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보고 있나? 난 영화제 스타일
▲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문재인 후보가 영화인들의 환대를 받았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부산국제영화제 최고의 행사는 단연 개막식이다. 특히 스타들의 화려한 드레스가 돋보이는 레드카펫은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다. 지난해 오인혜에 이어 올해 레드카펫에선 배소은이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그리고 또 다른 화제의 주인공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다.
사실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정부 시절 스크린쿼터가 축소된 이후 영화계와 인연이 좋지 않은 정치인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영화계와 친노 진영 간의 오랜 갈등이 해소됐다는 평이 나오면서 영화계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분위기까지 감지되고 있다.
화려하게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가 무르익고 있는 대선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진단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미국과의 FTA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서 영화계는 강하게 대정부 투쟁을 벌였었다. 이 과정에서 문성근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이창동 감독, 명계남 등 이른바 ‘친노 3인방’이라 불리는 영화인과 영화계의 관계도 회복이 어려울 만큼 악화됐었다. 사실 이들 친노 3인방은 과거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을 주도했던 인사들이었다.
그렇지만 노무현 정부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이창동 감독이 스크린쿼터를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면서 영화계와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급기야 스크린쿼터 축소가 현실화되면서 친노 3인방과 영화계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됐었다.
이런 분위기는 정권이 바뀐 뒤인 제 12회 부산국제영화제부터 달라졌다. 당시 이창동 감독은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을 맡아 개막식 무대에 섰고 문성근 고문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 <수> 관련 공식행사에 참석한 것은 물론 ‘아시아영화인의 밤’ 행사 사회까지 맡았다. 그렇지만 영화배우 안성기가 1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불참하면서 불화설은 더욱 뜨겁게 고조됐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이기도 한 안 씨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준 영화인 가운데 한 명이다. 이런 그가 개막식은 물론이고 동료배우 박중훈 강수연 등과 함께 출범시킨 아시아 연기자 네트워크 관련 행사에도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안성기 측은 그 이유를 영화 <마이 뉴 파트너> 촬영과 영화제 일정이 겹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영화 <마이뉴파트너>의 주요 촬영 장소가 부산임을 감안하면 쉽게 납득이 안되는 대목이었다.
이를 두고 영화계에선 안성기가 친노 3인방의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불참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스크린쿼터 축소가 결정돼 영화계가 대정부 투쟁에 돌입했을 당시 안성기 는 ‘문화침략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했었다. 대정부 투쟁의 선두에 서 있던 안 씨가 불참하면서 당시 영화계에선 내부 갈등설이 끊이질 않았다.
이후 친노 3인방과 영화계의 관계는 차츰 개선되기 시작했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 <시>로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하면서 영화계에서 다시 자기만의 영역을 확보했다. 문성근 고문도 영화인에서 정치인으로 자기 색깔을 분명히 했다.
불화설의 중심에 서 있던 안성기와 친노 3인방의 관계가 달라졌다는 분석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됐다. 지난 16회 부산국제영화제 최대 이슈작인 영화 <부러진 화살>은 안성기가 주연을 맡은 작품인데 여기에 문성근 고문이 우정 출연을 했기 때문이다. 문 고문의 출연은 정지영 감독과의 관계 때문으로 알려졌지만 이들이 함께 촬영을 했다는 점만으로도 분명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됐다.
올해 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안성기가 탕웨이와 함께 개막식 사회를 맡았다. 그리고 문성근 고문은 문재인 후보와 함께 개막식 레드카펫을 밟았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는 오랜만에 친노 3인방 중 한 명인 배우 명계남도 참석한다. 정지영 감독의 신작 <남영동 1985>이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리젠테이션에 초청됐는데 이 영화에 명계남이 출연했다. 명계남은 지난 6일 오후에 열린 공식행사인 <남영동 1985> 갈라 프리젠테이션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창동 감독에 이어 명계남도 부산국제영화제로 돌아왔고, 문성근 고문은 정치인으로서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리고 안성기가 개막식 사회를 맡으면서 표면적으로 더 이상의 갈등은 없어 보였다.
심지어 갈등 봉합 수준을 넘어 영화계가 문재인 후보를 미는 분위기마저 감지되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개막식이 끝난 뒤 ‘영화인과의 만남’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 차승재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 이창동 감독의 동생인 이준동 제작자, 정지영 감독, 이준익 감독 등이 함께했다. 대부분 안성기와 함께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 당시 대정부 투쟁을 주도한 인물들이다. 특히 이춘연 이사장은 개혁 성향의 영화인으로 유명하다.
이날 간담회에서 문 후보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가 되고 세계 5대 영화제 가운데 하나로 발전한 것이 부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랑스럽다”면서 “예술인복지법이 마련됐지만 효과가 미미하고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 많아 일반산업 근로자의 실업보험 같은 부조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후보는 또 “문화가 미래라는 확고한 철학으로 영화 산업 등을 제대로 뒷받침하고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 박근혜 후보와 악수하고 있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문화예술계 주변에선 영화계가 정치색을 띠는 부분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유력한 대선후보와 정치인들이 참석하는 것에 대한 부정정인 시각도 존재한다. 한 영화제작자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대선 후보들의 유세 현장처럼 되면서 그 의미가 퇴색했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