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 결론 나면 균주 출처 논란 업체에 파장 불가피…병원체 제출 의무화는 아직 요원
#사실상 마지막 남은 소송이 불러올 파장
오는 2월 10일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 결론이 나온다. 앞서 2017년 10월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메디톡스 전 직원이 자사 보톡스 균주와 제조공정 기술문서를 빼돌려 대웅제약에 제공했고, 대웅제약은 이를 토대로 보톡스 제품 ‘나보타’를 개발한 것으로 의심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소송 청구액은 501억 원 상당이다.
당초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16일 선고할 예정이었지만, 선고기일이 2월 1일로 변경된 뒤 2월 10일로 또 미뤄졌다. 새로운 자료가 제출된 데 따른 영향으로 전해진다. 사건기록을 살펴보면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은 10월 7일 변론기일이 종결된 후에도 상대 측 논리를 반박하는 참고서면을 여러 건 제출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재판부에서 새로운 자료를 검토할 시간이 부족해서 연기했다고 추측 중”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소송 결과에 관심이 높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 사실상 마지막 소송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앞서 2017년 1월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을 상대로 형사소송도 제기했고, 지난해 2월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메디톡스가 항고했으나 결론이 한 번 나온 탓에 관심이 줄어든 분위기다.
메디톡스와 메디톡스 파트너사 애브비(옛 엘러간)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도 대웅제약 및 대웅제약 파트너사 에볼루스를 상대로 2019년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 ITC는 대웅제약 나보타의 미국 수입을 21개월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ITC 위원회는 대웅제약이 메디톡스 균주를 취득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균주를 영업비밀로 판단하지는 않았다. 대웅제약은 항소했으나, 이후 에볼루스가 나보타 매출에 대한 로열티를 메디톡스와 엘러간에 주기로 합의하면서 ITC 판결은 무효화됐다.
아직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사이 민사소송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다. 이동찬 더프렌즈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은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게 원칙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형사소송에서 유죄가 나오면 민사소송에서는 그대로 인정이 되지만, 형사소송에서 무죄가 나오면 민사소송 결과는 예상할 수 없다. 형사소송에서는 99.9%의 확신이 있어야 유죄라고 판단하는데, 민사소송에서는 80~90%의 증거력만 있으면 된다. 새로운 증거가 없는 이상 형사소송에서 불기소 처분이 된 이유, 즉 증거력이 어느 수준이었는지가 중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대웅제약이 민사 소송에서도 승소하면 메디톡스의 의혹 제기에 불신의 목소리가 거세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불명확한 균주 출처 논란을 지우지 못한 업체들이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있다. 한 보톡스 업체 관계자는 “지금도 국내 업체들끼리 싸움을 벌이는데 부정적인 시선이 강하다. 산업 발전을 위해서라도 (메디톡스가) 의혹 제기를 그만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보톡스를 출시한 메디톡스는 양규환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미국 위스콘신대 유학 때 실험실에서 쓰다가 가져온 균주를 활용했다며 메디톡신의 전체 염기서열을 공개했다. 반면 대웅제약을 비롯한 국내 다른 업체들은 토양, 음식물쓰레기 등에서 균주를 직접 발견했다고 주장해왔다. 유전자 염기서열 등 유전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기업도 상당수다. 지난해 3월 메디톡스는 휴젤을 상대로도 균주 탈취 및 제조공정 도용 의혹을 주장하며 ITC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메디톡스가 승소한다면 균주 출처를 둘러싼 갈등은 확대될 수도 있다. 메디톡스가 다른 업체를 상대로도 국내 소송을 걸 것이라는 예상도 제기된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정현호 대표가 소신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끝까지 의혹을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고 의견을 밝혔다.
나아가 보톡스 업계 재편 가능성도 있다. 대웅제약이 보톡스 균주를 도용했다고 결론이 나올 경우 국내 및 해외 시장 확대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지난해 1~3분기 대웅제약이 보톡스 판매로 거둬들인 매출은 1082억 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균주를 도용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품목허가취소 사유에 해당하는지는 아직 확답을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균주 출처를 공개한 업체 가운데는 시장 재편에 기대를 거는 기업도 있다. 보톡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는 시선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메디톡스 관계자는 “법원에서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손해배상 소송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만약 품목허가취소 사유에 해당하더라도 가처분 신청을 통해 보톡스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균주 출처 의혹 종식할 법안은 계류 중
균주 출처 논란을 종식할 해결책은 아직 요원하다. 2021년 12월 최종윤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질병관리청(질병청)은 보톡스 균주 등 생물테러감염병병원체 제출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 계류 중이다. 보톡스 균주 등 생물테러감염병병원체를 허가 받은 업체 및 기관은 질병청에 생물테러감염병병원체를 보유한 날로부터 30일 내에 병원체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 이 발의안의 골자다. 현행법은 연구개발 전 과정을 기록하는 연구노트 등 기록 작성 및 관리 의무화 규정이 없다. 또 전체 염기서열과 같은 병원체 유전정보는 관리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균주 분리 사실 여부 확인에 한계가 있었다. 질병청은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제출받은 균주를 토대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지난해 4월 보건복지위원회는 개정안 소급 여부에 대해 논의가 좀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개정안은 법 시행 이후부터 생물테러감염병병원체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질병청이 병원체 보유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했는데, 법 시행 이전에 병원체를 취급한 기관 및 업체에도 신설된 결격 사유를 적용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앞서의 보톡스 업계 한 관계자는 “균주 기원 및 염기서열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데 굳이 제출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종윤 의원실 관계자는 “2월에 법안심사소위원회가 한두 차례 예정돼 있다고 들었다. 그때 논의가 이뤄져 통과되게끔 노력하려 한다”고 말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법안 통과를 위해 논의 중인 상황으로 알고 있다. 전반적인 병원체 안전 관리에 대한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서도 질병청이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