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위즈잉에 역전승 뒤 결승서 스즈키에 불계승…석 달의 휴식 끝 달콤한 우승 “터닝포인트 될 듯”
2018년 창설된 센코컵은 8인 초청전의 세계대회다. 한중일과 대만 등을 대표하는 여자 기사들이 참가한다. 6번째 시즌(2020년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열리지 않았다)을 맞는 올해는 한국 1명(최정), 중국 1명(위즈잉), 대만 1명(루위화) 호주 1명(아미 송)과 주최국인 일본에서 4명(뉴 에이코, 우에노 아사미, 셰이민, 스즈키 아유미)이 참가했다. 일본 대표는 지난해 센코컵 국내대회 4강 진출자들이다.
2018년 첫 대회부터 한국 대표로 출전한 최정 9단은 그동안 이 대회와 인연이 없다가 지난해 중국 저우훙위 7단을 꺾고 처음으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8일 8강에서 일본의 셰이민 7단에게 승리하며 2연패에 다가섰고 9일 열린 4강에서는 숙적 중국의 위즈잉 8단을 상대로 고전하다 역전승, 2년 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결승 상대인 스즈키 아유미 7단은 최정 9단보다 열세 살 많은 41세의 노장으로 세계대회 우승은 물론 본선 경험도 많지 않아 최정 9단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다. 하지만 세계대회 첫 결승에 오른 스즈키 아유미 7단이 예상보다 준비를 잘해서 나왔고, 중반까지는 최정과 대등하게 맞서며 한때 승률에서 앞서가기도 했다. 그러나 후반에 강한 최정 9단이 조금씩 격차를 벌렸고, 스즈키 아유미 7단에게서 장고 끝에 악수가 속출하면서 결국 최정이 승세를 굳히며 승리를 가져갔다.
결승 대국 후 최정은 “이번 대회는 매판 다 어려웠다. 특히 4강에서 위즈잉 선수하고 둔 바둑은 많이 나빴고 끝나고 나서도 개인적으로 반성을 많이 했던 대국이었다”면서 “결과가 좋아 너무 기쁘고 응원해주신 팬들께 감사드린다. 올해도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번 센코컵 우승은 최정에게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지난 10년여 동안 세계여자바둑 정상 자리를 지켜왔던 최정은 3개월 전 ‘천재 소녀’ 김은지와의 여자기성전 결승3번기에서 1-2로 패퇴, 권좌에서 내려왔다. 이후 최정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며 바둑리그와 각종 세계대회 선발전 등에 잇달아 불참하며 컨디션 조절을 위한 칩거에 들어갔다. 그리고 겨울 동면 같은 3개월여의 휴식에서 돌아온 최정은 센코컵을 품으며 김은지와의 리턴매치를 기대케 하고 있다.
한 바둑 전문가는 “최정과 김은지가 열한 살 차이가 나지만 실력이나 관록으로 볼 때 결승전 하나의 결과만으로 김은지가 최정을 넘어섰다고 하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최정으로서도 김은지가 부담이 가는 상대인 것만은 확실할 것”이라면서 “향후 약 2~3년은 두 기사가 정상에서 치열하게 다툴 것이며, 이후 한국으로 건너온 나카무라 스미레 3단까지 가세한다면 여자바둑계에 유례없는 르네상스 시대가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이 주최하는 2024 센코컵의 상금은 우승 1000만 엔(약 9000만 원), 준우승 300만 엔, 3위 200만 엔, 4위 100만 엔이다. 제한시간은 각자 2시간에 1분 초읽기 5회가 주어졌다.
[승부처 돋보기] '슬로 스타터' 막판 뒤집기
2024 센코컵 월드바둑여자최강전 준결승전, 흑 최정 9단(한국) 백 위즈잉 8단(중국) 339수끝, 흑5집반승
#1도(흑, 턱밑까지 따라붙다)
센코컵의 실질적인 결승전은 최정과 위즈잉의 4강 대결로 보는 것이 맞다. 일본 스즈키 아유미 7단은 40세를 훌쩍 넘긴 노장. 결승에 올랐다는 것 자체로 할 만큼 했다는 현지의 평이 있었다.
최정은 실력에 비해 초반 포석이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전투력을 앞세워 중반부터 힘을 발휘하는 스타일이어서 ‘슬로 스타터’의 전형으로 꼽힌다. 이 바둑 역시 그동안의 패턴을 벗어나지 못했다. 위즈잉은 중반 한때 반면으로 5집, 덤까지 11집 반을 앞서며 99.7% 승리 확률을 기록했지만, 결국 최정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그 시초가 백1이다. 좌변 흑의 사활을 위협하고 있지만 흑2와 교환되어 명백히 손해다. 백3엔 흑4로 이어 최정의 추격은 턱밑까지 이르렀다.
#2도(위즈잉, 연속된 실수)
위즈잉은 전성기 시절 돌연 상하이 재경대학 신문학과에 진학했다. 중국에서 바둑 외길을 벗어났다는 소식에 아쉬워하는 소리가 많았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바둑과 공부를 병행한 탓인지 기력 하락이 눈에 보일 정도가 됐다. 특히 후반 초읽기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실전이 부족한 탓일 게다. 1도에 이어 초읽기에 쫓기는 위즈잉에게 연속으로 실수가 나온다. 백1이 패착. 좌하 흑에 선수가 되지 않는다. 흑2부터 백7까지 납작하게 눌리고 흑10으로 백 2점마저 흑의 수중에 들어가서는 미세하나마 역전이 됐다.
#3도(백의 최선)
2도 백1로는 이 그림 백1로 단수를 결정한 다음 3으로 하변을 넓히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랬으면 백이 2집쯤 우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게 AI(인공지능)의 결론이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