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진통제 스타’ 남편 의문사 뒤 비극 속으로…
진 할로라는 여배우는 할리우드 역사에서 마릴린 먼로 이전에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여배우다. 최고의 스타덤을 경험했지만 26세에 삶을 마감해야 했던 그녀는 ‘베이비’라는 애칭과 함께 당대의 글래머로 군림했던, 지금으로 치면 전형적인 ‘베이글녀’였다. 흑백영화 시절이었음에도 그녀의 ‘플래티넘 블론드’, 백금색 머리카락은 유명했고 대담한 농담들로 대중들을 사로잡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갱스터의 연인이었으며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영화 제작자의 어린 아내였다.
마릴린 먼로는 그녀가 자신의 우상이라고 했다. 마돈나는 ‘Vogue’라는 노래에서 그레이스 켈리와 함께 그녀를 ‘뷰티 퀸’으로 부르기도 했다. 만화 <배트맨>의 원작자인 밥 케인은 ‘캣우먼’ 캐릭터를 만들면서 헤디 라마와 함께 그녀를 참조했다. 대공황 시절을 가로지르며 미국인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들어주었던 인물. 진 할로는 당대의 진통제 같은 스타였다.
진 할로가 11세 때 부모는 이혼했고 그녀는 엄마를 따라 할리우드로 갔다. 배우 지망생이었던 엄마는 딸을 통해 자신의 꿈을 대신 이루려 했던 것. 하지만 부동산 갑부였던 외할아버지는 캔자스시티로 딸과 손녀를 불러들였다. 이 시기 모녀는 모두 사랑에 빠진다. 먼저 엄마는 마리노 벨로라는 누가 봐도 사기꾼이 분명한 겉만 번지르르한 유부남과 불륜 관계를 맺었다. 할로의 외할아버지는 돈으로 위자료를 해결해 벨로를 이혼시키고 자신의 딸과 결혼시켰다. 한편 할로는 블라인드 데이트에서 만난 부잣집 아들 찰스 맥그류를 사랑하게 되었다. 삶이 따분했던 16세 소녀는 20세의 청년과 결혼했고 베벌리힐스의 저택에 신혼집을 차렸다. 그러자 엄마와 계부도 LA로 왔다. 부자 사위의 덕을 보려는 심사였다.
그저 엄마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친구 따라 가끔씩 엑스트라로 출연하긴 했지만(그녀의 본명은 할린 카펜터. 진 할로는 엄마의 이름이다) 딱히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딸을 스타로 만들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엄마. 당시 18세의 진 할로는 첫 임신을 했고 엄마는 배우 생활을 위해 강압적으로 낙태를 부추겼다. 그 사실로 인해 할로는 이혼을 하게 되고 결국 그녀는 가족을 부양하고 먹고 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연기를 해야 했다.
이때 만난 항공 산업계의 거물이자 영화 제작자인 하워드 휴즈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그녀는 위트 있고 밝은 모습이지만 왠지 모르게 음산한 느낌을 어필하면서, 매주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탈색시킨 흰색에 가까운 금발, 즉 ‘플래티넘 블론드’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이 머리의 유행으로 미국 지역 과산화수소 판매가 급증할 정도였다. 로버트 테일러, 클라크 게이블, 제임스 스튜어트 등의 스타들과 데이트를 하며 벅시 시겔 같은 갱스터와도 어울리던 할로. 그녀의 부모는 애브너 즈윌만이라는 순정파 갱스터에게 할로를 소개시켰고, 즈윌만은 엄청난 선물 공세와 함께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의 제작비를 대기도 했다. 이때 그녀에게 빠진 또 한 명의 남자는 무려 22세 연상인 MGM의 제작자 폴 번이었다. 독일 태생으로 연극 무대를 거쳐 할리우드에 안착한 폴 번은 22세 때 어머니의 자살을 경험한 이후, 자신도 그 유전적 영향을 받았을지 모른다는 강박에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그에 대한 소문들은 좋지 않았다. 여배우들과 몇몇 염문이 있었지만 로맨스로 발전되진 못 했는데 그 이유는 폴 번의 물건이 너무 작아서, 혹은 그가 임포텐스(발기부전)이기 때문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할로는 그와 결혼하기로 결심했고 사람들은 그녀가 성공을 위한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갱스터 연인이었던 즈윌만은 폴 번이 게이라며 할로를 말리기도 했다.
▲ MGM의 제작자이던 남편 폴 번(오른쪽)과 진 할로. |
이때 스트릭클링은 방명록에서 이상한 문구를 발견했다. “친애하는 그대에게 / 불행하게도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행한 끔찍할 정도로 잘못된 일을 보상하고 나의 참담한 굴욕을 지우는 유일한 방법이군요. 사랑해요 / 폴이 / 지난 밤 일은 단지 코미디였다는 것을 이해해주었으면 해요.”
이 네 줄짜리 글은 폴이 누군가에게 쓴, 마치 유서와도 같은 것이었다. 오후에 도착한 경찰은 폴 번의 손에 있는 38구경 권총의 발사 흔적을 근거로 자살로 판명했다. 할로는 경찰 증언에서 “그와 나 사이엔, 이런 비극을 초래할 만한 그 어떤 일도 없었다”고 말했고, 이후엔 모르쇠로 일관했다. 메이어는 사건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대중의 동정을 받아야 하고, 그러려면 폴 번을 성적으로 문제 있는 남편이었다고 몰고 가라고 주문했지만 할로는 거절했다. 죽은 지 3일 만인 9월 8일에 검시가 이뤄졌고 그 결과 자살이라는 것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사건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폴 번의 형인 헨리 번이 나타나 동생이 임포텐스가 절대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제3의 여인’을 언급한 것이다. 그녀는 폴 번과 사실혼 관계였던 도로시 밀레트라는 여성이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