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녀 입막음 관련 34개 혐의 전부 무죄 주장…선거와 재판 강행군 ‘법정서 꾸벅꾸벅’ 논란까지
지난 4월 15일(현지시각), 뉴욕 맨해튼 지방법원. 푸른 정장 차림에 붉은색 넥타이를 맨 트럼프가 법원에 도착했다. 이미 현장에는 트럼프를 응원하는 1000여 명의 지지자들이 나와 있었고, 이들을 향해 트럼프는 시종일관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지지자들에게 “이 재판은 정치적 박해다. 미국에 대한 공격이다”라고 주장한 트럼프는 “나는 여기 서있는 게 자랑스럽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34개 혐의를 모두 부인한 트럼프는 현재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불륜 상대로 알려진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13만 달러(약 1억 7500만 원)를 건넸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줄곧 거짓 주장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대니얼스의 입을 막기 위해 개인 변호사인 마이클 코언을 통해 뒷돈을 지급했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회계장부를 조작했다는 혐의 또한 물론이다.
법원 서류에 따르면, 트럼프그룹 측은 코언에게 13만 달러를 포함해 세금을 대납해주었으며, 총 42만 달러(약 5억 5000만 원)의 보너스 지급까지 승인했다. 회사 장부에는 이 지출 내용이 ‘법률자문 비용’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만일 이 혐의가 사실이라면 이는 기업 문서 조작을 금지한 뉴욕주 법률을 위반한 행위가 된다. 그보다 문제는 선거법 위반죄로 묶일 경우다. 기업 문서를 조작한 행위는 경범죄에 속하지만, 선거법 위반은 중범죄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사건 당시 트럼프는 대선후보였기 때문에 이 혐의가 사실이라면 이는 선거자금법 위반에 해당된다.
이 재판이 중요한 이유는 재판 결과가 오는 11월 대선의 향방을 가를 수 있는 주요 변수로 작용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형사재판 세 건이 더 진행 중이지만, 대선 이전에 진행되고 판결이 내려지는 재판은 이 건이 유일하다.
재판 첫날 트럼프가 법정에서 보인 모습도 화제가 됐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 판사가 사건개요를 설명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수차례 목격된 것이다. 이 모습은 즉시 법정에 있던 기자들의 눈에 띄었고 이와 관련된 보도가 쏟아졌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서는 ‘#SleepyDonald’라는 해시태그도 퍼져나갔다.
가령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입이 벌어지고 고개가 앞으로 떨어졌다”고 전했으며, 영국의 ‘더타임스’는 “트럼프는 재판 도중 여러 차례 눈을 감았고 마치 조는 것처럼 보였다. 입이 열렸다 닫히기도 했고, 눈을 가늘게 뜨고 있기도 했다”라고 보도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데일리비스트’는 ‘잠이 별로 필요 없다고 했던 전 대통령은 왜 법정에서 졸았을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혹시 트럼프로 하여금 밤을 지새우게 하는 일이 있는 걸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는 분명 대중 앞에서 끊임없이 활력 있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사람에게는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신경과 전문의이자 수면 전문가인 크리스 윈터 박사는 트럼프가 적절한 양의 수면과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윈터 박사는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도 잠이 든다는 건 뇌가 잠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요즘 같은 사회에서는 빨리 잠이 들고, 어디에서나 잠을 잘 자는 사람이 이상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법정에서 잠이 든다면 그건 이상적인 게 아니라 위험한 거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윈터 박사는 “이런 사람의 수면에는 본질적으로 문제가 있다”면서 “설령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수면의 질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슬립 언플러그드’ 팟캐스트의 진행자이기도 한 윈터는 또한 “선거운동을 하면서 동시에 법정 다툼을 벌이는 사람의 경우 숙면을 취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도 “내가 생각할 때 트럼프는 수면과 영양을 우선시해야 할 사람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는 지금 그렇지 않다. 수면의 질에 문제가 있는 듯 보인다”라고 말했다.
물론 트럼프가 실제 재판 도중 졸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트럼프는 법원을 나서면서 이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 후 대변인이 성명을 통해서 “법정에 있지도 않았던 ‘기자들’로부터 나온 100% 가짜 뉴스”라고만 주장했을 뿐이다.
실제 트럼프는 잠을 적게 자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아니, 심지어 잠을 싫어한다. 의학 전문가들의 지침에 따르면 트럼프 연령대의 사람은 하루 최소 7시간 수면을 취해야 하지만 트럼프는 평소 그 정도의 수면 시간도 필요하지 않다고 자랑해 왔다. 2004년 저서 ‘억만장자처럼 생각하라’에서는 “보통 매일 밤 4시간을 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이런 수면 습관은 대통령직까지 이어졌다. 트럼프의 전기 작가인 그웬다 블레어는 2017년 ‘가디언’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절대 잠들지 않는다. 잠을 자는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들이다’”라고 전했다. 2016년 ‘시카고트리뷴’을 통해서도 트럼프는 “나는 잠을 많이 자는 사람이 아니다. 3시간, 4시간 정도 자는 걸 좋아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이번 재판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또 한 가지는 트럼프의 아내인 멜라니아의 행방이다. 실제 지금까지 멜라니아는 법정에 출두하는 트럼프와 동행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 아마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멜라니아의 전 보좌관인 스테파니 그리샴은 CNN 인터뷰에서 “이 사건은 전 영부인에게 매우,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또한 “멜라니아에게 이는 굴욕적인 일”이라면서 “지금 그는 행복하지 않고, 트럼프 역시 그 점을 꽤나 신경쓰고 있다고 확신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리샴에 따르면 멜라니아는 한때 대니얼스를 가리켜 ‘음란한 매춘부’라며 맹비난했다. 하지만 멜라니아는 이런 감정을 좀처럼 외부로 드러내지 않았다. ABC뉴스 인터뷰에서 한 차례 언급한 게 전부다. 당시 멜라니아는 “그 사건은 나의 관심사도 아니요, 초점도 아니다. 나는 어머니이자 영부인으로서 생각하고 해야 할 훨씬 더 중요한 일들이 있다. 사람들은 추측하는 것을 좋아하고, 언론은 우리의 결혼에 대해 떠들기를 좋아한다”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변인이자 전 MMA 격투기 선수인 스티븐 청 역시 2018년 대니얼스의 입막음 관련 보도가 처음 나왔을 당시를 가리켜 “멜라니아는 항상 가족에 집중했으며, 가족이 그의 최우선 목표였다”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요컨대 어떤 일이 있어도 언론에 노출되길 꺼린다는 뜻이다.
실제 멜라니아는 이전의 영부인들보다 훨씬 눈에 덜 띄는 스타일이다. 퇴임 후에도 수많은 기자들이 멜라니아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 팜비치를 찾았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미 연예주간 ‘피플’의 경우 멜라니아 친구의 말을 인용해서 “현재 그는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여전히 남편과 관련된 나쁜 점에 대해 떠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마라라고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라고 전했다. 또한 ‘피플’은 트럼프 부부가 현재 마라라고의 독립적인 개별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팜비치 주민이자 공화당 컨설턴트인 라이언 윌리엄스는 “마라라고의 담장 밖에서 멜라니아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니 앞으로도 멜라니아가 법정에 출석하는 트럼프의 곁을 지킬 리는 만무할 듯 보인다.
이런저런 악재에 휩싸인 트럼프는 과연 ‘사법 리스크’라는 최대 난관을 극복하고 11월 대선까지 무사히 레이스를 마칠 수 있을까.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