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급여 통장서 2년간 220억 원 빼돌려…미국선 ‘어떻게 모를 수 있나’ 오타니 경제관에 두번 충격
#악질 사기 수법 ‘오타니 행세’까지
2021년 11월 18일 오타니가 만장일치로 아메리칸리그 MVP에 오르자, 그의 통역사 미즈하라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긴 여정이었네, 축하해 나의 파트너! 하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해. 이 멋진 여행의 파트너로 나를 선택해 줘서 고맙다”라는 축복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며칠 후 미즈하라는 오타니의 은행 계좌에서 거액을 빼돌렸다. 두 사람의 관계가 피해자와 가해자로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미즈하라는 2021년 9월 불법 스포츠 도박에 손을 댔고, 몇 달 뒤 거액의 손실을 떠안았다. 2년여 동안 1만 9000차례 불법 도박을 했으며, 한 차례 평균 1만 2800달러(약 1800만 원)를 건 것으로 확인됐다. 손실액은 무려 4068만 달러(약 563억 원)에 달한다. 이를 메꾸기 위해 미즈하라는 2021년 11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오타니 계좌에서 무단 이체를 하기 시작했다.
악질적인 수법도 밝혀졌다. 미즈하라는 오타니의 은행 계좌에 있는 연락처 정보를 자신의 전화번호와 이메일로 변경해 아무리 예금을 사용해도 오타니에게 통지가 가지 않도록 했다. 심지어 은행에 전화를 걸어 오타니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송금을 승인하라”고 사칭했다. 일본 언론에 의하면 “미즈하라는 2018년 오타니가 미국 은행에서 계좌를 열 때 도왔고, 이때 오타니의 개인정보를 파악했다”고 한다. 이 계좌는 오타니의 급여 통장으로, 광고와 스폰서 계약과는 별도의 계좌인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를 담당한 검사는 “미즈하라 용의자가 오타니의 실질적인 매니저 역할을 했다”면서 “오타니 선수로부터 신뢰받는 특별한 입장을 악용했다”고 비판했다. 소장에서는 오타니가 자산 및 계좌 관리를 회계사와 재무 담당자에게 맡겼으나 미즈하라가 이들이 해당 계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공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오타니는 수사에 성실히 협조했다고 한다. 수사당국이 오타니의 휴대전화 기록 9700건을 확인한 결과, 도박이나 송금을 미리 알고 있다는 내용은 일절 나오지 않았다. 검찰은 “오타니가 이번 사건과는 전혀 무관하며 피해자”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향후 미즈하라 용의자는 유죄가 확정되면 최대 30년 징역형과 최고 벌금 100만 달러(약 14억 원)의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현재 변호사를 두고 협상을 하고 있어 징역이 아닌 벌금형만 받을 가능성도 있다.
#오타니 경제관 미·일 온도 차이
이번 스캔들의 최대 의문점은 ‘1600만 달러나 되는 큰돈이 없어졌는데, 과연 오타니가 모를 수 있냐’라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미국에서는 “오타니가 도박 사실을 알고 있었고 빚을 갚아 준 것이다” 심지어 “도박한 것은 오타니이며, 통역사가 대신 뒤집어 쓴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검찰 조사 결과, 오타니는 2018년 계좌를 개설한 뒤 3년 동안 단 한 번도 온라인으로 계정에 로그인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또 한 번 충격을 줬다. “진짜 돈에 관심이 없는 선수였다”라며 인터넷이 발칵 뒤집힌 것. 복수의 계좌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3년간 로그인 자체가 없었다는 점에 대해 “잔고를 신경 쓰지도 않고 보지도 않는다니 놀랍다” “야구밖에 모르는 오타니답다”라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다저스로 이적을 발표한 후 오타니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몸값이 1조 원에 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스포츠에 관심 없던 사람조차 ‘갑부 야구선수’로 그를 인식하게 됐다. 오타니가 ‘스포츠계의 셀럽’이 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오타니를 가장 가까이서 지원해온 통역사의 불법 도박 의혹은 호사가들의 관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일본에서 오타니는 그야말로 국민적 스타다.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될 정도다. 일찍이 ‘돈에 관심 없는 야구소년’ ‘야구밖에 모르는 구도자’로 정평이 나 있기에 일본인들은 “오타니가 도박은커녕 거짓말을 할 리 없다”고 믿었다. 반면 미국인들은 달랐다. 미국에서 오타니는 슈퍼스타치고는 미디어 노출이 적어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더욱이 통역을 통해서만 오타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됨됨이의 선수인지 구체적으로 떠올리지 못한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밝히기 전까지만 해도 “오타니의 해명을 완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미국인이 많았다. 물론 개중에는 “야구계의 슈퍼스타가 도박에 연루되는 쪽이 더 재미있지 않겠냐”며 꼬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기자회견에서 오타니는 “나는 무언가에 돈을 걸거나 부탁한 적이 없다. 송금을 의뢰한 적도 없다. 그가 그렇게 하고 있던 것도 며칠 전까지 몰랐다. 그가 돈을 훔치고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라며 자신의 도박 연루 의혹에 입을 열었다. 그럼에도 오타니를 향한 의문의 시선은 계속됐다.
검찰이 “미즈하라가 오타니를 사칭해 은행을 속이기까지 했다”고 발표하자 비로소 오타니의 결백을 납득하는 미국인들이 증가했다. ‘돈에 관심 없는 야구천재’ 이미지가 이제야 미국에도 퍼진 듯하다. “오타니가 송금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던 LA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빌 플라스키도 “오타니의 결백이 증명됐다. 그의 전설은 야구 스타로서 계속된다”라고 뒤늦게 입장을 바꿨다. 그러면서도 “오타니는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사상 최고의 야구선수가 되는 데 바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생활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것이 문제”라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
사건이 발각된 것은 3월 20일 서울에서 열린 MLB 개막전 후 미팅 자리였다. 당시 다저스의 선발투수였던 타일러 글래스노우(31)가 그날의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영어로만 진행됐던 자리였으며 미즈하라는 “나는 도박 의존증이다. 오타니가 빚을 대신 갚아 주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오타니는 스스로 결백을 증명하는 듯한 행동에 나섰다고 한다. 타일러는 “오타니가 꺼낸 말은 ‘내 휴대폰 당장 가져가서 다 체크하라’고 외친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뻔뻔하게도 미즈하라는 ‘도박 빚을 네가 갚은 것으로 해달라’고 오타니에게 부탁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타니는 이를 거절하고 즉시 에이전트를 회의실로 불러들였다는 후문이다.
타일러는 “오타니는 매우 금욕적이다. 이런 상황이 달가울 리 없겠지만 항상 웃는 얼굴이며 늘 하던 대로 루틴을 소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가장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최다안타,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