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아열대화로 이집트숲모기 서식 가능해져…흰줄숲모기가 감염자 물어 바이러스 보유할 수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언론에 세계보건기구(WHO)가 등장하면 긴장하며 바라보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해외 지역의 감염병 관련 소식이 더 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니라는 점, 그만큼 우리가 글로벌 사회에 살고 있다는 점을 코로나19를 통해 뼈저리게 체감했기 때문이다.
3월 29일(한국시각) WHO 미주 본부인 범미보건기구(PAHO)는 “캐나다를 제외한 사실상 모든 미주 지역에서 4가지 뎅기열 유형(혈청형)이 모두 관찰되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혈청형이 동시에 유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브라질과 파라과이 등 남미 지역에서 크게 유행하는 뎅기열이 미주 지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2024년 들어서만 296만 6339명이 뎅기열에 감염된 브라질에선 벌써 사망자만 758명에 이른다. 파라과이에서는 19만 1923명이 뎅기열에 감염됐는데, 상황은 브라질보다 더 심각하다. 브라질은 전체 인구의 1.4%가 뎅기열에 감염된 데 반해 파라과이는 전체 인구의 3% 가까운 수치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페루, 콜롬비아, 푸에르토리코 등 남미 전역이 뎅기열로 시름하고 있다.
최근 북미 지역인 미국에서도 뎅기열 환자가 나오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미주 지역 전체 2024년 뎅기열 감염자 수는 357만 8414명, 사망자는 1039명이다. 2023년 같은 시점 대비 3배 정도 많은 수치다.
뎅기열은 과거에도 존재했던 질병으로 뎅기 바이러스를 가진 모기가 사람을 무는 과정에서 전파되는 풍토병이다. 주로 아시아, 남태평양 지역,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 등 뎅기 바이러스를 가진 모기가 서식하는 열대지방과 아열대 지방에서 자주 발생한다.
뎅기열에 감염되면 고열과 두통, 근육통과 관절통, 피부 발진 등의 증상이 갑작스럽게 나타나는데 주로 일주일가량 지나면 증상이 사라진다. 그렇지만 신체 출혈, 혈압 저하 등의 합병증이 나타날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 특히 무서운 것은 사망률이 20%에 이르는 중증 뎅기감염증(뎅기출혈열, 뎅기쇼크증후군)이다. 뎅기열 환자의 5% 가량이 중증 뎅기감염증으로 진행될 수 있다.
뎅기열 환자 증가는 이상 고온 현상, 급속한 도시화, 기후 변화로 인한 가뭄과 홍수, 열악한 위생 상태 등이 원인이다. 엘니뇨 현상에 따른 이상 고온 현상으로 뎅기 바이러스를 가진 모기의 개체수가 전세계적으로 늘어난 데다 브라질의 경우 2023년 11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이어진 집중호우가 상황을 더욱 힘겹게 만들었다.
뎅기열 환자는 국내에서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다행히 국내에는 뎅기 바이러스를 가진 모기가 서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해외여행객이 늘면서 해외에서 모기에 물려 뎅기열에 걸리는 환자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해외여행이 왕성했던 2019년 273명의 뎅기열 환자가 발생한 뒤 2020년(43명), 2021년(3명)에는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다시 해외여행객이 늘면서 2022년 103명, 2023년 205명으로 늘었다. 이는 일본뇌염 환자 수에 비해서도 상당히 많은 수치다. 일본뇌염 바이러스를 가진 모기는 국내에 서식하고 있는데, 2022년 11명, 2023명 16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모기를 매개로 사람이 감염될 수 있는 플라비바이러스는 5종으로 뎅기열을 비롯해 황열, 지카바이러스감염증, 웨스트나일열, 일본뇌염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국내 서식 모기에서도 나타나는 플라비바이러스는 일본뇌염 바이러스가 유일하다.
문제는 한국에서도 뎅기 바이러스를 가진 모기가 서식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의 열대지방과 아열대 지방에서는 뎅기 바이러스를 가진 모기가 서식하고 있는데 2010년부터 제주도도 아열대 기후를 보이고 있다. 뎅기 바이러스를 가진 모기로는 이집트숲모기와 흰줄숲모기가 대표적인데 이집트숲모기의 경우 1월 평균기온이 10℃ 이하의 지역에서는 서식하지 못한다. 그런데 현재 제주도는 1월 평균기온이 10℃를 조금 넘어 이집트숲모기의 서식이 가능해졌다.
흰줄숲모기는 이미 국내에 서식하고 있지만 뎅기 바이러스는 가지고 있지 않다. 국내에 서식하는 흰줄숲모기에게서 뎅기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문제는 해외에서 뎅기열에 걸려 귀국하는 감염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 서식하는 흰줄숲모기가 해외유입 뎅기열 감염 환자를 물어 바이러스를 보유할 위험성이 커진다. 그렇게 되면 흰줄숲모기를 매개로 국내에서 뎅기열 지역발생 환자가 크게 늘어날 수도 있다. 실제로 2014년 일본에서 해외여행력이 없는 162명이 뎅기열에 걸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일본 도쿄 요요기 공원에서 모기에 몰린 시민들에게 뎅기열이 집단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질병관리청은 4∼10월 전국 공항·항만 19곳에서 감염병 매개체 감시 사업을 벌인다. 국내 미서식 모기종이 비행기나 선박을 통해 국내로 유입되는 것을 감시해 유입된 모기에 병원체가 있는지 확인하는 사업으로 해외 유입 감염병의 토착화 방지가 목적이다.
질병청은 매년 감염병 매개체 감시 사업을 벌여왔는데 통상 6월부터 시작되는 감시 사업을 2024년에는 두 달 앞당겨 4월부터 진행한다. 모기 채집 지점도 종전 29곳에서 36곳으로 늘린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