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버렐 “헛스윙 비율 낮은 건 대단해”…저스틴 빌레 “손놀림 빨라 성급하게 스윙할 필요 없어”
이정후는 마이애미 말린스와 2경기(4월 17일, 18일)에서 샌프란시스코 입단 후 처음으로 3번 타순을 소화해 각각 1안타, 2안타를 때렸다. 키움 히어로즈 시절 3번이 이정후의 고정 타순이라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지만 스프링캠프 때부터 이정후를 ‘1번 중견수’로 못 박았던 밥 멜빈 감독이 이정후를 1번이 아닌 3번에 세웠다는 건 그만큼 그의 타격감을 신뢰한다는 의미다.
이정후는 여전히 적응 중이라고 말한다. 원정 경기 때마다 접하는 야구장이 생소하고, 상대하는 투수들도 낯설기만 하다. 한동안 타구의 발사각이 낮고 땅볼 타구가 많이 나온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그 또한 과정이었다. 그는 자이언츠의 타격 코치들과 조정을 거친 후 타석에서 안정감을 찾아갔다. 이정후의 타격 조정을 도운 2명의 코치들과 인터뷰를 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는 3명의 타격 코치가 있다. 그중 올해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서 타격 코치를 맡은 팻 버렐은 1998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입단 후 2000~2008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활약, 2008년 필라델피아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주인공이다. 2009년 샌프란시스코로 팀을 옮겨 2010년 다시 월드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팻 버렐은 MLB 12시즌 1640경기에 나서 타율 0.253 292홈런 976타점을 올린 장타자 출신이다.
팻 버렐은 지난 4년간 마이너리그에서 타격 코치로 활약했고 메이저리그 코치는 올해가 처음이다. 팻 버렐 코치는 이정후가 어떤 유형의 타자인지 묻는 질문에 먼저 칭찬부터 꺼냈다.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설명하는 내용에 깊이가 있다.
“이정후는 빼어난 타자다. 시즌 초반에는 이정후는 모든 투수들을 처음 상대하는 상황이라 조금씩 타격 조정을 거친다. 이정후와 저스틴 빌레(타격 코치), 그리고 나한테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이정후는 현재 다양한 변화를 거치는 중인데 타격 외에 문화적인 차이, 경기 스케줄의 변화, 원정 경기 등 여러 가지 환경들에 적응 중이다. 이정후는 지금 아주 잘해내고 있다.”
모든 게 생소한 환경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정후를 위해 팻 버렐 코치는 세심하게 이정후를 살피는 중이었다.
“우리(코치들)는 거의 매일 선수들을 체크한다. 휴식일에 무엇을 하는지, 원하는 음식을 먹고 있는지 등 실생활과 관련된 부분이다. 나는 이정후가 인간적으로 편안하게 지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야구는 늘 걱정하고 고민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정후는 팀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선수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점은 메이저리그에 적응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들이다.”
팻 버렐 코치는 이정후가 한동안 발사각이 낮은 땅볼 타구를 날린 것에 대해 “발사각보다 더 중요한 건 공을 강하게 때려내는 것”이라면서 “꾸준히 공을 강하게 때려내야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정후는 타석에서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공을 맞춘다. 그런데도 헛스윙 비율이 낮은 건 대단한 재능이다. 기술적인 훈련은 저스틴 빌레 코치가 전담하는데 그도 이정후의 재능에 늘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무엇보다 야구를 대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우리는 그의 플레이가 매우 만족스럽다.”
이정후가 시즌 초반 타격 조정을 하는 데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이가 저스틴 빌레 코치였다. 팻 버렐 코치의 설명대로 저스틴 빌레 코치는 기술적인 면에서 이정후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음은 저스틴 빌레 코치의 설명이다.
“땅볼을 조정을 하는 것도 있지만 이정후는 콘택트를 잘 하고 있다. 콘택트를 잘하는 선수들이 대체적으로 발사각이 낮은 타구를 만들어낸다. 이정후는 땅볼이 많은 만큼 라인드라이브 타구도 많다. 우리는 지금 굳이 이정후에게 발사각을 높이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이정후가 몸을 좀 더 앞으로 나올 수 있게끔 노력 중이다. 몸을 돌릴 때 공간을 만들기 위해 뒤로 빼는 경향이 있는데 그 순간에 공이 이미 다가와 있다. 그래서 그가 바로 타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중이다. 그렇게 플레이트에서 공을 더 가까이 마주 할 수 있도록, 공이 플레이트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미리 앞에서 타격할 수 있게끔 말이다. 내 생각에 그는 엄청난 콘택트 능력을 갖고 있는 선수다.”
저스틴 빌레 코치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이정후는 가끔 공이 홈 플레이트에 딱 왔을 때 타격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체적으로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선수들은 공이 플레이트 밖에 있을 때(안까지 들어오기 전에) 타격하는 경우가 많아 콘택트 포인트를 더 앞에서 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부분을 플레이트에서 의식하지 않고 몸이 자연스럽게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중이다.”
이런 훈련 과정들이 최근 이정후가 타석에서 결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게 저스틴 빌레 코치의 설명이다.
“이전보다 최근 경기에서 더 좋은 타격을 보여주고 있다.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센터 쪽으로도 꽤 뻗어 나갔다. 이정후는 손놀림이 매우 빠르다. 그래서 패스트볼을 보고 스윙을 매우 빠르게 하는데 가끔 공이 깊게 들어올 때 스윙을 빠르게 하면 땅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정후한테 네가 얼마나 날렵하고 효율적으로 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지 일깨워주곤 한다. 패스트볼이 들어온다고 성급하게 스윙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능력을 믿어야 하는데 최근 그런 조정 과정을 통해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많이 보이고 있다.”
저스틴 빌레 코치는 이정후가 발사각이 높은 타구를 만들려면 골반과 엉덩이 회전을 잘 컨트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지 않는 게 있는데 바로 힙 로테이션(골반 엉덩이 회전)이다.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힙을 돌린다고 생각한다. 발사각을 잘 컨트롤하는 선수들은 대체적으로 힙 로테이션도 잘 컨트롤한다. 선수들이 땅볼이나 팝업이나 플라이 볼을 치는 경우에는 골반이 열리고 팔이 뒤로 살짝 밀리면서 공을 놓치기 때문이다. 팔이 뒤로 밀리니까 급하게 스윙하려다 공 중간을 타격하면서 팝업 플라이가 생긴다. 실력이 있는 빅리그 선수들은 힙 로테이션을 잘 컨트롤한다.”
이정후는 4월 4일 LA 다저스전부터 3경기, 12타석 연속 무안타에 그치며 타율이 0.200까지 떨어졌다. 강속구 투수의 공에 잘 대응했음에도 발사각이 낮아 내야 수비를 뚫지 못했다. 잘 안 나오던 헛스윙과 3구 삼진을 당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후 이정후는 굉장히 깊은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생애 첫 동부 원정 경기를 가졌던 이정후는 4월 13일 탬파베이 레이스와 1차전을 앞두고 기자와 만나 현지 일부 언론에서 지적하고 있는 내용들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전했다. 먼저 당시 도루 기록이 없는데 이에 대한 질문부터 꺼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인 MLB.com이 샌프란시스코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정후가 평균 이상의 주력을 활용해 앞으로 루상에서 조금 더 공격적이길 바란다는 기사를 내보냈기 때문이다.
“아직 도루가 없다고 말하는데 뛸 상황이 나와야 뛰지 않겠나. 외신에서 그에 대해 다뤘다고 해서 신경 쓰이진 않는다. 단 동부 원정 경기 때 1개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인터뷰를 했던 이정후는 그날 경기에서 팀이 1-0으로 뒤진 3회 두 번째 타석에서 탬파베이 선발 투수 제이컵 와게스팩의 바깥쪽 높은 공을 밀어 쳐 좌전 안타로 1루를 밟았고, 이후 라몬테 웨이드 주니어 타석 때 2루 도루에 성공하면서 시즌 첫 도루를 기록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구단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이정후의 도루 영상과 함께 한글로 ‘메이저리그 첫 도루’라고 적고 ‘바람의 손자가 메이저리그 첫 도루를 기록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밥 멜빈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한 기자가 이정후의 시즌 1호 도루에 대해 언급하자, “모든 건 과정일 뿐”이라고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이정후는 최근 땅볼 타구가 많이 나온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나타냈다.
“최근 내가 시범경기 때 좋은 모습을 보였던 동작들이 안 나와 조금씩 빗맞는 타구들이 보였다. 시즌 중이라 뭔가를 뜯어고치긴 어렵다. 조금씩 조정하면서 원래 궤도대로 맞추려고 노력 중이다. 시범경기 때 내가 상대했던 투수들의 공이랑 정규시즌 때 접한 투수들의 공과는 차이가 있다. 자꾸 공을 맞히려다 보니 타격 자세가 바뀌게 되었고, 타석에서 결과를 내려고 맞추는데 급급한 면도 있다. 그런 부분을 참고해서 조금씩 고치고 있는 중이다.”
이정후는 KBO리그에서 초구를 잘 치지 않았다. MLB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초구와 관련해서 “한국에서도 초구를 잘 안 쳤다”면서 “초구를 쳐서 좋은 결과가 안 나왔다”고 대답한다.
“보는 사람들은 초구를 왜 안 칠까 하면서 답답해할 수 있지만 타석에서 초구를 치고 나면 타격 리듬이 흔들린다. 초구가 스트라이크가 되더라도 투수의 공이 어떻게 오는지 알고 타이밍을 잡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 차이가 있다. 나로선 모든 투수들이 처음 상대하는 투수들이라 공 하나를 먼저 보고 시작하는 게 타이밍 잡는 데 도움이 되더라. 이 또한 적응 문제라고 생각한다.”
4월 15일 탬파베이전에서 이정후는 1회 선두타자로 나서 탬파베이 선발 숀 암스트롱의 초구 직구를 받아쳐 우익수 방면 안타를 만들어냈다. 이정후가 초구를 공략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경기였다. 이뿐만 아니라 이정후는 후속 타자 윌머 플로레스 타석 때 시즌 2호 도루에 성공했고, 라몬테 웨이드 주니어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아 선취 득점을 올리며 첫 타석부터 리드오프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홈은 물론 원정 경기에서도 현지 중계진은 이정후의 KBO리그 시절 이력과 아버지 이종범 전 LG 코치에 대한 스토리, 그리고 ‘바람의 아들’과 ‘바람의 손자’란 별명을 소환한다. 한국은 물론 미국 언론도 일찌감치 이정후를 주목했고, 그의 성적을 세밀하게 분석하면서 평가를 거듭하고 있다. 이정후로선 KBO리그와 비교가 안 되는 큰 부담과 압박감을 느끼며 매일 경기에 나선다. 그럼에도 이정후는 MLB에 잘 적응하고 있다. 잠시 흔들림은 있었지만 조정을 거쳐 자신의 리듬을 회복했다. 결국 이정후는 성적으로 자신의 가치와 존재감을 증명해낼 것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