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기 마친 후 구류소 대기, 현지 영사 업무 소홀 논란…외교부 “강제 추방 조치 때 대기기간 발생”
중국 랴오닝성 다롄 소재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김 아무개 씨(52). 그는 청춘을 중국 감옥에서 보냈다. 30대 초반이던 2003년 중국 현지에서 체포돼 21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2023년 12월 8일 형기 만료로 석방됐다. 끝이 없을 것 같던 ‘타지 수감생활’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타지에서 수감생활을 한 그는 집으로 돌아갈 기대감에 부풀었다. 12월 중순에 있는 생일을 고향땅 한국에서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랜 수감 기간 동안 경험으로, 김 씨는 외국인 수감자가 형기를 마치자마자 강제추방이 되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출소 당일 김 씨는 한국으로 추방되지 않았다. 중국 공안 당국이 그를 데리고 향한 곳은 공항이 아니었다. 김 씨를 또 다른 감옥으로 데려갔다. 우리나라 유치장에 해당하는 ‘구류소’였다.
교도소에서 21년을 지낸 김 씨였다. 그러나 구류소에서 보낸 21일이 심리적으로 더욱 힘들었다고 한다. 언제 구류소에서 나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던 까닭이다. 형기를 마치고 나왔음에도, 경범죄자들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구류소에 구금돼 있는 상황이 혼란스럽기도 했다.
1월 25일 일요신문은 서울 소재 한 카페에서 김 씨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 씨는 “21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그야말로 신세계”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 씨는 “21년 동안 중국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했고, 석방되자마자 중국 구류소에 21일 동안 있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교도소에 있을 때보다 구류소에 있을 때가 더욱 힘들었다. 교도소는 그래도 오래 생활하던 곳인데, 유치장은 계속 사람이 들락날락하는 상황에서 아무 정보를 얻을 수 없어서 답답했다. 언제 나갈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현지 영사에게 도움을 청해보려고 해도 영사 출장소 전화번호를 알 수가 없었다.”
김 씨는 교도소에서 형기가 만료되기 약 두 달여 전인 2023년 10월 주 다롄 대한민국 출장소에서 나온 영사와 면회를 진행했다. 김 씨에 따르면 영사는 ‘빠르면 7일, 늦으면 14일 정도 있으면 집에 가게 될 것’이라고 알려줬다. 그러면서 ‘중국 법상으론 두 달까지 있을 수 있다’는 정보도 들었다.
김 씨를 비롯해 교도소에 함께 있던 한국인 수감자들은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오랜 수감생활을 거치면서 출소 후 곧바로 한국으로 강제추방되는 경우를 여럿 봐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교도소에서 나오자 영사 말처럼 김 씨는 구류소에서 대기를 하는 신세가 됐다. 김 씨는 “강제추방 전 대기하던 구류소 위생상태나 관리상태 등이 교도소보다 열악했다”고 했다.
구류소에 갇힌 뒤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자, 김 씨도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다. 영사 출장소 연락처를 구류소 내에서 수소문했다. 마침 구류소 내에서 영사 출장소 전화번호를 아는 인물을 찾았다. 김 씨와 똑같은 처지에 있던 탈북 남성이었다.
2023년 10월 중순 교도소에서 석방된 뒤 구류소에서 대기하고 있던 탈북 남성이 ‘주 다롄 대한민국 출장소’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한국인들도 모르는 번호를 탈북 남성이 줄줄 외우고 있었다. 전화번호를 알아낸 김 씨는 구류소 측에 통사정해 전화 한 통을 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영사 출장소로 전화를 한 김 씨는 낙담했다. 김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조선족 말투를 쓰는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면서 “‘언제 나갈 수 있는 거냐’고 묻자 ‘우리도 잘 모른다. 우리도 힘이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어렵게 얻은 ‘전화 찬스’로 알아낸 정보는 사실상 전무했다.
구류소에 대기한 지 2주일이 지나자 김 씨 불안감은 극도로 높아졌다. 김 씨는 “영사 면담에서도 7일에서 14일까지 대기할 수 있다고 해서 그러려니 하긴 했는데, 2주가 지나자 불안감이 엄습했다”면서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구류소 내에서는 통제가 상당히 심했다. 시간이 상당히 느리게 흘렀다”고 했다.
구류소 수감 21일째 되는 날인 2023년 12월 28일 중국 공안당국은 김 씨를 데리고 공항으로 갔다. 그제야 김 씨는 한국으로 강제추방됐다. 공항에서 강제추방이 될 때까지도 김 씨는 영사는커녕 영사 출장소 관계자를 마주치지도 못했다.
김 씨는 최근 다롄 소재 교도소에서 석방된 한국인 수감자 중 구류소 대기 기간이 가장 길었던 수감자였다. 김 씨를 제외한 출소 수감자 세 명 중 두 명은 10일, 한 명은 9일 동안 구류소에서 대기한 뒤 한국으로 강제추방된 것으로 파악된다.
김 씨 측근은 “자기 가족들이 이런 상황에 놓였어도 손을 놓고 있을 것이었는지 영사들에게 묻고 싶다”면서 “중국 내부에서 워낙 기상천외한 일들이 일어난다지만, 이런 부분에 있어 자국민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현지 영사 업무 아닌가”라며 격정을 토로했다. 그는 “대기 기간이 필요하다면 외교관들이 중재를 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때처럼 수감자 자비부담으로 호텔 등 숙박시설 등에 머무르게 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자국민이 아무 이유 없이 구류소에 내팽개쳐져 있는 것을 방치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은 중국 현지 교도소에서 출소한 외국인 수감자들이 구류소에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부분인지에 대해 취재했다. 먼저 국내 사례를 살펴봤다. 국내에선 교도소에서 출소한 외국인에 대한 추방이 이뤄질 때 ‘외국인 보호규칙’을 따른다. 외국인 보호규칙 제3조는 ‘형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외국인 보호시설을 수용자 수용 시설로 이용하면 안 된다고 규정한다.
외국인 보호규칙 제9조(방배정) 항목에 따르면 교도소, 구치소, 보호감호시설, 국립법무병원 또는 소년원에서 출소한 보호 외국인에 대해서는 독방을 배정한다. 여기다 전담 공무원이 보호시설에 배치된 외국인을 지속적으로 면담하도록 돼 있다.
김도균 리팡 외국법자문 법률사무소 법률고문은 “중국법 출입국 관리에 관한 세칙에 따르면 최대 60일가량 구류할 수 있다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이 부분은 민간에 있는 강제소환된 외국인들에 대한 조치이기 때문에 형사 조치가 끝난 김 아무개 씨에 대해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도균 고문은 “구류와 관련된 세칙은 ‘소환’이라는 전제가 있는데, 공안당국으로부터 소환된 외국인을 대상으로 적용하는 시행세칙”이라면서 “형사 조치를 다 마친 김 씨의 경우 그냥 한국으로 돌려보내면 간단한 부분인데, 20일 넘게 구류가 돼 있던 부분에 대해선 충분히 항의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주 베이징 대한민국 대사관 영사파트에선 자국민 수감자 송환과 관련한 강제추방 절차 매뉴얼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 다롄 대한민국 출장소는 최근 수감자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7월경 주 선양 대한민국 총영사관 관할 교도소에 있던 대한민국 국적 남성 수감자들이 일괄적으로 다롄 소재 교도소로 이감된 까닭이다. 한국인 수감자가 대규모 이감된 배경으론 중국 교정 당국이 ‘외국인 전용 교도소’ 운영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수소문 끝에 15년 전 중국 사법부 직속 감옥에 수감돼 있다가 석방된 한국인 A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A 씨는 “2009년 12월 석방될 당시 석방 한 달 전부터 영사가 직접 면회를 와서 강제추방 절차에 필요한 내용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면서 “출소 당일 공항으로 인계 돼 영사가 직접 참관한 상태에서 출국 절차가 이뤄졌다”고 했다.
김 씨 사례를 비롯해 ‘다롄에서 생긴 일’들을 들은 A 씨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이야기”라면서 “영사조력이 필요한 사람들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는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수감돼 있는 사람이기에 앞서, 자국민이기에 현지 한국인 수감자들은 영사조력 대상”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 출입경법에 60일 동안 외국인을 구류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그걸 무고한 사람을 구류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특히 수십 년 동안 복역하다 석방되는 재소자의 경우엔 미리 절차를 준비할 기간이 충분함에도, 21일 동안 구류소에 구금돼 있던 것은 중국 사법 당국 업무태만이다. 이것보다도 자국민이 구금된 상황에 대해 주재공관이 관심도 가지지 않고 영사조력도 하지 않으며 방치한 것이 더 큰 문제로 보인다.”
A 씨는 “김 씨의 경우는 12월 8일 무고하게 구류된 뒤 12월 28일 강제추방이 되기까지 일절 영사조력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해외 대사관 및 영사관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으로 국익과 자국민을 위한 활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국민이 범죄자든 일반인이든 절박한 사정에 처했을 때 적극적으로 영사조력을 해야 하는 것이 해외 공관의 임무”라면서 “김 씨가 무고하게 구류된 케이스는 유엔 인권위에 제소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일요신문은 주 다롄 대한민국 출장소 영사와 1월 31일 통화했다. ‘중국 현지 수감자들이 석방된 뒤 구류소에 다시 대기하는 상황에서 자국민 보호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는 취지의 질의에 대해 출장소 영사는 “저희(다롄)만 그렇느냐”고 반문하면서 “중국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출장소도 이제 담당 자문 변호사를 통해 자문을 구한다”고 했다.
출장소 영사는 “감옥에서는 형법이 적용되고, 형기가 만료된 수감자는 행정법에 따라 강제출국이 된다”면서 “그 기간 동안 활동이 제한되고, 감옥 관리에서 출입국 관리로 넘어가는 과정에 돌입한다”고 해명했다.
출장소 영사는 “자문 변호사에 따르면 최대 60일까지 구류가 가능한데, 실질적으로는 이게 강제 출국 조치를 기다리는 절차라고 한다”면서 “강제 출국에 필요한 내부 절차를 거치고 또 시스템상 조치를 취하다 보면 빠르면 7일이 걸린다. 법상은 최장 60일까지 활동을 제한할 수 있게 돼 있어서 빠르면 7일 늦으면 2주 사이에 (구류소) 대기 후에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출장소 영사는 “우리나라 사람들만 그러는 게 아니고 다른 나라 수감자들도 다 동일하다”면서 “저희도 일단 최대한 수감자들이 빨리 한국으로 나갈 수 있게끔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구류소 대기 중에 제대로 된 안내를 했느냐’고 묻자 출장소 측은 “교도소에서 출소하기 전 영사 면회를 했다”면서 “해당 절차를 안내했다”고 했다. ‘수감자가 강제출국될 때 영사가 공항에 참관을 갔는지’를 묻자 출장소 측은 “동행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출장소 측은 “저희도 자국민 ‘인신구류’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다 보니, 최대한 빠르게 강제 출국 절차가 진행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있지만, 능력 밖인 부분이 있다”면서 “우리 법과 중국 법이 다르고, 다롄 출장소에서 수감자 업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부분을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은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2월 1일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공관은 우리 수감자를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영사 면회를 실시했으며 면회 시 사법절차 안내(추방절차 및 대기기간 관련 사항 포함), 인권침해 여부 확인 등 필요한 영사조력을 지속 제공했다”면서 “출소 후 강제추방 조치가 이뤄지는 경우 중국 출입국관리법상 절차 진행에 따라 구류소 등에서 대기기간이 발생한다”는 공식입장을 전해왔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부는 앞으로도 해외 우리 국민 수감자에 대한 영사조력을 지속 제공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외교부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바로 석방이 되면 좋겠지만, 중국 법률상 경우에 따라서 최대 60일 정도까지 구류될 수가 있는 까닭에 일정 대기 기간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자국민 안전을 챙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