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인 도매상이 가져온 진품 가짜와 바꾸고 죄 뒤집어씌워…SNS 유명 시계점주 등 가담, 주범 징역 8년 선고
최근 관심이 집중됐던 ‘시계 바꿔치기 사건’ 판결문을 두고 서초동의 A 변호사가 내놓은 의견이다. 시계 바꿔치기 사건은 고급 시계점 운영자들이 판매자가 내놓은 초고가 시계를 가짜로 바꿔치기한 뒤 오히려 판매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다 적발된 사건이다. A 변호사는 ‘판결문을 통해서도 악질적 범죄임이 느껴진다’고 평했다.
사건에 등장하는 주범 중 한 명이 운영하는 시계점은 유명 유튜버가 홍보해 화제가 됐던 매장이다. 또한 사건 속 시계는 한 점에 개당 8억 원에서 9억 원에 달하며 바꿔치기 된 6점을 합하면 40억 원 이상 가치가 나갈 정도로 최고급, 최고가 시계였다. 최고가 시계 제품은 신제품을 구매할 경우 수령까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중고 제품이 신제품보다 더 높은 금액으로 거래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바꿔치기 된 6점 가운데 4점은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이 사건은 이례적으로 공판 과정에서 방청객이 많았다. 공판 과정에 참여한 한 방청객은 “피고인이 많기 때문인지, 관계자가 많기 때문인지 재판마다 피고인 측 지인과 관계자들로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말했다. 관련 판결문과 공판 과정에서 드러난 내용, 관련자 인터뷰 등을 종합해 이번 사건을 살펴봤다.
피해자는 태국인 시계 도매상이다. 태국인들은 흔히 예명처럼 영어 이름을 하나씩 갖고 있다. 피해자 예명은 '밴쯔'였다. 한국에서 각자 고급 시계를 취급하는 가게를 운영하는 서 아무개 씨와 김 아무개 씨는 고급 시계를 갖고 있는 밴쯔를 범행 타깃으로 정했다. 김 씨는 과거 2차례 밴쯔와 시계 거래를 중개한 경험이 있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2023년 7월 시계점 운영자인 서 씨, 김 씨는 오 아무개 씨를 이용하려고 했다. G 매장을 운영하는 서 씨와 J 매장을 운영하는 김 씨는 “빚 4000만 원을 탕감해 줄 테니, 시계 바꿔치기에 협조하라”고 했고 오 씨가 이를 승낙하면서 사건이 진행됐다. 김 씨는 거래 경험이 있던 밴쯔, 범행에 나서기로 한 오 씨를 텔레그램 채팅방에 초대했다. 오 씨는 채팅방에서 밴쯔에게 리차드밀 시계 5점을 주문한다.
2023년 7월 중순 오 씨는 계약금 명목으로 서 씨로부터 받은 1억 1000만 원,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빌린 5500만 원 등 합계 1억 6500만 원을 모았다. 오 씨는 밴쯔 요청에 따라 이 돈을 테더 코인(달러 스테이블 코인)으로 바꾼 뒤 밴쯔 가상자산 지갑에 송금해 줬다. 밴쯔는 8월 29일 한국으로 오기로 하면서 계약이 성립됐다.
이때부터 서 씨, 김 씨, 오 씨 등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8월 29일 김 씨가 운영하는 강남구 신사동 J 시계 매장으로 주문했던 시계를 들고 밴쯔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8월 28일 서 씨는 오 씨에게 자세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서 씨는 “내일 밴쯔가 진품 리차드밀 시계를 갖고 오면 그 시계들을 J 매장 안쪽에 미리 준비해 둔 가품 시계와 바꿔치기 해라. 그 뒤 진품 시계는 안쪽 방 출입구 옆에 준비해 둔 에르메스 상자에 넣어 쇼핑백에 담아둬라”라면서 “가짜 시계를 들고 감정을 받은 뒤 가품으로 판정이 되면 112 신고를 해라”라고 지시했다.
이후 서 씨는 자기 집 인근에서 장 아무개 씨, 임 아무개 씨 등을 추가로 만났다. 서 씨는 ‘장 씨는 진품 시계가 들어 있는 쇼핑백과 밴쯔가 사용하는 휴대전화를 갖고 나와 J 매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내게 전달하라. 임 씨는 밴쯔가 사용하는 휴대전화를 확보한 뒤 오 씨와 함께 가품 감정을 받는 길에 동행하라. 그러면 충분한 대가를 지급하겠다’는 취지 지시를 내렸다.
다음날인 8월 29일 오후 3시 밴쯔가 J 매장에 등장하면서 사건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오 씨가 밴쯔에게 주문한 시계 5점 보증서를 장 씨가 받고 이를 임 씨에게 전달했다. 임 씨는 이 보증서를 J 매장 안쪽 방에 옮겨 뒀다. 이 가운데 3점은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스페인의 라파엘 나달을 위해 제작된 모델로, 1점당 시가 8억 2500만 원에 달한다.
오 씨는 주문했던 리차드밀 시계 5점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밴쯔가 손목에 차고 있었던 리차드밀 시계 1점 또한 벗게 했다. 이들은 주문한 5점에다 밴쯔가 손목에 차고 있던 리차드밀 시계까지 받은 뒤, 이를 빈 케이스에 넣어 안쪽 방으로 가져갔다. 여기서 오 씨는 서 씨, 김 씨가 미리 준비해 둔 가품 6점과 진품을 바꿔치기 했고, 장 씨는 밴쯔가 차고 있던 시계 외 5점 보증서가 들어간 에르메스 쇼핑백을 매장 밖으로 갖고 나와 J 매장 부근에서 대기 중이던 서 씨에게 전달했다.
전달을 마친 장 씨는 다시 매장으로 돌아와 밴쯔에게 ‘인스타그램 팔로하고 싶다’면서 아이폰을 잠금 해제 상태로 받아냈다. 장 씨는 이 휴대전화를 안쪽 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서 씨에게 전달했다. 이때 임 씨 등은 다른 공범자들과 함께 밴쯔가 눈치채지 못하게 지속해서 대화를 걸며 주의를 산만하게 했다.
이렇게 시계 바꿔치기를 성공한 이들은 이번에는 셋업 범죄 전략으로 방향을 튼다. 시계 감정 결과 가품이라는 판단이 나오자 밴쯔가 감정 결과에 항의를 했다. 그때 오 씨는 112에 전화해 ‘명품 시계를 구입하기로 해서 계약금을 보냈는데, 구매하기 전에 시계를 감정해 보니 가짜로 판명이 났다’고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하자 서 씨, 김 씨, 오 씨는 경찰관에게 ‘밴쯔를 사기 거래로 처벌해 달라’는 취지로 신고해 현행범으로 체포되도록 만들었다.
이에 밴쯔도 ‘나도 신고하겠다. 억울해서 안 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경찰서로 간 밴쯔는 조사 과정에서 ‘진품을 판 게 맞다’고 소명해 석방됐다. 사건을 잘 아는 관계자 B 씨에 따르면 이때부터 누가 진범인지를 가리는 지난한 싸움이 시작됐다고 한다. 서로 ‘나는 소극적으로 관여했을 뿐, 진범은 따로 있다’고 손가락질했기 때문이다. 특히 시계 4점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밴쯔는 피해 보상을 받기도 어려워진 상황이다.
공판 과정에서 나온 얘기에 따르면 그나마 찾은 2점 시계 가운데 1점은 서 씨가 소지하고 있던 상태에서 체포되면서 수사기관에 압수됐다. 이때 서 씨는 팬티 속에 시계를 숨겼다가, 체포 과정에서 몸 수색을 통해 압수됐다고 공판 과정에서 확인됐다. 나머지 1점은 서 씨가 B 씨에게 처분했다가 수사기관에 압수됐다. 서 씨는 B 씨에게 4억 1500만 원에 팔았다. B 씨는 “시중 가격보다 너무 저렴해 재테크 형식으로 되팔아 돈을 벌려고 구입했다. 시중보다 최소 2000만 원은 저렴하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 관계자에 따르면 ‘사라진 4점 가운데 1점은 홍콩으로 유통된 것이 확인됐는데 역시 확보되지는 않았다’며 ‘서 씨, 김 씨, 오 씨가 각 2점씩 나누려고 했던 것 아닐까 추측만 해볼 뿐’이라고 전했다. 나머지 시계 3점은 어디로 사라졌는지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재판 진행 과정에서 나왔던 내용과 판결문을 종합해 보면 시계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두고도 내분이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범행 이틀 뒤인 8월 31일 서 씨는 자기 집으로 오 씨, 장 씨, 임 씨를 불러들인다. 이때 서 씨는 오 씨가 시계를 가져갔다고 생각해 추궁을 하기 시작했다. 서 씨는 오 씨를 폭행하고 중식도로 협박도 했다. 하지만 시계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누군가가 서 씨가 계획했던 범죄 과정 중에 다시 한번 함정을 기획해 빼돌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재판부는 서 씨가 범행을 지휘한 만큼 서 씨가 나머지 시계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짐작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CC(폐쇄회로)TV 등으로 인해 공수가 바뀌게 된다. 임 씨를 제외한 이들이 모두 구속된 것이다. 이들은 유치장에서부터 책임 전가를 위한 작업이 벌어졌다고 한다. 오 씨가 서 씨를 주범이라고 진술하자, 유치장에 입감된 서 씨는 김 씨에게 ‘지금부터 내 변호사를 포함해 김 씨, 장 씨, 임 씨 변호사까지 모든 걸 걸고 오 씨를 계략으로 몰아넣어야 한다. 조사받을 때도 꼭!’’이라는 내용 메모를 보내려다 적발된다.
또한 서 씨는 오 씨에게 ‘내가 한 범죄다. 서 씨는 아무 관련도 없는데, 애들에게 사건을 밀어 넣고 나면 영장 실질 때 나갈 줄 알고 그렇게 증언했다고 말해줘야 한다’, ‘왜 번복하냐고 하면 김 씨가 이 사건에 관련이 없으니, 증거도 뭐고 아무것도 없어서 사회로 돌아가면 나한테 무고죄로 신고도 할 거고, 거짓말한 게 겁난다. 양심에 찔린다는 식으로 잘 풀어나가야 해’라는 내용이 포함된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재판부는 다양한 증거와 증언을 종합해 서 씨와 김 씨가 주범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오 씨, 임 씨 등 증언과 증거가 주범을 가리킨다고 봤다. 오 씨는 ‘서 씨와 김 씨가 2023년 7월 명품 시계 구입을 미끼로 외국에 있는 시계 도매상인 밴쯔를 유인한 뒤, 그가 갖고 있는 진품 시계를 가품으로 바꿔치기하려고 하니 협조하라’ ‘김 씨 지시를 받고 밴쯔에게 시계 5점을 주문했다’ ‘범행 전 서 씨는 밴쯔가 도착하고 난 뒤 바꿔치기 계획을 자세하게 지시했다’는 등의 진술을 했다.
장 씨도 ‘사건 전날 서 씨에게 범행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장 씨는 “28일 오후 10시 서 씨가 나와 임 씨에게 ‘형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나중에 형이 따로 챙겨줄 거니까 이유는 묻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했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되묻자, 서 씨가 ‘이유는 묻지 마라’라고 답했다”고 진술했다.
임 씨도 오 씨와 장 씨가 말한 진술과 대체로 부합하는 증언을 했다. 임 씨는 “서 씨가 ‘이번 주말에 페스티벌이 있다. 형 내일 큰일 볼 거 하나 있다. 잘 되면 우리 동생들 형이 다 챙겨주겠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서 씨가 자세한 계획을 짰지만 김 씨도 단순 방조라고 볼 순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 씨는 오 씨가 밴쯔와 시계 거래 관련 대화를 나눌 수 있게 주선했다. 나아가 김 씨는 시계 바꿔치기가 용이한 내실이 존재하는 자신의 영업장을 범행 장소로 제공했다. 김 씨 행위는 이 사건 범행에 있어 핵심적이고 중요한 역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외국인인 피해자를 상대로 고가 명품 시계를 바꿔치기하는 방법으로 절취했고, 피해자가 연락도 할 수 없도록 휴대전화도 빼앗았으며 나아가 피해자가 가품을 진품으로 속여서 판매했다고 수사기관에 무고까지 했다’면서 ‘범행은 사전 계획하에 조직적으로 역할 분담해 치밀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 또한 범행으로 인한 피해액이 39억 원 이상으로 매우 크고, 피해회복도 전혀 이뤄지지 않은 데다 피해자는 크나큰 재산상 손해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면서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범행 주범인 서 씨와 김 씨에게 각 징역 8년, 오 씨에게 징역 4년, 장 씨에게 징역 2년 6월, 임 씨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즉, 재판부는 서 씨와 김 씨는 주범인 만큼 8년, 적극 가담한 데다 무고 범행에도 참여한 오 씨는 4년, 시계와 휴대전화를 서 씨에게 전달한 역할을 맡은 장 씨는 2년 6월, 밴쯔가 눈치채지 못하게 계속 말을 거는 역할을 담당한 임 씨는 1년 6월을 선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상대적으로 중형이 선고된 것으로 보인다. A 변호사는 “주범들 검찰 구형 9년인데, 징역 8년이 나왔다. 상대적으로 엄벌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시계 행방도 결국 나오지 않은 데다, 서로 혐의를 미루려고 했던 점이 엄벌에 처하게 된 이유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