얽힌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이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인도되지 않았을 경우 발생하는 손해가 클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해운업계에서 단 한 번도 파업이 일어난 적이 없는 이유 중 하나다.
파업의 영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선례로는 한진해운 파산 사태가 꼽히고 있다. 당시 예선료나 정박료 등 비용을 지불할 주체가 파산하면서 선박들이 부산항에 입항을 못하면서 생긴 화물 클레임이 극심한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한국 해운의 위상이 크게 추락하고 신뢰도에 손실을 입었기 때문에 이후 HMM의 해운동맹 가입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7년 2M과 HMM의 제휴도 당시 한국 정부가 보증했기 때문에 겨우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원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해운업 파업은 우리나라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부산항이 세계 2위의 환적항만이기 때문에 보통은 부산에 들러서 환적을 하는데 아마 선사들이 홍콩이나 가까운 중국 쪽 항만으로 돌아서 갈 확률이 높다. 국내 산업 전체에 손실 규모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정근 HMM해원노조 위원장은 “그만큼 저희도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이 부분에 대해 매각 측에서도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산은 태도 다소 냉담해져"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하림 측이 산은에 글로벌 해운동맹 재편에 따른 HMM 대응 방안과 관련된 프레젠테이션(PT)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SPA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 경영의 핵심 사안을 공개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산은의 태도가 다소 냉담해졌다고 본다. 꼭 팔아야겠다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협상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데 인수희망자에게 기업의 미래와 관련된 핵심적인 청사진을 공개하지 않고 뭉갠 것”이라며 “지금 예전만큼 적극적이지가 않다. 하림이 협상 테이블을 엎기를 원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든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산은의 분위기가 달라진 배경으로 홍해 사태를 거론하고 있다. 홍해 사태로 HMM의 기업가치가 올랐다는 것이다. HMM의 매각예정가는 해운업의 장기 불황이 고려됐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후티 반군이 세계 교역량의 약 15%를 담당하는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선박들을 공격하면서 아시아-유럽 항로의 컨테이너 운임은 150%가량 상승했다. 홍해 리스크가 장기화할 조짐이 보이고 2024년 1월 19일까지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8주 연속 상승하면서 글로벌 선사들이 현재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시기 수준만큼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기훈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하림이 아슬아슬하게 인수를 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수 절차 돌입 전부터 상황이 바뀌거나 변수가 생겼을 때 대응 역량이 부족하리라는 문제가 계속 제기됐는데 지금 계속 드러나고 있다”며 “약간의 변수만 생겨도 쩔쩔매는 상황에서 HMM이 SM상선에 인수되면서 크게 위축된 한진해운 꼴이 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산은 측에서도 고심을 안 할 수가 없는 문제”라고 짚었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국장은 “HMM은 자산만 27조 원에 달하는 거대 기업이고 국가기간산업인 해운산업의 명운을 틀어쥐고 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인수희망 기업의 인수 여력이 부족하고 자금 조달 계획이 불투명한 상황인데 억지로 매각을 할 필요가 있느냐”며 “산은과 해진공 외에도 국민연금이나 신용보증기금 등의 지분이 들어가 있는데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하림그룹 관계자는 “저희는 지금 세부 조건과 관련된 협상을 진행 중인 상황이라서 지난번에 낸 입장문 외에는 따로 언급할 수 있는 내용은 없다. 세부 조건에 대한 협상을 마무리하고 본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성실히 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산은 관계자 역시 “지금 협상이 진행중인 상황으로 별도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