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측 “스토킹 인정하지만 특수협박은 아냐”…“엄벌해달라” 유족 호소에 방청객들도 눈물
부산 오피스텔 추락사 사건 피해자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대각선 방향에 마주 앉아있던 가해자는 피해자의 어머니와 동생의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미동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가해자 “혐의 인정하지만 특수협박은 다퉈야”
부산지법 형사7단독(부장판사 배진호)은 5월 1일 특수협박 및 협박, 재물손괴, 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 씨(25)에 대한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이날 재판이 열린 451호 법정 앞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재판이 시작되기 30분 전부터 법정 앞 복도는 피해자의 지인들로 가득 찼고, 법원 관계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하는 방청객 한 명 한 명에게 어떤 사건으로 왔느냐고 물으며 방청객들을 안내했다. 재판이 예정된 오전 11시 30분에는 법정 내부에 준비된 좌석 20개를 모두 채우고도 자리가 부족해 약 20명이 서서 재판을 지켜봤다.
구속 상태인 A 씨는 녹색 수의를 입고 피고인 자리에 앉아있었다. 재판이 시작되자 A 씨는 자신의 이름과 출생 연도, 주거지, 신분 등을 또박또박 답했다. 또, “어떤 일로 여기 앉아있는지 아느냐”는 판사의 질문에는 “알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검찰이 법정에서 낭독한 공소사실에 따르면 가해자 A 씨는 2023년 8~10월 부산진구에 있는 피해자 B 씨의 집에 찾아가 와인잔을 자기 손에 내리치는 등의 자해행위를 하거나 B 씨 앞에서 의자를 던지는 등의 수법으로 수차례 협박했다.
10월 6일 오전 5시 3분쯤에는 헤어지자는 말에 격분해 B 씨의 주거지를 찾아갔다. A 씨는 B 씨에게 “자살하겠다, 죄책감 갖고 살아라”는 메시지와 유서 사진을 전송하는 등 B 씨를 협박했다.
같은 해 12월 9일에는 B 씨 주거지의 욕실 타일을 깨뜨렸다. 계속되는 소란에 같은 오피스텔 이웃이 경찰에 신고를 하기도 했다. B 씨는 새벽 1시 17분쯤 출동한 경찰에 의해 집에서 쫓겨나게 되자 인근에 머무르면서 그날 오후까지 약 17시간 동안 B 씨의 집 현관문을 두드리고, 365차례에 걸쳐 카카오톡 메시지를 전송하는 등 스토킹한 혐의도 받고 있다.
A 씨의 반복되는 협박과 스토킹에 시달리던 B 씨는 약 한 달 뒤인 2024년 1월 7일 오전 2시 30분쯤 자신이 거주하는 오피스텔에서 추락해 숨졌다. 당시 최초 목격자이자 119 신고자는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A 씨였다. 유족에 따르면 A 씨는 처음에는 “B 씨가 추락하는 것을 보고 신고했다”고 했으나, 경찰이 추락 당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하자 “추락 당시 같이 있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한편 A 씨는 법정에서 특수협박을 제외한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대부분 혐의를 인정했다. 다만 A 씨의 변호인은 “특수협박 혐의와 관련해서 사실관계 자체는 인정하나 A 씨가 의자를 던진 행위가 해악의 고지였는지는 법리적으로 다투고자 한다”고 말했다.
협박죄는 일반적으로 상대가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정도의 해악을 고지할 때 성립한다. 해당 행위가 해악의 고지에 해당하는지는 행위자와 상대방의 성향, 고지 당시의 주변 상황, 행위자와 상대방 사이의 관계 및 지위, 친숙의 정도 등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즉, A 씨 측은 의자를 던진 행위가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눈물 흘린 유족 “가해자가 안 왔으면 죽을 일 없었다”
이날 법정에는 피해자의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이모가 유족 대표로 나왔다. 마이크를 쥔 B 씨의 어머니는 발언 내내 눈물을 흘리며 A 씨를 쳐다보았으나 A 씨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시선을 피했다.
B 씨의 어머니는 “딸이 죽고 나서 우리 가족은 충격에 빠져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 둘째 딸은 대학교 4학년인데 사건 이후 학교를 그만뒀다. 사람들이 겁이 나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쟤(A 씨)가 우리 딸을 때린다는 사실을 12월 28일에 알았다. 딸에게 왜 맞고 있었냐고 물어보니 ‘헤어지자 했더니 때리고, 다시 일어나면 또 때리고 오뚝이처럼 맞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제 헤어져서 괜찮다. 걱정하지 말고 엄마 맛있는 거 사주겠다’면서 자기 집에 오라고 했다”며 “우리 딸은 정말 죽을 이유가 없다. (A 씨가) 딸의 집에 오지 않았으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가해자는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도 없다”고 호소했다.
뒤이어 B 씨의 여동생도 “지금까지도 유족에게 사과 한마디 없는 가해자의 오만함에 다시 한 번 분통이 터진다”며 “창틀에 매달려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언니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억장이 무너진다. 부디 가해자가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큰 범죄인지 알 수 있도록 엄벌해달라”고 울먹거렸다. 연이은 유족의 호소에 법정에 있던 방청객들도 눈물을 흘렸다.
유족의 이야기를 경청한 재판부는 “아직 증거 조사를 하지 않아서 공소장에 기재된 내용 외에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 수 없어 A 씨의 범행과 피해자가 사망한 것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검찰 측에 “피해자의 사망이 양형에 반영돼야 할 필요성에 대해 준비해서 의견을 밝혀달라”고 말했다.
이어 A 씨의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배진호 판사는 “사과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의견서에는 피해 회복이나 합의도 준비하고 있다고 기재되어 있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양형에 큰 참작 사유이기 때문에 참고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A 씨 측 변호인도 알겠다고 답했다.
한편 경찰은 사건 당시 CCTV영상 분석을 통해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며 조만간 B 씨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A 씨를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옷 검사에 폭언·폭행 증언까지…유족들 타살 의혹 제기 까닭
유족들은 “자살이 아니라 A 씨의 지속적 폭행과 협박이 B 씨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사건 초기부터 지금까지 타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B 씨의 지인들은 “B 씨가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다. 누구보다 재밌게 살았고 누구보다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던 아이”라고 말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B 씨는 사망 전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고, 몇 달 뒤에는 워킹홀리데이도 떠날 예정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제주도행 티켓은 1월 11일이었다. B 씨는 1월 7일 사망했다.
A 씨의 심각한 집착과 폭행에 대한 증언도 나왔다. B 씨의 친구는 2월 일요신문에 “피해자로부터 A 씨의 심한 집착과 폭행에 대해 들은 바 있다”며 “밥을 먹다가도 A 씨가 요구하면 수시로 영상통화를 하거나 실시간으로 주변 상황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야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인 역시 “지난해 여름 피해자의 생일을 맞아 서울에서 만났는데 긴 바지에 긴 반소매 옷을 입고 왔다. ‘생일인데 왜 이렇게 입고 왔냐’고 물으니 ‘남자친구가 옷 검사를 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해 12월에는 A 씨의 폭행 사실에 대해 상세히 들었다”고 했다.
사망 전날 함께 있었던 지인은 “밖에서 B 씨를 만났는데 갑자기 A 씨가 나타나 자신이 전 남자친구라며 마구잡이로 끌고 가려고 하길래 중재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와 같은 내용의 진술서는 수사기관에도 제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지인들에게 받은 자료를 보면 A 씨는 2023년 5월부터 B 씨에게 성적인 욕설과 협박성 문자를 보내온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의 SNS에 접속해 평소 피해자가 누구와 연락을 하는지 확인하고 이성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피해자의 계정으로 직접 연락해 욕설을 보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일요신문은 A 씨가 구속되기 전 그의 가족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답을 받을 수 없었다.
B 씨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A 씨를 경찰에 3차례 신고했지만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족과 지인들은 “몇 번이나 신고를 했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며 경찰의 미온적 태도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처음에는 B 씨가 처벌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2차 신고 당시에는 피해자가 위치 추적을 요청했으나 경찰서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는 안내에 가해자와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다며 요청을 철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스토킹 범죄의 경우 지난해 반의사불벌죄가 폐지돼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도 기소가 가능하다.
힌편 유족 측 변호인은 A 씨에게 자살 방조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부산=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