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빈 감독 “좋은 스윙과 스킬 보유”…상대 투수 “컨택 능력 뛰어나”
이정후는 인터뷰 때마다 “아직은 잘 적응한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단 적응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이정후의 메이저리그 적응을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만난 야구인들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이정후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
LA 다저스와 경기가 열리는 다저스타디움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 이가 있다. 보라스코퍼레이션의 대표인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다. 보라스는 다저스타디움에서 가장 비싼 포수 뒤쪽 좌석을 마련해 회사 관계자나 선수 가족들을 초대해 같이 경기를 즐긴다.
4월 3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팀 훈련 즈음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이정후의 부모님인 이종범 전 코치와 어머니 정연희 씨다. 이날 스캇 보라스는 이 전 코치 부부를 다저스타디움에 초대해 보라스코퍼레이션 전용 좌석을 내줬다. 보라스는 1회부터 9회까지 날씨가 꽤 추웠음에도 꼼짝 하지 않고 기록을 적으며 경기를 지켜봤다.
경기 전 스캇 보라스와 만나 인터뷰를 했다. 보라스는 이정후의 활약을 두고 “경이롭다”고 표현했다.
“이정후는 공격에서 능력과 수비에서 실력 등 5툴 플레이어로 완성형 선수가 돼가는 데 놀라움이 뒤따른다. 이정후는 투수가 던지는 공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체형적으로 완성돼 있고, 상체가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이다. 손도 번개처럼 빠르며 당신도 느꼈듯이 헛스윙을 잘 안 당한다. 어떻게든 방망이에 공을 맞춰 내고, 배럴 타구(발사각 26~30도, 타구 속도 98마일(157.7㎞/h) 이상인 이상적인 타구)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뛰어난 선구안을 자랑한다. 그는 좋은 재능을 갖춘 선수다.”
그래서 스캇 보라스에게 이정후가 지금처럼 좋은 출발을 할지 예상했느냐고 물었다. 보라스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모든 사람이 간과하고 있는 게 그는 생각보다 훨씬 더 타구를 담장 밖으로 넘길 수 있는 파워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은 KBO리그 투수들보다 빠르지만 그것 때문에 이정후가 빠른 배트 스피드로 그 공들을 타격한다면 반발력이 높아 더 멀리 날려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보라스는 이정후가 타석에서 헛스윙 비율이 낮은 것과 관련해서 “드물게 좋은 선구안”을 꼽았다.
“이정후는 후안 소토(뉴욕 양키스)와 같은 선구안을 자랑한다. 스트라이크 존 설정을 잘하고 있고, 자신의 존 안에 들어온 공을 구별해내 스윙한다.”
스캇 보라스는 덕담으로 “이정후, 나는 너의 플레이를 메이저리그에서 20년 동안 볼 수 있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소속팀 감독 밥 멜빈
샌디에이고 감독 시절 지금의 김하성을 만든 샌프란시스코의 밥 멜빈 감독은 경기 전과 후에 진행되는 기자들과 인터뷰 때마다 이정후 관련 질문을 받는다. 그는 4월 3일 LA 다저스전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길게 이정후 이야기를 풀어냈다.
“아시아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데 필요한 요소가 무엇이냐고 묻는데 그냥 야구를 많이 해야 한다. 계속 배우려 하고 상대에 대해 파악하고 새로운 스타일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다. 이미 훌륭한 모범 사례가 있지 않나. 지금의 이정후다. 이정후는 야구를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야구를 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멜빈 감독은 이정후의 헛스윙 비율이 적은 것과 관련해서도 칭찬을 했다.
“그는 좋은 스윙과 야구 스킬을 갖고 있다. 순간 집중력이 좋은 것 같고 빅리그 투수들의 공을 모두 처음 상대하는데 잘하고 있다. 이게 어쩌면 그의 스타일인지도 모르겠다.”
멜빈 감독은 한 외국 기자가 질문한 ‘이치로와 이정후의 공통점’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이정후가 이치로를 롤 모델로 삼고 성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등번호 51번이 이치로를 의미한 것 아닌가. 이정후가 스윙할 때 팔을 쭉 뻗어주는데 이치로는 배팅 연습 때 팔로우 스윙을 크게 돌렸다. 그렇지만 정작 게임에 들어가면 그걸 짧게 가져가는데 이정후는 그렇지 않다. 이치로보다 스윙을 길게 가져간다. 이정후가 어떤 선수를 롤 모델로 해서 타격 매커니즘을 완성했는지 묻는다면 나는 이치로라고 대답할 것이다.”
외국 기자들도 좌타자 이정후의 좌투수 공략법이 궁금했다. 그래서 멜빈 감독한테 관련 질문을 물었고, 멜빈 감독은 “사실 다른 점을 모르겠다”고 응수한다.
“이정후는 스프링캠프에서도 왼손투수를 상대로 좋은 대응법을 보였고, 어제 (다저스의 제임스) 팩스턴을 상대한 것처럼 그냥 자신의 감각대로 임하는 것 같다. 타석에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정후에게 우완, 좌완 투수 선호도에 물어봤는데 그는 좌우 투수를 가리지 않고 마운드에서 날아오는 볼에 집중해 강한 타구를 만들어낸다고 말하더라.”
#빅리그 투수들, 제임스 팩스턴과 블레이크 스넬
이정후는 4월 2일 LA 다저스전에서 다저스의 좌완 선발 투수 제임스 팩스턴을 상대해 첫 타석부터 안타를 뽑아내는 등 멀티 히트를 기록했다. 팩스턴은 2013년 빅리그에 데뷔해 통산 156경기, 64승38패, 850⅔이닝 평균자책점 3.69를 기록한 베테랑 투수다. 팩스턴은 이정후에게 2개의 안타를 내줬음에도 이날 샌프란시스코를 상대로 시즌 첫 승을 올리는 수확을 거뒀다. 경기 다음 날 다저스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제임스 팩스턴에게 이정후에 대한 질문을 건넸더니 그는 “아주 좋은 스윙을 갖고 있는 선수”라고 설명했다.
“나는 어제 패스트볼로 승부하려 했고, 이정후는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공 하나 정도 들어가는 코스에 스윙해서 2개의 안타를 만들었다. 내가 보기에 이정후는 컨택 능력이 뛰어난 선수다. 아마 치기 좋은 공을 준다면 파워도 보여줄 것으로 생각한다. 빠르게 잘 움직이고 달리기도 잘하며 인플레이 상황을 자주 만들 수 있는 선수로 보인다.”
지난해까지 샌디에이고의 김하성과 한 팀에서 활약했던 블레이크 스넬은 2023시즌 평균자책점 2.25에 14승 9패 234탈삼진을 기록하며 2018년에 이어 개인 두 번째 사이영상을 받은 선수다. 올 시즌을 앞두고 자유계약(FA) 시장에서 투수 최대어 중 하나로 평가받았지만 개막 열흘을 앞두고 샌프란시스코와 계약 기간 2년, 총액 6200만 달러(약 839억 원) 계약을 체결했다.
스넬은 오는 9일 워싱턴 내셔널스와 홈 시리즈 1차전에 선발 등판할 예정이다. 그런 그가 이정후의 메이저리그 데뷔 첫 홈런을 지켜보고 이런 설명을 곁들였다.
“매우 놀라운 선수다. (타석 전) 차분하게 생각을 많이 하면서 장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시즌 초반 아주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다. 사실 이정후가 (샌디에이고의) 톰 코스그로브를 상대로 홈런을 터트렸을 때 무척 놀랐다. 보통 메이저리그에 처음 오는 선수들은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데 이정후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내가 샌디에이고에 있을 때 코스그로브의 슬라이더와 스위퍼가 얼마나 뛰어난 줄 잘 알고 있다. 그가 그런 공을 시즌 내내 던지는 걸 봤다. 코스그로브는 스위퍼에 이은 빠른 공으로 좌타자들을 상당히 괴롭혔다. 그런 상황에서 이정후가 코스그로브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데뷔 첫 홈런을 터트렸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선배이자 동료 김하성
이전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만난 김하성은 이정후와 함께 홈 개막전을 치른 소감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정후가 타격할 때 내가 수비를 한 건 거의 처음인 것 같은데 직접 수비해 보니 정말 좋은 타자라는 걸 느꼈다. 좋은 유인구에도 쉽게 방망이가 나오지 않았고, 오늘 치는 걸 보니 당연히 컨택도 좋았다. 배럴 타구도 2개나 만들었다. 힘든 상황에서 희생플라이로 타점을 올리는 걸 보고 올 시즌 정말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시즌 개막 후 계속 원정 경기를 치르다 4월 6일 오라클파크에서 2024시즌 개막전을 갖는다. 그런데 상대 팀은 ‘하성 형’이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샌디에이고 원정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했던 이정후로선 4월 4일 LA 다저스전에서 ‘무출루’에 대한 생각을 잊고 재정비해서 홈 개막전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