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수련병원 대부분 ‘비대면 진료’ 거의 시행 안 해…“정부의 전형적 미봉책” 비판도
보건복지부가 27일 오후 7시 주요 99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를 보면 소속 전공의 가운데 80.8%가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로, 73.1%가 근무지(병원)를 이탈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의료진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 공백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2월 23일부터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했다. 비대면 진료는 그동안 시범사업으로 진행된 상태로, 병원급이 아닌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주로 시행됐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전국 모든 병원에서 한시적으로 초진‧재진 상관없이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의무 사항’이 아니어서 현장의 실제 가동률은 극히 저조하다.
현재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의 수련병원 역할을 하고 있는 주요 상급종합병원들은 대부분 비대면 진료 자체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등록돼있는 전국 비대면 진료 가능 병원은 4500곳. 이 가운데 상급종합병원은 서울대학교병원(서울 종로구)과 인하대학교병원(인천 중구) 등 단 2곳에 그치고, 2차 병원은 10곳에 불과하다. ‘일요신문i’ 확인결과 인하대병원은 현재 비대면 진료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본래 극히 일부 질환에 대해서만 비대면 진료가 가능했던 상태에서 이번 정부 대책 발표로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금 상급종합병원과 같은 전공의 수련병원에서 의료 대란이 발생하고 있는 것인데 해당 병원들에서는 비대면 진료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증‧응급‧입원환자들의 경우 주로 수련병원급 이상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사정이어서 더욱이 비대면 진료 이용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엄중식 교수는 “수련병원 현장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한다면 비대면 진료를 전공의 공백 대응책으로 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비대면 진료가 현재 의료 공백을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환자 입장에선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병원 명단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것부터 문제로 지적된다. 심평원 홈페이지에 게시된 비대면 진료 가능 병원 명단은 지난해 9월에서 11월까지 비대면 진료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한 의료기관으로, 이 자료만으로는 현재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정확히 구별해내기 어렵다. 심평원도 이미 홈페이지에서 ‘해당 명단은 실제 비대면 진료기관과 상이할 수 있으며, 실제 비대면 진료 가능 여부는 해당 기관에 확인하시길 바란다’는 설명을 붙여둔 상태다. 현재 환자들은 실제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병원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알아보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비대면 진료에 필요한 원격진료, 화상진료 등 시스템을 대부분의 병의원이 갖추고 있는 않은 상황도 근본적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던 터라 환자들의 허탈함이 더욱 증폭됐다. 지난 23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비대면 진료 대책을 발표하면서 “비대면 진료 확대가 사전에 준비된 상태에서 확대한 것이 아니다”라며 “당장 오늘 시행할 수 있는 기관들이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한 바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현장에 본격 도입된 국내 비대면 진료는 아직 기본 기능을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환자는 물론 의료계 관계자도 비대면 진료에 많은 의문만 품고 있는 단계다. 근육 관련 질환으로 서울대병원에서 1년에 한 번 진료를 받고 있다는 지 아무개 씨는 “겪고 있는 병이 경증은 아니라서 자세한 진료를 받아야 한다”며 “비대면으로 진료를 받는 것은 조금 무섭고 불안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지 씨는 “만약 이용한다면 최소한 화상으로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대부분 전화통화나 글로 써서 비대면 진료를 보는 걸로 알고 있다”며 “비대면 진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직접 이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만난 시민 A 씨는 “환자가 자세하게 본인의 증상이나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아니면 직접 보고 진료를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며 “또 누군가의 협박으로 처방전을 받기 위해 비대면 진료를 하는 등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어, 해야 한다면 최대한 보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확한 처방이나 진료를 받고 싶어서 비대면 진료는 굳이 이용하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비대면 진료가 여전히 부담스럽기만 한 것은 큰 문제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병원 교수 B 씨는 “환자를 직접 보고 진료를 해도 정확하게 진단을 내리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비대면 진료를 하면 오진 가능성도 더 높아져서 부담이 된다”라며 “만약 비대면 진료로 잘못 진단을 내려서 환자 상태가 악화되면 의사가 책임져야 하는데 어떤 의사가 하려고 하겠나”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일단 모든 의료기관에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고 있는데, 의무로 두고 있지 않아서 환자들이 직접적으로 도움 받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비대면 진료 가능 명단은 바로 업데이트 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모든 질환, 모든 병원에 관계없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고 있으니 심평원 홈페이지 자료를 확인하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일단 현재 의료 공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서둘러 타협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엄중식 교수는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해 정부와 의사들이 타협하는 것 말고는 지금 상황을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의대 정원을 늘릴 수 있지만 현장에서 교육할 공간이나 인력 등 준비가 전혀 되있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증원을 하게 되면 부실 교육으로 이어져 결국 환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면서 “이런 점들을 고려해 타협점을 찾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향후 유사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 공공의료시스템을 내실 있게 갖춰 놓는 것도 시급한 과제로 제시된다. 백순영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공공의료가 너무 열악하다”라며 “의료진 파업 등 상황에서 공공의료기관이 잘 돼 있었으면 환자들도 피해를 적게 봤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