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억 빚 두 달 새 이자만 14억, 허위채권 만들어 배당 요구…법원 “4억 배당 인정”했다가 3년 만에 “불인정”
#무시무시한 사채업자…이자 3650%
건설업자 A 씨는 2019년 5월 B 대부업체로부터 7억 원을 빌렸다. 오랫동안 진행해온 건축공사가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차질을 빚게 돼 돈이 급했다. 이에 6% 이율에 20일 대여, 연체 이율은 24%로 설정한 자금을 빌렸다. 현재 이자제한법에 따른 제한이자는 20%인데, 2021년 이전까지는 24%까지 가능했다.
A 씨의 계약서는 조금 특이했다. 대부계약서 외에도 6억 원 규모의 '용역계약서'라는 게 있었다. 대부업체가 마땅히 수행할 수 있는 용역은 없었다. 허위채권을 만들어 제한이자 24%가 넘는 고리를 받으려는 수단으로 보였지만, A 씨는 건축공사가 완전히 백지화되는 사태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에 서명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20일이 지나 대여기간 만기가 도래하자 B 업체는 재연장 수수료 6억 원을 입금해 달라고 독촉했다. A 씨가 갚기 힘든 상황에 놓이자 B 업체는 1개월에 용역대금 8억 원짜리 계약서를 다시 들이밀었다. 용역비를 가장한 이자합계만 14억 원으로 두 달도 채 안 돼 원금의 두 배가 된 셈이다.
애초 약 20일 동안 7억 원을 빌리려다 두 달 만에 이자만 14억 원이 불어난 상황. A 씨가 계산해보니 1년 기준 본인의 대부이자 금액은 255억 5000만 원 수준으로 나왔다. 이를 이율로 환산하면 원금의 36.5배로, 연이율이 무려 3650%에 달한다는 사실도 함께 깨달았다.
B 업체의 수법은 악랄하면서도 매우 교묘했다. 이들은 2차 용역기한이 만료되고 2019년 7월 말쯤 A 씨가 보유해온 감정평가액 152억 원짜리 토지를 102억 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50억 원씩이나 낮춘 헐값 매입이었는데, 토지 매매 계약금에 A 씨에게 빌려줬던 7억 원을 사용한 게 특징이다.
#허위채권 들고 법원 찾아가 "돈 달라"
B 업체의 기막힌 행보는 계속 이어졌다. 용역계약으로 만든 허위채권의 14억 원을 기어코 받아내겠다며 2021년 2월 법원에 배당 요구를 했다. 더욱 황당한 사실은 법원마저 B 업체의 기망행위에 속아 넘어갔다는 점이다. 대전지방법원은 그해 3월 B 업체에 약 4억 3500만 원의 배당을 인정했다.
결국 이 배당이 옳은지를 놓고 소송이 벌어졌다. A 씨 측은 "해당 채권은 용역계약이 아닌 실질적 고리로서 이자제한법상으로도 무효"라며 "용역계약서 자체가 이자제한법을 회피하기 위해 작성한 허위의 계약서로, 배당 요구는 법원을 기망하는 사기행위"라고 주장했다.
B 업체 측은 당혹스러운 논리를 전개했다. A 씨에 대여한 7억 원을 그가 보유해온 땅 매입 때 사용함으로써, 기존 토지에 설정돼 있던 가압류와 근저당권 등을 해제하는 용역을 수행했다는 주장이었다. A 씨 땅을 헐값에 매입하고도 굳이 빌려줬던 7억 원을 사용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1심 선고가 나오기까지 3년의 시간이 걸렸다. 지난 1월 18일 내려진 판결은 B 업체 등의 채권 '0원'이다. 대전지방법원 제12민사부(함석천 부장판사)는 "B 업체가 이자제한법이 정한 이자율을 명백히 초과했다는 원고 주장을 받아들인다"며 "B 업체는 일부 금액을 몇몇 약정에 의한 위약금으로 주장하지만 사실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에서는 B 업체가 A 씨를 상대로 낸 배당이의의 소도 있으나 이 역시 A 씨 승소로 확정 판결이 난 상태다. A 씨 법률대리인인 박진현 변호사는 "불법 채권을 가지고 버젓이 배당을 요구하는 등 법원마저 기망하려 한 사건"이라며 "재판에서도 불법을 합법으로 가장한 점은 수사를 통해 엄하게 다루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도 팔 걷어…"반사회 대부계약 무효 총력"
이런 악성 대부업체의 활동 폭은 점점 넓어져 가고 있다. 이에 정부도 팔을 걷은 상태다. 금융감독원은 2024년부터 법률구조공단과 협업해 불법 대부업에 따른 피해자들 소송지원에 나설 계획이라고 2월 6일 밝혔다. 이미 불법 대부업체 사건 2건을 선별해 소송지원에 나선 상태다.
금감원에 따르면 한 사건의 경우 이자율이 무려 1520.8∼7300%에 달했다. 피해자는 4개월 동안 17회에 걸쳐 10만~20만 원씩 돈을 빌렸는데, 이자는 6만∼20만 원으로 대출기간 안에 상환해도 연 이자율이 최대 7300%에 달했다. 이 대부업체는 상환을 못할 경우 지인들에게 연락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계약서도 쓰게 했다.
피해자가 원리금을 제때 상환하지 못하자 대부업체는 다른 업체를 소개해 돈을 또 빌리도록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대부업체들은 끊임없는 독촉에 폭언과 협박을 일삼았고, 피해자 직장에마저 대부사실을 알렸다. 결국 채무자는 직장까지 관뒀지만 금감원 등의 소송지원으로 상당한 피해를 회복할 전망이다.
이 밖에 한 사례에서는 돈을 빌려주며 나체사진 등을 담보로 잡은 대부업체도 있었다. 소셜네트워크(SNS)에서 불과 20만 원을 빌려준 뒤, 추심 과정에서 나체사진과 대부사실 등을 가족과 선생님 등에게 유포하기도 했다. 청소년도 불법 대부업에 피해를 본 사례로, 이제는 자녀들에 관련 피해예방도 교육해야 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부 계약은 무효화 될 때에야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구제가 이뤄진다"며 "불법사금융 처단 등은 대통령도 직접 지시한 사안으로, 앞으로 채무자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반사회적 대부계약 무효소송 무료 지원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과 피해자 분들의 적극적인 제보 및 신고를 기다린다"고 당부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