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주 절도 여부’ 두고 사전심리 전 대립각…양사 진출 앞둔 미국 시장에 미칠 영향 주목
#균주의 차이는 인정했지만…
2022년 3월 메디톡스는 휴젤이 관세법 337조를 침해했다며 휴젤을 ITC에 제소했다. 관세법 337조는 미국 현지에서 상품 수입·판매와 관련된 불공정 행위를 단속하는 규정이다. 메디톡스는 휴젤의 균주가 자사의 ‘하이퍼 홀A’ 균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 보톡스 균주 절도, 균주 및 제조공정 등과 관련한 영업비밀 침해 등을 문제 삼았다. 최근 메디톡스는 균주와 제조공정 관련 영업비밀 쟁점을 철회해달라고 요청했고 ITC 재판부는 받아들였다.
따라서 보톡스 균주 절도와 관련된 불공정 행위가 핵심 쟁점으로 남은 상태다. 이에 대해 양사는 각기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메디톡스와 휴젤은 앞으로 사전심리회의·증거심리·최종증거목록 제출 등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ITC는 오는 6월 예비판결, 10월 최종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1월 말 메디톡스가 ITC에 제출한 사전심리자료에 따르면 메디톡스는 유전자 분석 결과, 양사의 균주에는 차이가 있음을 인정했다. 휴젤 균주는 메디톡스 균주에서 발견되지 않는 자체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메디톡스는 이것이 휴젤이 메디톡스 균주를 도용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휴젤이 균주를 도용한 이후 휴젤 균주에 돌연변이가 발생했거나, 휴젤의 균주가 가상의 메디톡스 선행 균주로부터 유래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메디톡스는 휴젤의 균주가 자연에서 발견됐을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했다. 휴젤은 보톡스 균주를 부패한 통조림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말 휴젤은 균주가 통조림에서 발견될 수 있었던 경위 중 하나로 실험실에서 누출된 균주가 자연에 방생된 사례를 제시했다. 메디톡스는 “보톡스 균은 인간에게 치명적이다. 누출됐다면 기록이 있어야 하지만 기록이 없다”며 “누출됐다 해도 보톡스 균이 자연에서 살아남았을 것 같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휴젤은 사전심리자료를 통해 양사의 유전자 분석 결과가 다른 것은 휴젤이 메디톡스 균주를 도용하지 않은 것을 증명한다고 반박했다. 메디톡스가 제기한 돌연변이설 등의 주장도 메디톡스의 추측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휴젤은 통조림에서 균주를 발견했다는 사실도 재차 강조했다. 휴젤은 사전심리자료를 통해 “실험실에서 병원균이 누출된 사례는 많다”고 맞섰다.
메디톡스는 휴젤이 메디톡스 균주를 훔쳤기 때문에 수입 금지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휴젤은 메디톡스가 미국 관세법 337조 위반 증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ITC 판단이 어떻게 나올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ITC는 문제가 된 상품 수입을 금지하거나 특정 불공정 행위를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다. 2020년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ITC 소송에서 ITC는 21개월간 대웅제약의 보톡스 제품 ‘나보타’(미국 제품명 주보)의 미국 내 수입과 판매를 금지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당시 ITC는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제조공정 등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양사 제품의 FDA 승인 여부가 관건"
양사는 미국 시장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휴젤은 자사 보톡스 제품 ‘보툴렉스’(미국 제품명 레티보)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신청했다.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다. 휴젤은 2021년 3월 처음 FDA에 허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2022년 3월 FDA로부터 공장 설비 관련 보완요구서한을 받았다. 같은 해 10월 다시 허가를 신청했으나 지난해 4월 또다시 공장과 관련 보완 요구를 받았다. 증권가에서는 별문제가 없다면 올해 1분기 FDA의 레티보 승인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메디톡스는 미국 시장 자력 진출을 노리고 있다. 앞서 2013년 메디톡스는 미국 엘러간(현 애브비)에 자사가 개발한 액상제형 보톡스 약물인 ‘MT10109L’에 대한 라이선스 아웃(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2021년 해당 약물은 권리가 반환됐고 기술이전 계약도 종료됐다. 메디톡스는 해당 제품에 대해 지난해 말 FDA에 승인 요청한 상태다. 메디톡스는 미국에서 직접판매 형식으로 보톡스를 출시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내년 출시가 목표다.
2022년 기준 북미 보톡스 시장 규모는 약 6조 3600억 원이다. 이는 전 세계 보톡스 시장(약 9조 6300억 원)의 66%에 달하는 규모다. 미국 시장은 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큰 시장이다. 보톡스 제품이 각 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다. 지난해 1~3분기 휴젤의 보톡스 제품 매출은 1198억 원, 메디톡스의 보톡스 제품 매출은 780억 원 정도다. 양사 모두 보톡스 제품 매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51%다.
바이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보톡스 시장은 규모도 크고 가장 활성화된 시장이다. FDA 허가 장벽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양사 제품의 FDA 승인 여부가 관건”이라며 “현재 대웅제약이 미국 보톡스 시장에 진출했고 휴젤도 미국 진출이 목전에 왔다. 후발주자인 메디톡스 입장에서는 (ITC 소송을 통해) 합의금과 로열티라도 받아내고 싶은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메디톡스는 대웅제약과의 ITC 최종 판결 이후인 2021년 2월 나보타를 미국에서 판매하는 대웅제약의 미국 파트너사 에볼루스, 메디톡스 미국 파트너사 엘러간과 3자 합의를 맺었다. 에볼루스는 나보타의 미국 판매를 허용받은 대신 메디톡스와 엘러간에 약 380억 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2032년까지 나보타 매출에 연동된 로열티를 주기로 했다.
이와 관련, 메디톡스 관계자는 “ITC 소송 진행 중이라 드릴 수 있는 답변이 없다”라고 했다. 휴젤 관계자도 “재판이 진행 중이라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라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