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인증 취득 안 해 싸지만 품질은 복불복…불량품·가품·금지품 넘쳐나도 정부 규제 근거 없어
C-커머스가 국내 유통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3월 6일 애플리케이션(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중국 쇼핑 플랫폼인 알리, 테무, 쉬인의 앱 사용자 수 변화를 분석한 결과, 지난 2월 알리 사용자는 818만 명으로 역대 최대를 경신했다. 이는 전년 동월 사용자 355만 명과 비교하면 130% 증가한 수치다. 테무와 쉬인도 각각 사용자 581만 명, 68만 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를 달성했다.
국내 쇼핑몰과 비교해도 이들의 성장세는 뚜렷하다. 알리의 국내 이용자 수는 2월 기준 11번가를 제치고 쿠팡 다음으로 2위에 올랐고, 테무는 국내 상륙 반 년 만에 지마켓을 제치고 4위에 올랐다. 이쯤 되면 “나 빼고 다 쓴다”는 말은 어느 정도 맞는 셈이다.
#“내화성이라더니 불 활활” 알리는 뽑기?
문제는 급증한 사용자만큼이나 불만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알리와 테무 등 중국 쇼핑몰 업체가 주력으로 판매하는 상품은 중국의 현지 판매자들이 조달하는 초저가 공산품이다. 대부분의 상품이 관세나 KC인증 취득 없이 국내로 들어오기 때문에 가격은 국내 이커머스 제품보다 절반 이상 저렴하지만 품질은 보증하기 어렵다.
실제로 물건을 구매해 본 소비자 가운데 상당수는 불량품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일요신문 인터뷰에 응한 A 씨는 몇 달 전 알리에서 초음파 안경 세척기를 구매했다. 상세 페이지에는 기기에 물을 채우고 안경이나 액세서리, 교정기 등을 넣은 뒤 버튼을 누르면 초음파를 이용해 미세 오염 물질을 세척해 준다고 적혀있었다. 한국에서는 약 5만 원에 판매되는 제품과 동일한 것이 알리에서는 10분의 1 가격이었다. 문제는 10일 뒤 배송된 상품이었다. 세척기는 A 씨가 사진에서 보던 것과 큰 차이가 있었다.
A 씨는 “한눈에 보기에도 조악했다. 단자 연결 부분이 너무 엉성해서 ‘꽂힌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과 달리 크기가 너무 작았다. 안경도 겨우 들어가는 곳에 안경을 넣고 작동을 시켜봤다. 물이 흔들리는 건 보였지만 막상 꺼내보면 오염된 부분이 전혀 닦이지 않았다. 도무지 초음파 세척 능력이 없어 보였다. 기기를 분해해 보니 초음파 흉내를 내기 위한 진동모터만 달려 있었다. 물에 진동만 줘서 흉내를 낸 것이다. 뒤늦게 후기를 살펴보니까 나와 비슷한 사례가 많더라. 알았으면 절대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황당함을 전했다.
후기가 많다고 해서 품질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취미로 드론을 날린다는 B 씨는 2023년 알리에서 드론에 들어가는 리튬 배터리를 보관할 내화성 가방을 구입했다. 리튬 배터리는 보관 온도에 따라 화재나 폭발 위험이 높아 방폭 기능이 있는 가방에 보관해야 한다. 품질이 중요한 만큼 후기를 꼼꼼하게 읽었다. 100여 개의 후기는 대부분 상품이 좋다는 내용이었다. 가격도 국내 상품에 비해 5000원 정도 더 저렴했다. B 씨는 아무런 의심 없이 상품을 구매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제품은 내화성 가방이 아니었다. B 씨는 “국내 제품과 가격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아 하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다. 상품을 받아보니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내화성 가방과는 재질이 달라 보였다. 혹시 하는 마음에 캠핑용 토치로 살짝 불을 붙여보니 순식간에 가방이 녹았다. 불이 참 잘 붙더라. 환불 과정이 번거로운 것을 알기 때문에 따로 환불은 받지 않았지만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보니 재구매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했다.
이외에도 방석 크기의 거실용 카펫, 사진과 달리 손바닥만 한 크기의 책상용 스탠드, 겨드랑이가 찢어진 티셔츠 등 황당한 후기가 줄을 이었다. 누군가는 불량품을 받고 누군가는 하자가 없는 물건을 받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용자들 사이에서 C-커머스에서 구매한 제품은 ‘뽑기’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어떤 품질의 상품이 올지 모르므로 운에 맡긴다는 뜻이다.
최근 알리에서 내세우는 ‘무료 반품’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쇼핑몰 업체가 중간에서 중재를 하면 그나마 빠르게 처리가 되지만 현지 판매자가 직접 배송하는 상품을 샀다면 불량품을 받았음에도 환불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는 까닭이다.
환불 과정에서 중국인 상인과 두 달 가까이 실랑이를 벌였다는 C 씨는 “흰색 커튼을 구매했는데 회색 커튼이 왔다. 환불을 요청하니 판매자가 영어를 못 한다고 하더라. 할 수 없이 중국어 번역기를 이용해 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원활한 소통은 불가능했다”며 “판매자는 회색 커튼 사진까지 받아보고도 ‘흰색이 맞다’면서 ‘환불 대신 교환을 하라’고 요구했다. 몇 번의 언쟁 뒤로는 답이 없어 결국 환불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정부 관리 밖 C-커머스, 판매 금지 물품 버젓이 판매
국내에선 판매가 금지되거나 제한된 물품도 C-커머스에선 버젓이 팔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판매를 금지한 제품은 15가지로 △담배 △마약류 △의약품 △모의총포 △총검, 도검, 화약류, 분사기, 전자충격기, 석궁 △도수 있는 안경, 콘택트렌즈 △안전인증표시 없는 전기용품 또는 공산품 △음란물 △상표권 침해물품 △저작권 침해물품 △주류 △유해화학물질 △건강기능식품 △의료기기 △청소년유해물 등이다.
알리와 테무 등 C-커머스에 금지 품목들을 검색해 본 결과, 담배를 직접 만들어 피울 수 있는 키트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의사 처방 없이는 판매가 불가한 멜라토닌 캡슐, 정품 가격의 10분의 1로 팔리는 디즈니 인형 등을 누구나 구매할 수 있었다. 특히 테무의 경우 성인용품 이미지가 가려지지 않은 채 나타났다. 구입에 성인인증은 필요하지 않았다.
유해물질이 포함된 제품을 구매했다가 피해를 입어도 현재로서는 정부가 일일이 단속하기 어렵다. 이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는 까닭이다. 현행법상 국내 업체는 안전성을 확인하는 KC인증 마크를 취득하는 것이 필수다. 특히 어린이가 사용하는 제품의 경우 KC인증을 받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이나 과태료 등에 처하게 된다. 직접적으로 인체에 흡수 가능성이 있는 컵과 의류 등은 유해성 물질 검사도 필수다. 반면 중국 현지 판매자는 KC인증과 유해성 물질 검사를 따로 할 필요가 없다.
국내 영세 기업들은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한다. 해외 제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소상공인 김리나 씨는 “비슷하게 생겼다고 품질까지 같은 물건이 아니”라며 “어린이 옷 한 벌에 KC인증을 받기 위해 최소 150만 원이 들어간다. 옷을 만들 때 들어가는 주재료와 부재료 모두 인증을 받아야 한다. 통과가 안 되면 또 다른 것을 찾는 발품도 판다. 사업 전 드는 초기 자본이 만만치 않지만 안전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성실하게 일했는데 중국 업체는 이 모든 걸 비껴간다. 가격 경쟁력 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알리 측 관계자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문제가 된) 제품은 즉시 조치됐다. 내부적으로 국내(한국)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 제품을 금지하기 위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고 있다. 발견 즉시 조치하는 것은 물론 예방을 위한 선제적인 모니터링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며 “아직 현지화 초기 단계라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이른 시일 내에 더 많은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칼 빼든 공정위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그럼에도 소비자들의 피해 사례는 늘어나고 있다. 2023년 한국소비자연맹에 접수된 알리에 대한 소비자 불만 건수는 465건으로 전년(93건) 대비 5배로 늘었다. 유형별로는 배송 지연, 오배송, 상품 누락, 배송 중 분실을 포함한 계약 불이행이 226건으로 전체의 49%를 차지했다. 환불 거부 등은 143건(31%), 가품이나 제품 파손 등 품질 불만은 82건(18%)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소비자 상담 건수 역시 673건으로, 전년(228건)보다 3배로 늘어난 수치다. 2024년의 경우 1월에만 212건의 피해 상담이 접수됐다.
급증하는 민원에 공정거래위원회도 처음으로 조사에 나섰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2월 말 서울 중구 알리코리아 사무실에 전자거래감시팀 소속 조사관을 보내 소비자 분쟁 대응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공정위는 알리익스프레스가 전자상거래법에 규정된 소비자 보호 의무 규정을 제대로 지켰는지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 중개업자인 알리는 업체의 신원 정보와 환불 조건, 분쟁 처리 필요 조직 등을 소비자에게 정확하게 알릴 의무가 있다. 또 분쟁 처리에 필요한 인력과 조직도 충분히 운영해 소비자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다만, 국내 법인이 없는 테무와 쉬인에는 공문을 보내 서면조사를 진행한다.
한편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2024년 2월부터 알리·테무·쉬인 등 중국 쇼핑몰의 개인정보 처리 방침이 국내법을 준수하고 있는지 조사 중이다. 이에 대해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해외직구 회사들이 국내 사용자 개인정보를 해외로 이전했다면 이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는지, 투명한 처리방침을 세우고 있는지 등을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곳간’ 넉넉한 모기업 있음에…C-커머스 가파른 성장의 이면
알리익스프레스(알리)는 시가총액 240조 원대의 알리바바그룹이 해외 진출을 위해 만든 자회사다. 2018년 처음 한국에 진출했지만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제대로 된 물류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배송에만 10~30일 이상 걸렸기 때문이다. 일부 해외직구 애호가들 사이에서만 거론되던 수많은 유통업체 가운데 하나였다.
전환점은 팬데믹이었다. 코로나19 사태의 타격으로 내수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자 알리바바는 다시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전세계 200여 개국에 있는 알리바바그룹의 공급망이 그 기반이었다. 한국도 예외는 없었다. 알리바바는 2022년 11월 한국 전용 고객센터를 설립하고 이듬해 2023년 3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기자 간담회를 개최했다. 2023년 8월에는 한국 마케팅을 위해 국내 법인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 유한회사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국내 시장 확장에 나섰다.
투입된 자본은 막대하다.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 대표는 2023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국내 시장에 1000억 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CJ제일제당을 입점시키는 등 신선식품 유통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뿐만 아니라 2024년에는 한국 풀필먼트(상품을 미리 쇼핑 플랫폼 창고에 쌓아두는 방식) 물류 인프라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테무도 마찬가지다. 2022년 9월 ‘억만장자처럼 쇼핑하기’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처음 등장한 테무는 알리에 비해 시장 인지도가 낮은 상태였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슈퍼볼과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에 막대한 금액의 광고비를 지불했는데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테무가 2023년 집행한 온라인 광고 비용은 약 17억 달러(약 2조 2678억 원)였다.
그 뒤에는 모기업 핀둬둬가 있다. 핀둬둬는 중국의 공동구매 서비스 업체로 시가총액 260조 원이 넘는 기업이다. 저렴한 노동력과 생산원가를 기반으로 운영하는 제조업체들과 직접 계약하여 물건을 공급 받는 직매입 방식으로 중간 유통단계를 줄여 상품 가격을 낮추고, 판매자로부터는 거래 수수료와 광고료를 받아 몸집을 키웠다. 2023년 8월 국내 시장에 진입한 테무의 이용자 수는 반 년 만에 51만 명에서 581만 명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 커머스 기업들의 한숨은 짙어지고 있다. 한 커머스 관계자는 “가장 우려되는 점은 ‘초저가 대량소비’로 바뀌고 있는 소비 트렌드”라며 “질 좋은 제품을 하나 사서 오래 사용하기보다는 싼 가격의 제품을 대량으로 사고 그 중에서 괜찮은 것을 골라 쓰려고 하는 소비자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