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와 홈 개막 시리즈에서 타구 뜨지 않아…“야구는 실패 통해 배우는 것”
무엇보다 샌프란시스코의 홈구장인 오라클파크에서 펼쳐진 홈 개막 시리즈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맞이해 성적이 좋지 않았다. 계속된 무안타로 타율이 계속 깎여 1할대 추락을 걱정해야 할 처지였고, 수비에서도 실수가 나와 동료에게 미안함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정후의 부진은 오래가지 않았다. 4월 8일 샌디에이고를 상대로 1개의 안타를 뽑아낸 후에는 워싱턴 내셔널스를 상대로 2경기 연속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4월 12일 현재 이정후는 12경기에 선발 출전해 47타수 12안타 1홈런 4타점 4득점 5볼넷 4삼진 타율 0.255 OPS 0.655의 성적을 올렸다.
당시 이정후의 문제점 중 하나는 타구가 뜨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타석에서 방망이를 휘둘렀다 하면 대부분 내야 땅볼이었다. 4월 8일 샌디에이고전 첫 타석에서 맷 윌드론 상대로 12타수 만에 안타를 만들어냈지만 그 타구는 내야수 머리 위를 넘지 않았다. 이후 나선 3타석도 내야 땅볼 2개와 내야 팝플라이였다.
이정후의 평균 타구 각도는 2.8도로 리그 평균인 12.2도에 미치지 못해 땅볼 타구가 많았다. 이정후도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타이밍은 다 중심에 맞는 느낌인데 조금씩 빗맞고 있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연습하면서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공만 뜨면 된다. 너무 심각하게 파고들지는 않겠다”는 말로 자신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밥 멜빈 감독, 팻 버렐 타격코치도 이정후의 반등을 위해 여러 조언으로 힘을 실어줬다. 특히 멜빈 감독은 이정후에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격려했다는 후문이다. 이정후는 “감독님께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말씀해주셨다. 번트 대고 싶으면 번트 대도 되고 3볼에서 치고 싶으면 쳐도 되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말씀하셨다”며 자신에게 신뢰를 보낸 감독과 코치들에게 인터뷰를 통해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이정후는 최근 경기 후 인터뷰에서 “공이 안 뜨는 느낌이 들어 타격코치님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연습을 하고 있다”며 “당장 하루이틀 안에 좋아지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계속 나를 믿고 하던 대로 훈련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정후는 4월 8일 홈에서 치른 샌디에이고와 개막 3연전을 마치고 통역 한동희 씨와 함께 뒤늦게 그라운드에 나타났다. 이날은 이정후가 3경기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다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오랜만에 첫 안타를 만든 경기였다. 이정후는 경기 후 그라운드 키퍼들이 운동장을 정비하고 있을 때 샌프란시스코 더그아웃에서 나와 원정팀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이날 경기를 마치고 샌디에이고로 돌아가는 김하성과 인사하기 위해 원정팀을 찾는 걸로 보였다.
그런데 한참 동안 이정후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여 분이 흐른 후 비로소 모습을 보인 이정후는 그라운드를 지나 다시 홈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했는데 4월 9일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홈 경기에서 2루타 포함 멀티히트와 볼넷으로 3출루 경기를 치른 이정후가 경기 후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취재진에 그 내용을 소개했다. 다음은 이정후가 김하성과 만난 상황을 설명한 내용이다.
“(김)하성이 형은 한국에서도 나를 많이 봐왔고 내가 치는 스타일을 알고 있어서 몇 마디 조언을 부탁했다. 알고 있었던 내용인데 잊고 있었던 부분이다. 항상 나는 그렇게 쳐왔는데 여기 와서 조급해지기도 했고 조급해지다 보니까 형이 말했던 문제점이 나와서 공도 안 뜨고 했던 것 같다. 형이 해준 말 중에 제일 와닿는 건 땅볼 아웃이나 뜬공 아웃이나 삼진 아웃이나 똑같은 아웃이니까 치던 대로 치라고 해준 말이었다.”
사실 김하성도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김하성이 이정후와 헤어지기 전 조언을 해줬던 4월 8일 경기는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장면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처음으로 2실책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하성은 후배의 야구 고민 상담을 잘 받아줬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정후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전달했다.
김하성은 4월 7일 샌프란시스코와의 원정 경기에서 5번 유격수 선발 출전했다가 1회 볼넷으로 출루해 주릭슨 프로파의 만루홈런으로 득점을 기록했지만, 이후 세 차례 타석 모두 범타로 물러났다. 9회에는 상대 1루수 윌머 플로레스의 호수비에 걸리며 잘 안 풀리는 모습을 보였다. 김하성의 경기 후 인터뷰 내용이다.
“당연히 결과가 안 나오면 답답한 게 사실이다. 많이 겪어본 일이고, 앞으로 시즌이 남았기에 계속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타격감이 나쁘진 않은데 (타석에서) 생각이 조금 많은 것 같다. 안타가 안 나오거나 그럴 때는 항상 그렇다.”
김하성은 자신과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는 상대 팀의 이정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분명히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이)정후는 앞으로 600타석을 더 나가야 한다. 그 600번을 다 성공할 수는 없다. (타격에는) 사이클이라는 게 있다. 잘 맞은 타구들이 정면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좋은 달이 있으면 그런 것들이 다 돌아온다. 정후도 알 것이다. 그저 꾸준하게 하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없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타자는 계속 실패를 해야 하는 것이고, 그 실패를 통해 배움을 얻어가야 한다는 게 김하성의 설명이었다.
“야구는 실패를 통해 배워가는 것이다.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내일 다시 경기가 있을 것이니 나도 정후도 계속 하던 대로 하면 된다. 타격이 안 될 때는 팀에 도움이 되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수비나 주루를 열심히 하고 그러면 그런 것들이 타격이 올라왔을 때 맞물려서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이기에 잘했으면 좋겠다.”
김하성은 타석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자신의 상황을 빗대 “사실 지금 나도 수비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결국 시즌 끝나고 나면 정후도 마찬가지고 다 자기 기록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야구 선수이기에 타격이 안 되면 스트레스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수비나 주루에서 잘하고 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김하성과 헤어진 다음 날인 4월 9일 이정후는 워싱턴 내셔널스의 우완 트레버 윌리엄스를 상대했다. 이정후는 첫 타석부터 안타를 때렸다. 1회 선두타자로 나선 이정후는 2스트라이크 1볼 상황에서 5구 체인지업을 공략해 좌전 안타를 만들었다.
1루에 출루한 이정후는 라몬테 웨이드 주니어의 2루타 때 타구를 정확하게 판단한 뒤 작정하고 베이스 러닝을 했다. 속도를 붙인 이정후는 3루 코치의 사인을 확인한 뒤 홈을 파고 들어 선취점을 올렸다. 이정후의 발이 만든 득점이었다.
1-3으로 뒤진 3회 선두타자로 나선 이정후는 메이저리그 진출 후 처음으로 2루타를 뽑아냈다. 이번에도 윌리엄스를 상대한 이정후는 5구째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을 제대로 받아쳐 좌익수 옆으로 떨어지는 2루타를 만들어냈다. 타구 속도 98마일의 하드 히트였고, 발사각도 17도로 이상적이었다. 이정후는 5회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맞이한 세 번째 타석에서는 볼넷을 골라 출루하며 이날 3출루를 기록했다.
조금은 다른 시선을 짚어 본다.
4월 7일 홈구장 오라클파크에서 두 번째 경기를 치른 이정후는 이날 잊지 못할 경험을 한다. 1회초 선두타자 잰더 보가츠의 타구가 높게 떴는데 햇빛 때문에 타구를 잃어버려 안타를 내준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선발투수 키튼 윈은 허무하게 선두타자를 내보낸 뒤 두 타자를 모두 잡아냈지만 매니 마차도의 안타와 김하성의 볼넷으로 2사 만루가 된 상황에서 쥬릭슨 프로파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했다. 이날 샌프란시스코는 1회 내준 4점의 리드를 만회하지 못한 채 패배했다.
경기 후 밥 멜빈 감독은 “서부 해안에서 오후 5~6시에 열리는 경기는 꽤 힘든 시간”이라면서 “선수들이 타석에서 공이 잘 보이지 않거나 외야에서 햇빛에 타구가 가린다. 그렇다고 해서 핑계는 되지 않는다. (이정후가) 반드시 잡았어야 하는 타구였다”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경기 후 샌프란시스코 담당 기자들은 이정후한테 몰려가 수비 실책 관련해서 집요하게 물었다. 이정후는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처음 경험하는 낯선 분위기에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이 장면은 영상을 통해 고스란히 소개됐다.
다음 날인 8일 경기 전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이정후는 전날의 수비 실책을 복기하면서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를 해선 안 된다”며 각오를 다졌다. 이정후는 당시의 수비 실책 후 선발 투수인 키튼 윈을 찾아가 사과했다고 말하면서 “투수 입장에서는 다 자책점이 됐기 때문에 너무 미안했다”고 속내를 털어놓은 후 “팀으로 봤을 때도 그게 결정적인 점수가 돼서 우리가 졌다. 누구를 탓해야 한다면 솔직히 나를 탓해야 한다. (키튼) 윈에게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윈도 괜찮다고 말해줬다”며 고개를 숙였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담당 기자들은 이정후의 선글라스까지 지적했다. 수비할 때 선글라스를 꼈지만 타구의 방향을 잡을 수 없는 선글라스였다면 다른 브랜드로 바꿔야 하는 게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이정후는 그 지적까지 기꺼이 수용했다고, 자신이 더 좋은 수비를 펼쳐야 한다며 자세를 낮췄다.
당시 그 경험이 이정후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