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성 빨간불에 타개책 엇갈려…성수1구역 ‘50층 미만 개발’, 노량진1구역 ‘층수 높여 난관 돌파’ 검토
서울 한강변 대규모 재개발구역 중 하나인 ‘성수전략정비구역’ 제1지구는 현재 제도상 허용 가능한 70층 이상 ‘초고층 꿈’을 포기하고, 50층 미만 개발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지난 3일 조합원 상대로 진행된 ‘층수 결정’ 투표에서 ‘50층 미만’ 찬성표(523표)가 ‘50층 이상 초고층’ 찬성표(487표)를 웃돈 것이다. 조합 관계자는 28일 ‘일요신문i’에 “일단 조합원들의 의견을 확인한 절차였고, 확정된 것이 아니어서 나중에 또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초고층 건설에 나설 경우 공사비 폭탄으로 전체 사업성이 악화되거나 조합원 분담금이 커질 것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은 것이 이미 드러난 상태다.
급등한 건축공사비 충격은 일찌감치 ‘35층 재건축’으로 몸을 낮춘 정비구역도 피해 가지 못할 정도다.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조합은 2022년 서울시가 ‘35층 규제’를 풀자 최고 49층으로 재건축 설계를 변경하는 안을 마련해 조합 총회 투표에 붙였고, ‘반대표’의 압도적 우세로 본래의 35층안을 확정, 오는 3월 착공을 준비해왔다. 그런데 시공사로 선정된 현대건설은 지난 1월 조합에 공문을 보내 2019년 산출한 공사비 2조 6000억 원을 4조 원으로 약 54% 증액해 줄 것을 요청해 조합이 크게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증액 요구분 1조 4000억 원을 전체 조합원 2300명으로 나누면 1명당 6억 원이 넘는 규모다. 조합 관계자는 통화에서 “기존 공사비에 비해 너무 많이 올려달라고 해 우리는 다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이라며 “증액 요구분이 타당한지 검증할 것이 너무 많아 상반기 안에 협상을 완료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 건설자재 물가는 1.3배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지난 16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건설동향브리핑을 보면 ‘건설용 중간재 물가지수’가 2020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35.6% 뛰었다. 만약 ‘초고층’의 기준점인 ‘50층’ 이상 건축에 나설 경우 시공비용은 다시 1.3~1.4배 올라 부담이 더 커지게 된다. 더욱이 초고층 단계에서는 층수가 조금만 높아져도 공사비가 더 크게 늘어나, 70층 공사비가 50층 공사비의 2배가 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초고층 건축은 하부층이 더욱 무거운 하중을 버텨야 해 기초부터 골조까지 건축자재의 양과 강도가 높아져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사 기간이 늘어나는 것도 시공비를 더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50층 이상은 설계도를 LH 등 안전영향평가기관에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등 일반 건축물보다 엄격한 규제가 있어 공사 기간이 최소 1년 이상 더 늘어난다. 강부성 서울과학기술대 건축학부 교수는 “30층 건물과 60층 건물을 비교하면 하단 30층이 그 위의 30층을 받들어야 하기 때문에 더 강도 높은 철근·콘크리트가 많이 필요하며 중간에 대피층을 만들고 엘리베이터 성능을 높이는 등 모든 것이 달라져 공사비 급등은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정에 상대적으로 재건축 사업수익성에 여유가 있던 한강변 정비구역들도 당초 기대치보다 최고 층수를 낮추는 안을 검토하는 분위기다. 재개발·재건축 전문가인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앞으로 초고층 재건축은 주민들이 분담금을 낼 여력이 있는 일부 구역들에서만 실질적으로 성사될 것”이라며 “층수를 높였을 때 명확한 메리트(이점)가 있는 구역조차도 반대 목소리를 내는 조합원들이 나오는데 그런 요구 자체가 약한 곳은 초고층 재건축이 어렵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층수 설계를 더 높이는 방식으로 사업성 난관을 돌파하려는 일부 구역들이 주목을 끈다. 지난해 3월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현재 이주를 진행 중인 동작구 노량진1재정비촉진구역은 기존 33층에서 최고 49층으로 층수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시공사 입찰이 2회나 유찰되자 공사비와 공사기간이 증가할 것을 무릅쓰고 사업성 높이기 전략으로 집어든 카드다. 한강 조망이 가능한 세대수를 늘리면서 중대형 가구도 함께 늘리면 분양수익이 늘어나 조합원 분담금도 낮춰볼 수 있다는 계산인 것으로 풀이된다. 조합 관계자는 “최고 49층까지 올릴 수 있는 것으로 설계사무소의 검토를 받았으며 아직 확실히 결정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오는 9월 주민 이주를 추진하는 용산구 한강맨션아파트 재건축조합은 ‘35층 규제’가 풀리자 68층으로 층수를 높이고, 세대수를 220세대 이상 늘리면서 이른바 ‘펜트하우스’까지 넣는 정비계획변경안을 용산구청에 제출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강변 재건축·재개발 구역이 층수를 높여 한강 조망 세대수를 늘릴 경우 공사비 증가분이 커 사업성 제고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다만 ‘랜드마크’ 이미지를 확보해 분양가격이나 향후 매매 가격을 높이는 전략으로는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김제경 소장은 “한강조망 세대수 증가를 위해 초고층으로 지으면 공사비 증가로 수익성·사업성은 더 떨어지는 것이 맞고, 대신 자산가치는 커진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예를 들어 한강 조망 세대를 받기 위해 분담금을 2억 원 더 내더라도 자산 가치에서 최소 5억~10억 원의 격차를 벌릴 수 있다면 한강 조망 세대를 늘리자는 요구가 내부에서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웬만한 한강변 재건축·재개발 조합 입장에선 초고층 설계 논의 보다는 사업수익성 확보가 최우선인 것은 맞다. 시공사들의 정비사업장 ‘옥석 가리기’가 더욱 엄격해진 상황에서 낮은 사업성에 시공사를 찾지 못하는 서울시내 정비조합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비용에 대한 조합 측과 시공사 간 기대 격차가 더욱 벌어지면서 정비조합들의 ‘시공사 모시기’는 더욱 어려워질 분위기다. 초고층 시공 논의에 대한 주도권이 사실상 시공업계로 옮겨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기존 계약대로 재건축 공사를 진행 중인 곳도 공사비에서 분쟁 사안이 충분히 생길 수 있다”며 “공공기관이나 제3의 전문기관이 조율 기능을 하는 것도 완벽하지 않아 결국 조합과 시공사 간 합의 과정에 상당히 진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