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 제보 절실, 일각선 함정수사 허용 주장…범야권 장악한 국회 문턱 넘을지 의문
이들의 태국 현지 구매 가격은 1g당 2만 5000원 수준(650~700바트)이었다. 이를 국내에 들여와 100g당 1300만~1700만 원에 팔았다. 6배 이상 차익을 본 것. 국내에 마약을 밀수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케타민을 비닐팩에 나눠 담은 뒤, 이를 각자 운반책들이 팬티 안에 은닉한 채 들여오는 방식이었다. 이들은 케타민을 들여오는 운반책들에게도 건당 500만~1000만 원을, 운반책을 소개한 이에게도 건당 500만~1000만 원을 지급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하지만 이들의 범행은 태국 공급책을 노리고 있던 수사당국에 검거됐다. 이들 일당 가운데 5명을 현장에서 긴급 체포됐고, 나머지 일당 2명은 체포영장을 받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수사 협조도 필요했다. 검거한 이들을 토대로 공범의 정보를 얻어내 긴급체포, 영장을 발부받는 방식이었다.
#전통적 수사 방식으론 한계
4월 14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3년 단속된 마약사범은 2만 7611명으로 5년 전인 2018년(1만 2613명)보다 12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연간 마약 압수량은 414.6kg에서 998kg로 약 2.4배 늘어났다. 범행 수법 역시 비대면·익명 거래가 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비대면 마약거래가 일반화되고, 마약 유통 과정도 점조직 형태로 가담하는 등 고도화·조직화 됐다는 분석이다.
국내 마약 가격이 주변국에 비해 높아 이들이 고수익을 노리고 밀수범죄를 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앞서 설명한 사건에서 마약 가격은 국내로 들어오면서 금액이 5배 이상 급증했다. 아예 태국,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에는 현지 마약 유통책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한국으로 유통을 타진하는 ‘현지 전문가’들까지 존재한다고 한다.
검찰 안팎에서는 마약 윗선까지 뿌리 뽑기 위해서는, 과거의 전통적인 마약 수사 방식으로는 한계가 높다는 목소리가 높다. ‘마약 투약자에서 마약 공급자, 윗선을 통해 최초 공급자까지 타고 올라가는 수사 방식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수사 협조를 받아내기 위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검찰은 이처럼 폭증하는 마약범죄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현행 최대 5000만 원인 신고 보상금을 3억 원까지 늘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현행 제도에서 신고보상금은 범죄가 발각되기 전 신고한 사람과 검거한 사람에게 주어지지만, 마약범죄가 발각된 이후에도 신고자 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수사 협조를 유도한다.
검찰은 마약 조직 내부자가 자발적인 신고를 하면 형을 감경해주는 ‘리니언시’ 제도도 도입할 방침이다. 리니언시란 범죄 자진 신고자에 대한 처벌 감면 제도로, 마약 사범이 수사 기관에 공범의 범죄 사실을 실토하면 처벌을 줄여주는 방식이다. 원래는 공정거래법 상 담합에 가담한 공범이 자진신고하면 형사 고발과 과징금 등을 면제받는 제도인데, 이를 마약 카르텔 수사에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허가되지 않았던, 일종의 플리바게닝(플리바게닝은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해 증언을 하는 대가로 검찰 측이 형을 낮추거나 가벼운 죄목으로 다루기로 거래하는 것)을 도입하는 셈이다. 수사기관은 내밀한 수사 정보를 취득해 수사 성공률을 높이고, 동시에 피의자에게는 죄를 감경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대검 측은 “마약범죄가 국제화·조직화함에 따라 내부자의 제보로 범죄조직이나 공범, 범죄수익을 신속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제보자도 중한 처벌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는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암암리에 이뤄졌던 ‘수사 협조 시 혜택’을 마약 사건에 한해 공식화하겠다는 것이다. 마약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는 “마약 사건의 경우 내부 제보자가 얼마나 진술을 하느냐에 따라 수사의 성패가 갈리는데 문제는 마약 공급책들이 대거 범죄단체로 얽혀서 처벌을 받다 보니 불구속 수사는 불가능에 가깝고, 1심에서도 대부분 징역 3년 이상의 양형이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보니 수사 협조를 하지 않으려는 경우들이 많다는 것”이라며 “그런 부분을 감안해 신고 보상금 등을 지급하려 하는 것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마약청 등 전담 기구 설치해야"
법조계에서는 지능화하는 마약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검찰의 ‘함정수사’를 허용하고 마약청 등 전담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적지 않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과 법무부·경찰청은 ‘2023년 국정현안 대응 형사·법무정책 학술대회’를 열고 다양한 마약 수사 관련 정책을 제안했다.
마약 근절 대책과 관련해 발제자로 나선 홍완희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4기)는 “고도화하는 마약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마약 구매 대금으로 쓰이는 가상자산 추적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위장 판매나 잠입 수사 등 ‘함정수사’도 제한적이나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토론에 참여한 김낭희 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역시 “조직적으로 빠르게 발생하고 사라지는 ‘초경계 게릴라 분업 조직 범죄’의 특성을 보인다”며 “위장 수사 기법 등 새로운 수사 기법을 신속히 도입할 상위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마약청·약물법원 등 전문적인 마약 범죄 통제 기구 설치를 촉구했다. 마약을 투약하거나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현장에서 검거해야 하는 마약 범죄 특성 상 수사의 전문성을 더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하지만 검찰권을 제한하려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4·10 총선에서 약진한 것은 변수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총선 공약에 나란히 포함된 방안은 검찰을 ‘기소만 하는 청’으로 바꾼다는 방침이다. 수사는 경찰이나 중대범죄수사청·마약수사청 등을 신설해 그곳에 맡긴다는 것이 핵심이다.
대검이 마약 사건에 한해 리니언시 제도를 도입하는 규정 개정 및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대목이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우리나라가 플리바게닝을 불허한 것은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권이 지나치게 확대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인데 마약 사건에 한해서라고 하지만 이 역시 검찰의 수사권이 비대해지는 효과가 있다”며 “민주당 등 야당에서 이와 관련된 입법 추진을 찬성할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