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만난 스타 1. 장동건
[일요신문]
5일 오후 2시 부산 해운대 신세계 센텀시티 문화홀에서 영화 <위험한 관계>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는 제 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리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영화 <위험한 관계>의 공식 기자회견 일정으로 마련됐다.
영화 <위험한 관계>는 중국에서 제작한 중국 영화지만 장동건이 남자 주인공을 맡고 두 여주인공은 중화권 세계적인 스타 장백지와 장쯔이가 맡았다. 그리고 연출은 한국의 허진호 감독이 맡았다. 이미 중국에선 개봉해 흥행 성적도 좋은 편이다.
장동건은 <위험한 관계>가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리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돼 매우 기쁘다며 말문을 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깊은 영화제다. 내가 출연한 <해안선>과 <굿모닝 프레지던트>가 개막작으로 초청됐었다. 올해도 <위험한 관계>가 좋은 부문에서 상영할 수 있게 돼 매우 기쁘다. 물론 프로모션을 위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오기도 했지만 올해는 내 작품을 들고 왔다는 점에서 배우로서 기분 좋고 뿌듯하다. 어렵고 힘겨운 작업이었지만 중국을 대표하는 두 여배우들과 즐겁게 찍었다.”
장동건은 중국을 대표하는 월드스타인 장백지, 장쯔이와 이번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다. 이미 장백지와는 중국 영화 <무극>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장백지는 장동건이 유일하게 두 작품에서 만난 여배우이기도 하다.
“한 여배우와 두 번 작업을 한 경우는 장백지가 처음이다. 같은 장 씨기도 하다. <무극> 이후 7~8년 만에 재회했는데 당시만 해도 어린 소녀 같던 장백지가 이젠 처연해지고 성숙해지고 웬만한 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여유까지 갖췄다. 이런 변화가 좋은 연기로 승화해 영화에 묻어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장쯔이와는 이번 영화가 처음이다. 예전에 같은 영화에 출연해 함께 작업할 뻔 한 인연이 있어 만난 적은 있다. 정말 한 장면 한 신 한 커트도 빠뜨리지 않고 자기 캐릭터를 컨트롤 하고는 프로페셔널한 배우다. 자존심을 걸고 연기하는 배우라서 나 역시 배우로서 자극도 많이 받았고 배울 점도 많았다.”
극중에서 장백지는 모지에위, 장쯔이는 뚜펀위 역할을 맡았다. 영화 <위험한 관계>는 배용준이 출연한 한국 영화 <스캔들>과 같은 원작 소설로 만들어진 영화다. <스캔들>과 비교하면 장백지의 역할은 이미숙, 장쯔이의 역할은 전도연이 각각 소화했던 캐릭터다. 정반대의 매력을 가진 두 여성 캐릭터인 셈. 이렇게 상반된 유형의 여성 가운데 장동건은 어떤 스타일의 여성을 선호할까.
“이번 영화에서 장백지와 장쯔이는 화려함과 정숙함이라는 여성 매력의 양극단을 보여 준다. 이 가운데 하나를 고르긴 어렵고 두 가지 매력을 다 가진 사람이 좋겠다.”
이번 영화에서 장동건이 맡은 역할은 바람둥이인 나쁜 남자다. 소위 말하는 옴므파탈 캐릭터를 맡은 것. 그 동안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색깔의 캐릭터다. 캐스팅 과정에 대해 허진호 감독은 “장동건이라는 배우가 바람둥이 나쁜 남자 역할을 하는 게 머릿속에서 그려지진 않았지만 뭔가 새로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장동건 씨도 새로운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고 해서 캐스팅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장동건 역시 옴므파탈의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즈음 <위험한 관계>를 접하게 돼 흔쾌히 출연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중이 기대하지 않지만 내가 갖고 있는 모습, 내가 갖고 있지만 아직 꺼내지 않은 모습을 연기하고 싶었다. 사실 지금까지의 내 이미지에 대해 나 역시 싫증이 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옴므파탈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즈음에 이 역할을 만났다. 하고 싶은 욕망과 작품이 좋은 시기에 잘 만나서 즐겁게 연기할 수 있었다.”
중국어로 촬영해야 하는 영화인 데다 영화 배경 역시 1930년대인 터라 어려움이 많이 따르는 작업이었다. 그렇지만 장동건이 가장 힘겨웠던 부분은 허진호 감독과 호흡을 맞춰 가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촬영 초반에는 허 감독의 영화 스타일이 기존 방식과 달라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감독님은 현장에서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데 특별한 디렉팅은 없다. 허 감독님의 스타일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걸렸는데 적응하고 나니 생각을 많아지면서 내 캐릭터 외의 것들도 생각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영화 전반에 대한 생각의 깊이도 더해졌다. 그렇게 적응되니 현장 가는 게 더 재미있었다. 많은 것을 배우며 촬영을 마무리 지었다.”
장동건은 중국어로 연기를 해야 했다.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배우 입장에서 자신이 모르는 언어를 외워서 연기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장동건의 대부분의 대사를 중국어로 소화해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어로 다 할 생각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중엔 한국어로 연기하는 게 더 어색하고 감정이입이 안 돼 끝까지 중국어 연기하기로 마음먹게 됐다. 집중력과 초인적인 힘이 투자된 작업이었는데 밤잠 안자고 대본을 연습하고 외웠다. 그런데 아침에 현장 가면 감독님이 대사 바꾸는 일이 많아 당황했던 경험도 많다.”
이 얘기에 허진호 감독은 “내가 현장에서 대사를 많이 바꾸는 편인데 한 번도 욕을 안 하더라. 현장에서 또 금방 외우더라. 정말 초인적인 암기력이었다“며 장동건에게 미안한 마음을 밝혔다. 그렇다면 장동건의 중국어 대사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그와 호흡을 맞춘 중국 배우 장쯔이에게 물었더니 매우 코믹한 답변을 들려줬다.
“장동건의 중국어 연기는 완벽했다. 중국어를 정복했으니 이제 러시아 아랍 독일 등 어느 나라 어느 언어도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될 것이다.”
부산 =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