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주와 선발 맞대결로 열기 후끈…한화 첫 시범경기 티켓은 벌써 1만 장 넘게 예매
류현진과 문동주의 등 번호는 절묘하다. 류현진이 99번, 문동주는 1번을 달고 있다. 둘의 번호를 합하면 100이 된다. 또 류현진은 왼손, 문동주는 오른손 투수다. 류현진은 제구와 경기 운영이 능숙한 베테랑이고, 문동주는 압도적인 구속으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영건이다. 서로를 완벽하게 보완하면서 최강 원투펀치를 이룬다.
한화에 함께 몸담은 둘은 정규시즌에 맞대결할 수 없다. 유일한 대결 기회인 평가전에 두 투수가 나란히 선발 등판하자 열기가 달아올랐다. 정식 경기는 아니지만, 류현진이 4172일 만에 대전 마운드에 서는 날이라 더 그랬다. 포스트시즌을 방불케 하는 80여 명의 취재진이 야구장을 찾았고, 16대의 카메라가 백스톱 뒤에서 류현진의 투구 장면을 담았다. 예상을 뛰어넘는 '류현진 효과'가 벌써 대전에 '야구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한화로 돌아온 류현진
한화 구단은 2월 22일 류현진과 8년 총액 170억 원에 계약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계약 기간도, 총액도 모두 KBO리그 역대 최대 규모다. 류현진은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MLB)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4년 계약이 끝났다. 자유계약선수(FA)가 된 그는 12년 만에 친정팀 한화에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
한화를 향한 류현진의 애정은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더 크다. FA가 됐을 때, 그의 마음은 이미 한화로 기울어져 있었다. "늦어도 2025시즌 전에는 무조건 돌아온다"는 의지도 확고했다. 이유는 하나다. "내게 힘이 남아 있을 때 한화에 돌아와야 내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MLB에서의 다년 계약은 선택지에 없었다. FA 협상 전 에이전트에게 "2년 계약이나 1+1년 계약은 하지 않겠다. 계약 기간은 무조건 1년이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는 2022년 6월 30대 중반의 나이에 두 번째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았는데, "MLB에서 몇 년 더 뛰려는 게 아니라 한화에 돌아왔을 때 잘 던지고 싶어서 수술했다"고 주변에 털어놓기도 했다.
류현진은 거취를 고민하면서 일본 히로시마 카프에서 은퇴한 투수 구로다 히로키를 언급했다. 구로다는 1997년부터 11년간 히로시마의 에이스로 활약하다 2008년 MLB에 진출해 LA 다저스(4년)와 뉴욕 양키스(3년)에서 뛰었다. 2014 시즌을 끝으로 FA가 된 그에게 친정팀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이 거액을 제시했다. 그러나 39세가 된 구로다는 히로시마로 돌아와 팀을 2016년 25년 만의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은퇴했다. 류현진 역시 "구로다처럼 내 힘으로 한화의 우승을 이끄는 게 오랜 꿈이었다"며 "힘이 다 떨어진 채로 돌아와 한화 팬들 앞에 다시 서는 것에만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한화의 전력에 보탬이 될 때 오고 싶어 복귀를 결정했다"고 했다.
#류현진 컴백에 긴장하는 구단들
류현진이 다시 한화 유니폼을 입는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10개 구단 스프링캠프를 뜨겁게 달궜다. 감독들은 한화를 향한 경계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당장 지난해 통합 우승팀 LG 트윈스의 염경엽 감독은 "류현진이 돌아왔으니 야구는 더 재밌어지고, 감독들은 더 힘들어질 것 같다"며 "일단 올해 구단 최다승 경신은 포기했다. 올 시즌 목표 승수도 84승으로 조정했다"고 했다. 염 감독은 또 "류현진은 충분히 10승 이상을 할 수 있는 투수다. 그 한 명이 가세하면서 한화는 국내에서 2위 안에 드는 1~4선발진을 보유하게 됐다"며 "올 시즌엔 5강을 차지하려는 중위권 경쟁이 치열해질 것 같다. 순위 경쟁 팀이 늘어나면, 모든 팀의 승수가 전체적으로 떨어진다"고 예측했다.
많은 감독들은 류현진이 한화에 미칠 무형의 선순환에도 주목했다. 한화에서 류현진과 함께 뛰었던 이범호 KIA 타이거즈 감독은 "류현진이라는 선수 한 명을 경계한다기보다 한화가 강해지는 걸 경계하고 있다. 젊은 선수가 많은 한화에 류현진이 합류해 미치는 영향이 클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태형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한화의 국내 선발 문동주가 공이 좋아도 어린 투수인데, 류현진이 들어오면 시너지 효과가 엄청나게 클 것"이라며 "류현진의 복귀는 리그 전체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류현진이 돌아온 한화 캠프는 활기가 넘쳐흘렀다. 한화 선수들은 입을 모아 "현진이 형이 돌아오니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많은 걸 배우고 싶다"고 환호했다. 계약 다음 날인 2월 23일 양복 차림으로 오키나와 캠프에 도착한 류현진은 "12년 만에 다시 왔다. 선수들과 함께 높은 곳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나도 열심히 할 테니까, 다 같이 잘해보자"고 인사했고,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류현진은 "다들 너무 반갑게 맞아줘서 좋았다. 일정에 따라 차근차근 공을 던지면서 개막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완벽한 피칭에 감탄사 쏟아져
류현진은 다른 선수들보다 캠프에 늦게 합류했는데도 두 차례 불펜 피칭을 완벽하게 마쳐 주변의 감탄사를 이끌어냈다. 그는 피칭을 마친 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활짝 웃었고, 공을 받은 동기생 포수 이재원도 연신 "나이스!"를 외쳤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내가 인상 쓸 일이 없다. 웃음이 절로 난다. 앞으로 경기에서 던질 모습을 상상하니 더 좋다"고 싱글벙글 웃었다. 손혁 한화 단장도 "불펜 피칭을 지켜보니 '역시 대단한 투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다르긴 다르더라"며 "시즌 준비가 정말 잘돼 있다. 류현진이 던지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류현진은 아직 자신을 어려워하는 후배들을 위해 회식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2월 28일 저녁,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 시내의 한 한식당에서 한화 투수 전원에게 한턱 냈다. 류현진은 "후배들이 먼저 편안하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내 방문은 항상 열려 있다"며 "후배들이 밥 사달라고 하면 언제든 사줄 거다.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했다. 그는 또 "투수뿐 아니라 야수 전원과 팀 전체가 함께하는 자리도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류현진과 절친한 사이인 장민재는 "그동안 후배들이 현진이 형을 궁금해 하면 '무서운 사람 아니니 직접 가서 물어보면 잘 말해 줄 거다'고 말하곤 했다"며 "형 덕분에 다 같이 모여서 서로 거리도 좁히고, 그동안 못한 얘기도 나누는 자리가 됐다"고 했다.
#김태균 "류현진 18승 또 하겠네"
한화는 류현진에게 오는 23일 LG 트윈스와의 정규시즌 개막전 선발을 맡길 계획이다. 류현진도 "몸 상태에 아무 문제가 없다. 충분히 나갈 수 있다"고 했다. 3월 1일로 예정됐던 첫 라이브 피칭이 비로 순연되면서 처음으로 일정에 차질이 생겼지만, 다음 날인 2일 순조롭게 투구를 끝마쳐 무사히 개막전에 출격할 수 있게 됐다.
류현진은 이날 오키나와 고친다구장에서 타석에 타자를 세워 놓고 100%의 힘으로 공 65개를 던졌다. 직구·체인지업·커브·컷패스트볼(커터) 등을 고루 점검했고, 피칭 후엔 "열심히 던졌고 느낌이 괜찮았다. 제구도 (타자 몸에 맞은) 한 개 빼고는 다 잘된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이상혁·김태연·박상언·장규현이 류현진의 공을 처음으로 상대해보는 행운을 잡았다. 시즌 내내 류현진과 호흡을 맞출 한화의 주전 포수 최재훈이 마스크를 쓰고 공을 받았다.
류현진이 한 구, 한 구를 던질 때마다 주위에는 감탄사가 쏟아졌다. 손혁 단장과 김남형 타격코치는 "체인지업의 궤적이 직구와 똑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한화 영구결번(52번) 타자인 김태균 해설위원은 "저런 공이라면 올해 18승도 하겠다. 1점대 평균자책점도 가능해 보인다"고 확신에 가까운 평가를 내놨다. 한화 시절 절친한 사이였던 김 위원이 류현진에게 "커브가 왜 이렇게 밋밋해?"라고 장난을 치자 류현진이 "그럼 (타석에) 들어와! 들어와!"라고 유쾌하게 받아치기도 했다. 라이브피칭 초반에는 좀처럼 정타가 나오지 않고 헛스윙이 이어져 "류현진 기를 살려주려는 게 아니냐"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렸다. 구속은 아직 최고 시속 139㎞에 머물렀지만, 구위를 이기지 못한 타자들의 배트는 두 번이나 부러져 나갔다. 안타성 타구도 세 개가 전부였다.
딱 한 번 아찔한 상황도 나왔다. 류현진이 이상혁에게 던진 몸쪽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크게 벗어나 팔 보호대 부분을 맞았다. 류현진은 얼른 다가가 이상혁의 몸 상태를 체크한 뒤 "밥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피칭 후에는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밥이 문제겠나"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최원호 감독은 류현진의 라이브피칭 결과에 크게 만족했다. "좌우 로케이션, 다양한 변화구, 커맨드(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공을 던질 수 있는 능력) 등이 전반적으로 좋았다. 아직은 몸이 100%가 아닌데도 투구 밸런스가 좋아 보였다"고 했다. 배터리를 이룬 최재훈도 "공을 처음 받아봤는데 느낌이 다르다. 제구가 너무 좋아서 포수가 받기에 딱 좋고, 크게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며 "아직 현진이 형이 뭘 던지고 싶어하고 어떤 공을 선호하는지 몰라서 사인을 내면서 맞춰나갔다. 앞으로 호흡이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류현진이 던진 첫 '사구'의 희생양(?)이 된 이상혁은 "맞은 곳은 전혀 아프지 않다. 1군 스프링캠프를 처음 치르고 있는데, 이 모든 게 좋은 경험이자 큰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고 뿌듯해했다. 그는 "타석에서 직접 류현진 선배님 공을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치기 어려웠다"며 "직구는 실제 구속보다 더 빠른 느낌이고, 변화구 구종도 다양해서 대응이 쉽지 않은데 제구까지 잘된 공이었다. 타자 입장에서 쉽지 않았다"는 '후기'를 남겼다.
류현진은 목표로 했던 65구 피칭을 무사히 마친 뒤 "스트라이크존을 중점적으로 생각하면서 공을 던졌다. 포수 최재훈과 호흡도 괜찮았고, 던질 수 있는 구종도 다 던져봤다"며 "어느 정도 투구 수를 올렸으니, 시범경기에서 조금 더 끌어올리면 될 것 같다"고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평가전에 쏟아진 폭발적 관심
캠프를 마치고 귀국한 류현진은 라이브피칭 후 5일 만인 3월 7일 자체 평가전에서 첫 실전 점검에 나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평가전에는 관중이 입장할 수 없기 때문에 한화는 그 아쉬움을 구단 유튜브 생중계로 풀었다. 한화 관계자는 "중계 여부를 고민하던 참에 '류현진-문동주 맞대결을 꼭 보고 싶다'는 팬들의 요청이 빗발쳐 방송을 결정했다"고 했다. 호응도 엄청났다. 평일 낮인데도 생중계 동시 시청자 수가 최대 7만 997명에 달했다. 구단 자체 생중계 역대 최다 시청자 수 기록이다.
이뿐만 아니다. 한화의 첫 시범경기가 시작되는 3월 9일 대전 삼성 라이온즈전 티켓은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렸다. 만원 관중이 1만 2000명인데 벌써 1만 장 넘게 예매가 끝났다. 웬만한 정규시즌 주말 경기보다 관중이 더 많다. 류현진이 등판하지 않는 경기인데도, 대전으로 돌아오는 그를 환영하기 위해 한화 팬들이 집결하는 모양새다. 한화 관계자는 "류현진 선수가 처음 시범경기에 등판하는 12일 KIA 타이거즈전은 평일이라 예매가 따로 없고 관중이 무료로 입장하게 된다. 아직 정확한 수치를 알기는 어렵지만, 그날도 아마 예년보다 훨씬 많은 분이 찾아오실 것 같다"고 귀띔했다.
류현진은 이날 마운드에서 3이닝 동안 총 46개(직구 23개·커브 10개·체인지업 9개·컷패스트볼 4개)의 공을 던졌다. 올해 KBO리그가 도입한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을 적용한 결과 스트라이크는 30개, 볼은 16개였다. 날씨가 꽤 쌀쌀했지만, 최고 구속은 시속 143㎞까지 올라왔다. 라이브피칭 최고 구속(시속 139㎞)보다 시속 4㎞ 빠르다. 그는 1회와 3회를 삼자범퇴로 마쳤고, 2회에만 안타 1개와 볼넷 1개를 내줬다. 선두 타자 채은성에게 좌익선상으로 날카롭게 빠져나가는 2루타를 맞은 뒤 1사 후 하주석을 볼넷으로 걸어 내보냈다. 3회 정은원 타석에서는 이날 시범 운영한 피치 클록을 위반해 볼카운트 하나를 손해 보는 '예방 주사'를 맞기도 했다.
류현진은 경기 후 "편하게 던졌다. 원래 목표대로 투구 수를 소화했고, 경기 후 불펜에서 20개 정도 더 던졌다"며 "시범경기 첫 등판에서는 65개 정도로 투구 수를 올릴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자신을 둘러싼 관심에 관해선 "특별한 감정은 없지만, 아직 내가 경쟁력이 있을 때 팀에 돌아온 것 같아서 그 부분은 스스로 만족한다"며 "정규시즌 개막을 해보면 더 실감이 날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최원호 감독은 "류현진은 쌀쌀한 날씨 탓인지, 불펜 피칭이나 라이브 피칭 때보다 제구가 조금 흔들린 편이었다"면서도 "그래도 구속이 많이 올라온 점은 고무적이다. 경기를 더 나가고 정규시즌에 긴장감도 더 올라가면 시속 140㎞대 중반까지는 충분히 나올 것 같다"고 내다봤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