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입원·수술 줄자 휴직·휴가 권고…“위험 업무 떠안으며 교수 짜증까지 감내”
전국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해 집단 사직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정부는 지난 20일 브리핑을 통해 내년도 전국 의대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경기·인천지역 대학에 361명(18%), 지방 대학에 1639명(82%)이 신규 배정된다. 정부 발표 이후 이후 서울대·연세대·성균관대 의대 교수들은 성명을 내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서울대·연세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오는 25일까지 취합된 사직서를 일괄 제출하기로 했다.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이미 의료 대란을 겪고 있는 터에 주요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한다면 더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대형병원 간호사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사태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호소가 내부에서 나온다. 상급종합병원들에서는 의료진 공백 탓에 입원·수술 건수가 감소하자 관련 분야 간호사들이 무급휴직 권고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 소요(수익)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호사 인력이 남는 것으로 판단하고, 인건비 지출을 줄이려는 계산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의료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빅5’(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 상급종합병원의 병상가동률은 50~60%대다.
현장의 간호사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꼴”이라고 호소한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간호사 A 씨는 “무급휴직을 강제로 시키지 않는다고 해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동료뿐 아니라 나도 무급휴직을 써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서울아산병원은 ‘무급휴가’를 제시하기도 했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무급휴직은 아니고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다”며 “강제하진 않고 신청자에 한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또 다른 상급종합병원 간호사 B 씨는 “현재 무급휴가가 진행 중으로, 자율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병원에서 임금 미지급 사태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연차 사용이나 무급휴가 사용을 독려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이어 “노동조합이 있어 병원이 강요를 하진 않지만 간호파트장들에게는 무급휴가를 강제하는 분위기인 것으로 안다. 이는 어느 병원이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대한간호협회와 현장 간호사들의 시선은 다소 엇갈린다. 간호협회 한 관계자는 “가정이 있거나 당장 생계를 위해 (벌이를) 유지해야 하는 간호사들은 무리겠지만 현장에서 무급휴직·휴가를 원하는 간호사들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노조 관계자는 “대한간호협회에서 적극적으로 간호사들의 상황을 보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불신을 드러냈다.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일부 의대 교수들에게 부당한 언행 대우를 받아 정신적 고통이 크다는 호소도 나온다. 기자와 만난 한 상급종합병원 간호사 C 씨는 “저녁에 환자를 살피다가 처치 등이 필요해 (교수에게) 연락하면 퇴근한 상황이라 그런지 짜증을 내며 설명한 뒤 빠르게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한다”며 “전공의가 없어 교수 업무가 늘었기에 피곤한 것은 알지만 다 같이 힘든 상황에서 짜증을 들을 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간호사들의 업무 환경이 전공의 집단 사직 전에도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전공의 부재를 메우는 과정에서 위급한 상황에 직접 책임을 져야 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치솟고 있다. PA(진료보조) 간호사들이 특히 그렇다. 그동안 많은 상급종합병원에서 PA 간호사가 의사 업무 상당 부분을 대신하는 것이 관행으로 이어져 왔지만 정작 의료법상 PA 간호사의 역할에 대한 제대로 된 규정은 없다.
상급종합병원 간호사 B 씨는 “당장 전공의 빈 자리를 대신해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책임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전공의 업무를 맡았다가 업권 침탈, 무면허 의료행위 등으로 고소·고발을 당할 수 있어서다. 실제 2020년 전공의 파업 당시 일부 간호사들이 정부 지시에 따라 역할을 수행했다가 전공의들에게 무면허 의료행위로 고발당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지난 2월 27일 보건복지부는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한시적으로 간호사가 의사 업무 일부를 합법적으로 대신할 수 있도록 한 시범사업을 시작하고, 지난 7일에는 간호사들이 의사 업무를 합법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을 공개했다. 의료법 제2조 5항에 따르면 그동안 간호사 업무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보조’로 규정돼 있었다. 보완 지침에선 간호사를 △일반 간호사 △PA 간호사 △전문 간호사로 분류해 약물 투입, 응급심폐소생, 기도삽관 등 98가지의 행위를 수행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간호사들은 정부가 간호사들의 임무 수행에 대한 법적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간호사의 업무영역과 위급 상황시 처리할 수 있는 업무를 법적 근거로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전공의 업무를 위임받은 간호사들에 대한 법적 보호가 시급하다.
PA 간호사에 대한 법적 제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는 간호법 개정안과도 연결된다. 앞서 지난해 4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 개정안은 기존 의료법에서 간호 관련 내용을 떼어내 간호 인력의 자격과 업무, 처우 등을 규정하는 별도법으로 간호사 업무 범위를 명확히 제시했지만 이 개정안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 처리됐다.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복지부 지침에 따르면 전공의 업무 98가지 중 89가지는 간호부서장과 병원장이 협의해 간호사들이 진행할 수 있도록 했는데, 현실적으로 의료 사고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 결국 간호사들이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이번 의료 대란에 간호사 업무 범위를 명확히 정해줄 것 같은 기색을 보이지만 전공의가 돌아오면 다시 토사구팽 될 수 있다”며 “간호법 개정을 조속히 재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