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난에다 성장성 불확실, 최연혜 사장 뜻이란 분석도…가스공사 “속도조절 한다고 보면 될 것”
#메가스테이션 착공도 못해
한국가스공사는 2021년 5월 GS칼텍스와 ‘액화수소 생산 및 공급 사업의 성공적 론칭 및 전략적 제휴’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두 회사는 당시 연산 1만 톤(t) 규모의 액화수소 메가스테이션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액화수소 메가스테이션은 한국가스공사 액화천연가스(LNG) 기지에서 수소를 추출한 후 액화수소로 변환·저장하고 수도권 액화수소 충전소에 공급하는 사업이었다.
한국가스공사는 2024년 12월 액화수소 메가스테이션 준공을 목표로 삼았다. 에너지업계에서는 두 회사가 합작법인을 설립한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러나 2024년이 되도록 액화수소 메가스테이션 완공은커녕 착공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액화수소 메가스테이션 사업이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GS칼텍스 관계자는 “시장 상황을 고려해 적절한 프로젝트 진행 시기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가스공사는 액화수소 메가스테이션뿐 아니라 다른 수소 사업에서도 하나둘 발을 빼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앞서 지난해 12월 이사회를 열고 ‘K-R&D 캠퍼스 구축사업’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한국가스공사는 2020년 6월 대구광역시와 K-R&D 캠퍼스 구축 관련한 MOU를 체결했다. MOU의 주요 내용은 대구광역시에 천연가스·수소 연구센터, 상생협력관, 홍보·체험관, 지역 문화센터 등 복합 테마파크를 조성함으로써 수소 및 지역 경제 활성화에 주력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다. 수소충전소 운영 업체 수소에너지네트워크(하이넷)는 최근 재무구조가 악화되면서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하이넷 지분 28.52%를 가진 최대주주다. 그러나 한국가스공사는 하이넷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이넷으로서는 자금 수혈을 하지 않으면 부도 위기에 놓이게 된다. 이 밖에 한국가스공사는 지난해 호주 그린수소 사업도 중단했다.
#예전 같지 않은 관심
이 같은 한국가스공사의 수소 사업 축소·중단은 지속적인 적자로 인한 재정난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해 7474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최악의 실적을 거뒀다. 다만 한국가스공사의 올해 전망이 나쁘지는 않다. 무엇보다 총선 후 가스요금 인상이 예상된다. 한국가스공사도 지난해 실적을 발표하면서 “2023년 당기순손실은 대부분 과거의 누적된 비용요인이 일시에 반영된 것”이라며 “2024년에는 일회성 비용이 대부분 사라진 만큼 당기순이익 시현 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가스공사가 계획한 투자를 줄줄이 중단할 정도로 재무가 악화됐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한국가스공사의 부채총액은 2022년 말 52조 142억 원에서 2023년 말 47조 4286억 원으로 되레 8.82% 줄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도 499.62%에서 482.68%로 16.94%포인트(p) 감소했다.
일각에서는 한국가스공사가 수소 사업에 대한 성장성을 낮게 봤기 때문에 사업을 축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재국 국회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선임연구관은 “한국가스공사는 지난해 호주 그린수소 사업을 중단하는 등 현재 기업들은 수소 사업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적극적 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며 “수소 자체로는 무탄소 에너지원과 에너지 운반체 역할을 하는 궁극의 에너지원임은 분명하지만 수소 관련 기술 중 연료전지 이외에서 뚜렷한 성과를 낸 기술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수소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예전 같지 않다. 국토교통부(국토부)에 따르면 전국에 등록된 국내 수소차는 2023년 2월 3만 548대에서 2024년 2월 3만 4535대로 3987대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전체 자동차 수는 2559만 6536대에서 2601만 9547대로 42만 3011대 증가했다. 전체 증가분에서 수소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0.94%에 불과한 셈이다.
#줄어드는 정부 수소 지원금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의 뜻에 따라 경영 방침이 변경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올해 초 수소·신사업본부를 수소·신사업단으로 격하시키는 등 내부적으로도 수소 사업 비중을 줄이는 분위기다. 한국가스공사는 2022년 12월 채희봉 전 한국가스공사 사장의 후임으로 최연혜 사장을 선임했다. 최 사장은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비례대표로 출마해 당선된 바 있다.
최 사장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적극적으로 반대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심지어 2018년에는 ‘대한민국 블랙아웃: 독일의 경고-탈원전의 재앙’이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최연혜 사장은 지난해 1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수소는 분명히 미래 에너지지만 아직 초기 단계로 불확실성이 너무 큰데 회사가 수소와 관련해 너무 많은 분야에 발을 들여놨다”며 “앞으로는 수소 탱크와 같이 한국가스공사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실적을 낼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수소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가스공사의 행보는 국내 수소 산업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전임 사장 재임 시절 수많은 에너지 업체와 수소 사업 관련 MOU를 체결했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 시작하지 않은 사업을 취소하면 큰 피해는 없겠지만 하이넷처럼 사업을 시작했는데 한국가스공사가 발을 빼면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피해를 보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정부 차원의 수소 지원금도 줄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수소산업진흥기반구축 예산을 지난해 82억 2900만 원에서 올해 75억 7100만 원으로 줄였고, 수소유통기반구축 예산도 113억 6300만 원에서 98억 3400만 원으로 축소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12월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제6차 수소경제위원회’를 개최했다. 이날 정부는 2030년까지 수소차 30만 대를 보급하고, 수소충전소 660기 이상을 구축하겠다는 구체적 수치가 명시된 목표를 내걸었다. 그러나 현실은 수소 예산을 삭감하고 있고, 관련 정책을 주도하는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도 수소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 수소 관련 기술의 성공 가능성을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에너지업계에서 수소 사업 발전을 위해 정부 차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와 관련, 한국가스공사 관계자는 “수소 사업을 접는 것은 아니고 속도조절을 한다고 보면 될 것”이라며 “사업 진행 상황을 봐서 순차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