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골이 심하거나 수면 패턴 다르거나 잠귀 밝다면…“따로 자면 더 행복하고 건강, 수면 ‘이혼’ 아닌 ‘동맹’”
사랑의 힘은 강력하다. 하지만 이 열정적인 감정도 극복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으니, 바로 잠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꿀잠이다. 상대의 코골이 때문에, 혹은 잠버릇이나 서로 다른 수면 패턴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잘 경우 오히려 부부 사이가 나빠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역시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한 이와 같은 주장을 소개했다. 요컨대 부부가 각방을 사용해서 최소한의 ‘수면권’을 보장해준다면 오히려 사이가 돈독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부부 사이뿐만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실제 잠만 따로 자는 ‘수면 이혼’을 실시하고 있는 부부들 가운데는 예전보다 사이가 더 좋아졌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수면 이혼’은 부부 사이를 더 가깝게 할까, 아니면 오히려 더 멀게 할까.
점점 더 많은 부부들이 수면의 질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면 이혼을 선택하고 있다. 2000명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한 ‘미국수면학회(AASM)’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면 이혼을 선택한 부부들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미국 성인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부부 사이를 위해서 수면 이혼을 실천하고 있다.
폐 전문의이자 AASM 대변인인 시마 코슬라 박사는 “잠을 제대로 못 자면 기분이 나빠진다. 잠이 부족한 사람들은 배우자와 말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숙면은 건강과 행복을 위해 중요하기 때문에 몇몇 부부들이 서로의 웰빙을 위해 각방을 사용하고 있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수면개선위원회’가 미국 부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역시 많은 부부들이 잠을 잘 때 얼마나 고충을 겪고 있는지를 나타냈다. 밤에 잠을 자는 데 문제가 있다고 답한 성인 85% 가운데 40%는 배우자가 뒤척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또한 독일에서 진행된 2016년 조사는 수면과 부부 갈등이 종종 동시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UC 버클리의 2013년 연구에 따르면 배우자로 인해 수면을 방해받을 경우 다음날 부부 사이에 다툼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 나타났다.
이처럼 수면 부족으로 부부 사이가 악화되는 불충분한 수면이 주는 부정적인 영향 때문이다. 가령 밤에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분이 나빠지며,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고혈압, 당뇨, 뇌졸중, 심혈관질환, 우울증, 치매, 면역력 저하 등의 위험을 높인다. 이와 관련,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임상의학과 부교수이자 수면 전문가인 라지 다스굽타 박사는 CNN에 “수면 부족과 그로 인해 망가진 기분은 사람들로 하여금 작은 역경도 감당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말하면서 “수면 부족은 공감과 감정 조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잠이 부족하면 종종 잘못된 의사소통과 갈등을 초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2014년 발표된 ‘사회심리인격과학’에 발표된 연구 역시 수면과 부부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나타냈다. 제대로 잠을 못 잔 다음 날이면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눈에 띄게 감소하면서 부부는 더 많이 다투는 경향이 있었다. 수면이 부족하면 평소보다 더 짜증을 내고 참을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또한 수면 부족이 단순히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관계 역학의 중요한 측면인 공감 능력을 어떻게 떨어뜨리는지도 보여주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경우, 양쪽 모두 공감 능력이 떨어졌고 이는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심지어 사소한 의견 차이가 더 큰 분쟁으로 확대되어 부부 관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사회 과학자이자 수면 전문가인 웬디 트록셀은 “내가 항상 받는 질문은 ‘배우자와 따로 자면 나쁜가요?’인데, 답은 ‘아니오’다. 오히려 장점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트록셀 연구팀은 “잠을 잘 자는 사람은 더 나은 의사소통 능력을 발휘하며, 더 행복하고, 감정이입을 더 잘하고, 더 매력적이고, 더 재미있는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록셀은 “나는 부부들에게 수면 ‘이혼’이 아니라 수면 ‘동맹’으로 생각하라고 조언한다”면서 “결국 잠을 잘 자는 것보다 더 건강하고, 행복하고, 심지어 더 섹시한 건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수면 이혼을 선택하는 게 바람직할까. 수면 이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사실 각양각색이다. 가령 배우자가 땅이 꺼질 듯 심하게 코를 골거나, 몸에 열이 많거나, 혼자서 이불을 끌어당겨서 덮거나, 자면서 발차기를 하거나,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 경우 등이 그렇다. 아니면 한쪽이 불면증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가운데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은 부부 사이에 놓인 가장 중요한 장애물이다. 수면무호흡증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2010년 연구에서는 63%가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실제 이혼율도 더 높았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심한 코골이가 분노와 원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다.
워싱턴주 리치랜드에 거주하는 40대 부부인 에리카와 마이크 스코빌 부부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됐다. 평소 남편의 심한 코골이로 인해 숙면을 취하지 못해 불만이 많았던 에리카는 “잠자는 시간은 잠재적인 전쟁 시간이었다”라고 토로했다. 결국 부부는 각방을 사용하기로 합의를 보았고, 지금은 더할 나위 없는 평화를 누리고 있다. 에리카는 “더이상 부부가 함께 자는 것만이 결혼 생활을 위한 최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서로 떨어져서 자다가 부부 사이가 소원해지는 것보다 같이 자면서 부부 사이가 망가지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침실 온도 역시 부부가 각방을 사용하게 되는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다. 왜냐하면 누구는 따뜻한 침실 온도를 선호하는 반면, 또 누구는 보다 낮은 온도를 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각자 원하는 분위기의 침실에서 잠을 자는 게 현명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수면 패턴이 서로 다른 경우에도 수면 이혼이 답이 될 수 있다. 만약 한쪽이 저녁형인 올빼미족인 반면, 다른 쪽은 아침형이라면 서로의 수면 패턴을 방해할 수 있다. 한쪽이 잠들기 전 꼭 TV를 봐야 하거나 아니면 스마트폰을 봐야지만 잠이 드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자면서 끊임없이 뒤척이거나 밤에 자주 일어나거나 혹은 하지불안증후군이 있는 경우에도 상대의 수면을 방해할 수 있다. 얕은 잠을 자는, 일명 ‘잠귀가 밝은’ 경우에도 차라리 각방을 사용하는 게 좋다. 네 자녀를 둔, 유타주 오렘에 거주하는 대릴 오스틴은 깊게 자는 스타일이 아닌 데다 코까지 심하게 곤다. 게다가 아내와 달리 야행성인 올빼미족이다. 때문에 아내는 남편이 곁에 없어야 꿀잠을 자곤 했다. 결국 결혼한 지 2년 만에 서로를 위해 각방을 쓰기로 결심한 부부는 결혼 8년 차인 지금까지도 이런 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금슬은 그 어떤 부부보다도 좋다. 부부관계도 왕성하게 하고 있으며, 서로에 대한 애정도 더 깊어졌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평소에는 늘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잠을 푹 자는 덕분에 깨어있는 시간 동안은 서로에게 더 집중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오스틴은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활력이 떨어지면 오히려 부부관계를 할 기회가 적어진다. 성생활에 훨씬 더 큰 위협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넘치는 활력 외에도 부부 사이가 더 그리워진다는 점도 수면 이혼의 장점으로 꼽았다. 오스틴은 “부부가 떨어져서 자면 오히려 서로를 더 많이 그리워하게 된다. 그리움은 매일 아침 행복한 재회로 이어지며, 이것은 우리가 매일 아침에 누르는 일종의 ‘새 출발’ 버튼이다”라며 흐뭇해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는 점도 긍정적인 면에 속한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충분히 갖고, 매일 밤 몸이 필요로 하는 수면을 충분히 취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더 인내심이 있고 자상해진다. 부부 싸움 횟수가 줄어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영국 왕실에선 오랜 전통…'수면 이혼' 중인 유명인들
#캐머런 디아즈
최근 50세를 넘은 나이에 둘째를 출산하면서 부부금슬을 자랑한 디아즈는 2023년 12월 ‘립스틱 온 더 림’ 팟캐스트에 출연해 수면 이혼을 적극 추천했다. 당시 디아즈는 남편인 벤지 매든과의 결혼생활에 대해 말하면서 “부부는 각방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자 그대로 나한테는 내 집이 있고, 남편에게는 남편 집이 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가족 집이 있다”라고 소개했다. 가운데 있는 가족 집에는 부부가 함께 사용하는 침실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럼에도 부부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트럼프 부부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부부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각방을 사용하면서 서로 간섭하지 않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실제 부부는 백악관에서도 이미 서로 다른 침실을 사용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베컴 부부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데이비드와 빅토리아 베컴 부부는 아예 분리된 생활공간에서 살고 있다. 시골에 있는 대저택을 구입하면서도 각각 웨스트윙과 이스트윙을 나눠 점유해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부부는 지금도 여전히 순탄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 부부
사실 수면 이혼은 영국 왕실의 오랜 전통이다. 1947년에 결혼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공 역시 수면 이혼 덕분에 오랜 세월 잉꼬 부부 생활을 지속했다. 필립공의 사촌인 레이디 파멜라는 “영국 상류층은 대개 별도의 침실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상대가 코를 골거나 다리를 이리저리 휘젓는다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면서 “기분이 좋을 때면 가끔씩 방을 함께 사용한다. 선택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장점이다”라고 소개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