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완 측 ‘자사주 전량 소각’ 요구 관철 안되면 주총서 표 대결 예고
금호석유화학은 6일 기존 보유 자기주식 50%를 분할 소각한다고 공시했다. 2024년부터 2026년까지 보통주식 262만 4417주가 소각될 계획이다. 3분의 1에 해당하는 87만 5000주는 오는 20일 소각 예정이다. 또 금호석유는 총 500억 원 규모의 자기주식을 6개월간 취득할 계획이다. 매입이 완료되면 이사회를 통한 세부적인 결의 및 공시를 거쳐 전량 이익 소각할 예정이다.
금호석유 측은 “석유화학 시황 침체에도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장기적인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재계 시선은 다르다. 금호석유의 결정이 박철완 전 상무의 견제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상무는 지난 2월 15일 행동주의 펀드로 알려진 차파트너스자산운용(차파트너스)과 금호석유 주식의 공동보유자로서 특별관계가 형성됐다고 공시하면서, 박찬구 회장과 싸움을 예고했다.
박철완 전 상무와 차파트너스는 금호석유가 전체 주식의 18%에 달하는 자사주를 부당하게 활용할 가능성과 이사회의 독립성 결여로 저평가돼 있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박찬구 회장 측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차파트너스는 △자사주 소각에 관한 정관 변경의 건 △자사주 소각의 건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의 건 등을 금호석유에 주주 제안으로 제출했다.
금호석유 측의 자사주 소각 결정에 대해 박 전 상무 측은 일단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추가적인 자사주 소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차파트너스는 “발행주식총수의 9%가 넘는 나머지 50%의 자사주를 남겨두는 결정을 한 것은 우호적인 제3자에 대한 처분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회사의 금번 결정은 과거에 비해 전향적이지만, 그 실질은 차파트너스의 주주제안 캠페인에 대응하기 위한 궁여지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박철완 전 상무 측은 자사주 소각과 관련해 금호석유 측과 원만한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다면, 정기주총에서 적극적으로 주주행동주의에 나설 계획임을 시사하고 있다. 박 전 상무는 2021~2022년에도 자사주 소각, 사외이사 선임 등 주주제안을 했지만 무위에 그친 바 있다.
차파트너스의 그간 이력에 비춰 박 전 상무 측의 행동과 결과가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차파트너스는 2022년 사조오양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에는 남양유업이 차파트너스가 추천한 심혜섭 심혜섭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를 신임 감사로 선임했다. 또 코스닥 상장사 ‘토비스’의 자사주 소각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금호석유의 지난 2월 16일 기준 최대주주 등 주식 소유 현황에 따르면 박찬구 회장의 특수관계자 포함 지분은 15.89%이며 박철완 전 상무의 특수관계자 포함 지분은 10.87%로 약 5% 차이가 난다. 여기에 국민연금이 8.13%, 외국인 주주가 약 20%를 보유 중이다. 나머지는 소액주주로 분류된다. 이번 정기주주총회에서는 박찬구 회장 측과 박철완 전 상무 측 간 첨예한 표 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자사주 소각과 이를 위한 정관 변경의 건은 주주총회에서 특별결의로 다뤄진다. 총회 출석 주주 3분의 2, 발행주식 총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의결될 수 있다. 이사 선임의 건은 보통 결의로 진행돼 주주총회 출석 주주 의결권 2분의 1 이상과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 이상이 찬성할 경우 의결될 수 있다. 박철완 전 상무 측이 부족한 지분을 채우려면 금호석유 지분 8.13%를 보유 중인 국민연금을 설득해야 할 뿐 아니라 외국인 및 소액주주까지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감사위원 선임을 위한 안건은 ‘3% 룰’이 적용된다. 상장사의 감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할 경우 지배주주는 의결권이 있는 주식의 최대 3%만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돼 있다. 사외이사인 감사를 선임할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3%만 의결권을 인정한다.
표면적으로는 3% 룰이 적용되는 감사위원 선임의 건이 박철완 상무 측에 유리해 보이지만 뜯어보면 상황이 녹록지 않다. 사조오양과 남양유업은 정기주주총회 당시 최대주주의 지분이 의결권을 가진 주식 수의 절반 이상이었지만 금호석유 사정은 다르다. 박찬구 회장 측 특수관계인만 8명이다. 이 중 3% 룰을 적용받는 인물은 박찬구 회장과 박준경 사장 둘뿐이다. 개인 최대주주로서 지분 9.10%를 보유 중인 박철완 전 상무도 3% 룰을 적용받는다.
차파트너스 측은 표 대결에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박철완 전 상무 측은 현재 금호석유 소액주주들이 주주가치 제고 방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 소액주주들의 찬성을 이끌어내는 데 적기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는 정부가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주가를 주당순자산가치로 나눈 비율) 기업의 주가를 부양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주주들의 관심사가 저PBR 기업의 ‘주주가치 제고 방안’에 쏠리고 있다. 금호석화의 PBR은 지난 6일 기준 0.66배로 낮은 수준이다.
차파트너스는 감사위원을 위한 사외이사로 김경호 K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을 추천했다. 차파트너스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김 의장이 K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이사회의 모든 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찬성한 바 있다. 국민연금이 우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물을 감사위원으로 추천함으로써 국민연금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차파트너스는 주주제안을 통해 남양유업과 사조오양의 감사위원을 선임했을 당시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와 글래드루이스의 찬성을 이끌어 낸 바 있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도 외국인들의 표심을 어렵지 않게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재 차파트너스는 두려울 게 없다. 투자 주식 수가 7179주이기 때문에 주주제안이 모두 부결된다고 해도 크게 손해 볼 게 없다. 반대로 주주제안 중에 하나라도 의결된다면, 이들에게는 강력한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성공하면 포트폴리오가 쌓이고 이들의 가치가 올라간다. 현재 그 전략이 먹혀들어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금호석유는 지난 6일 박철완 전 상무 측 제안을 정기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했다고 공시했다. 정기주주총회는 오는 22일 열린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