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기업 부진 속 올해 들어 마이너스 수익률…개인들 해외 빅테크·가상자산으로 관심 이동
올해 들어 지난 2월 15일까지 코스피 수익률은 마이너스(-) 1.45%다. 미국이 4%, 일본이 13%대 상승률을 보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우리와 경제 구조가 닮은 독일과 대만도 1%대 플러스 수익을 기록 중이다. 코스피는 2021년 기록한 최고가(3316.08) 대비 22% 낮아 약세장(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요국 모두 현재 지수가 사상 최고치에 근접한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부진의 골은 더 깊어 보인다. 이른바 저PBR주 랠리로 수혜를 본 종목은 자동차, 금융사, 지주회사 관련주 등 일부다. 삼성전자는 연초 이후 5% 넘게 하락했다. 시가총액 상위 10위 종목 가운데 6개가 마이너스 수익률이다.
인공지능(AI)에 대한 기대에도 삼성전자의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는 상대적으로 수혜가 적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반대로 AI의 직접 수혜가 큰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독점적으로 생산하는 SK하이닉스 주가는 지난해 삼성전자보다 2배 이상 더 오른 데 이어 올해에도 5% 넘게 상승했다.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와 경쟁하는 대만의 TSMC 주가도 올해에만 9.5% 이상 올랐다. 삼성전자와 비교해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장 건설 열풍의 수혜가 예상되는 한미반도체 등 장비주 상승률이 훨씬 높다. 시총 3위 LG에너지솔루션도 전기차 판매 부진에 중국과의 경쟁 심화로 1년 새 기업가치가 3분의 1이나 증발했다.
그나마 최근 ‘저PBR주 랠리’를 이끈 것은 외국인이다. 올해 들어 두 달도 안돼 9조 원이나 순매수했다. 지난해 연간 순매수액(10조 5010억 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기관들은 연초부터, 개인들은 지난 1월 중순 이후 코스피 주식을 팔아 치우고 있다.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지만 시장에서는 가장 핵심으로 꼽히는 지배구조는 건드리지 못할 것이란 예측이 우세하다. 일본은 행동주의 펀드들의 주주환원 확대 요구에 정부와 기업이 긍정적으로 반응했지만 국내 대기업들은 여전히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삼성물산은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환원 강화 요구에 “미래 투자재원 확보가 어려워진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재계는 주가 부양을 위해서는 상속·증여세율 인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외국인들의 저PBR주 순매수는 미국의 금리인하(강달러) 가능성과 한국 수출기업 이익개선 예측으로 달러·원 환율이 하락할 수 있다는 기대에 때마침 배당 확대 가능성까지 더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달러·원 환율이 높을 때 한국 주식을 사서 이후 환율이 하락할 때 팔면 외국인들은 환차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시장 예상치를 웃돌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하 시기가 늦춰지면 원화자산 투자를 통한 환차익 매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달러 강세가 가파르게 진행됐던 2022년 외국인은 11조 원 넘게 한국 주식을 순매도했다.
최근 개인들의 관심은 미국 빅테크와 가상자산으로 쏠리는 모습이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세이브로)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주식 순매수는 지난 1월 7억 2900만 달러(약 9700억 원)에 이어 2월에는 14일까지만 무려 9억 3588만 달러(약 1조 2400억 원)에 달한다. 이 기간 중국을 제외한 해외주식 대부분이 올랐으니 돈을 번 셈이다.
올해 들어서만 가격이 23% 급등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거래대금도 크게 늘었다. 최근 미국에서 현물ETF가 승인된 비트코인은 4월 반감기를 맞아 가격 상승 기대가 크다. 과거에도 4년마다 돌아오는 반감기 직후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시작도 전에 우려가…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가 지난 2월 15일 '거품(버블) 경제' 이후 34년 만에 3만 8100선을 돌파하며 1989년 말에 기록한 역대 최고치 3만 8915에 바짝 다가섰다. 일본 정부가 10년 이상 이어온 주가 부양 정책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 정부도 일본을 흉내내 주가 부양을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지만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내용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2014년부터 증시 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을 위해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추진해왔다. 자기자본이익률(ROE) 향상, 주가순자산비율(PBR) 중심의 투자정책, 투자자 소통 강화 등이다. 일본 공적연금(GPIF)은 2015년부터 모든 투자자산에 ESG요소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또 2023년까지 324개 기관투자자들을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시켰다. 도쿄증권거래소는 2015년 지배구조공시를 의무화했고 2022년에는 시장을 대기업(프라임), 중견기업(스탠더드), 중소기업(그로서)로 나눠 공시 기준을 차별화했다.
특히 대기업은 해외투자자가 요구하는 수준을 충족하도록 했다. 그리고 2023년에는 PBR 1배 이하인 중견기업과 대기업들에 대해 기업가치 개선을 위한 계획과 이행방안을 매년 공개하도록 강제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공시의무 강화뿐 아니라 이사회 지배구조 개선까지 이룬 점이다. 상장 대기업의 독립사외이사 비율을 이사회 3분의 1 이상으로 유지하고 이들에게 경영감독은 물론 이사회 의장까지 맡도록 했다. 일본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직접 ETF(상장지수펀드)를 통해 정기적으로 증시에 자금을 투입해왔는데 매입 기준에 지배구조 개선 정도를 적극 반영하기로 했다. 공적연금인 GPIF도 이 기준을 따르기로 했다. 지배구조 개선이 없으면 큰손들의 자금이 유입되지 못하도록 한 셈이다.
지난 1월 24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증권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간담회에서 소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주요 내용은 △상장사의 주요 투자지표(PBR·ROE 등)를 시가총액·업종별로 비교공시 △상장사들에 기업가치 개선 계획 공표 권고 △기업가치 개선 우수기업 등으로 구성된 지수 개발 및 ETF 도입 등이다. 금융위는 2월 하순께 공청회, 세미나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 후 기업의 수용 여부 등을 감안해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풀이하면 ‘기업가치 개선’은 강조되지만 ‘지배구조 개선’은 언급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국내 상장기업들의 지배구조를 감안할 때 주주환원 확대로 주가가 높아질수록 대주주의 회사 자산 사유화율은 낮아지고 상속·증여세 부담은 커진다. 설령 지배구조 개선 여론이 공청회 등에서 제기되더라도 기업들이 수용하지 않으면 가이드라인에 포함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