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요양보호사 등 건물관리·돌봄직군 구인 집중…개인택시는 ‘1억 자금’ 벽 높아
한 60대 남성 은퇴자 A 씨는 이렇게 얘기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퇴직하기 전 일했던 직업이나 자격증과 연계된 일을 다시 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제법 조직이 갖춰진 직장에 들어가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A 씨는 “친구들 중 은퇴하고 제일 잘 풀린 케이스라면 지방자치단체 시설관리공단으로 재취업한 친구다. 퇴직 후 주택관리사 시험을 봐서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는 사람도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서울 중구에서 만난 한 개인택시 기사 B 씨. 그는 “동료 택시기사들을 보면 공무원이었거나 대기업‧공기업 등을 다니다 은퇴하고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많다”며 “나도 20년 가까이 군 생활을 하다 전역한 뒤 식당을 차렸다가 잘 안 됐고, 이후 수십 년째 개인택시 일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B 씨는 그래도 자신을 비교적 ‘괜찮은’ 경우로 생각한다. 개인택시 일도 어느 정도 여윳돈이 있던 사람이나 할 수 있다. 그는 “개인택시 번호판을 사려면 서울에선 최근 1억 2000만 원 이상 들기 때문에 자금이 어느 정도 있어야 접근 가능한 직업”이라고 덧붙였다.
빨라지는 은퇴, 준비 안 된 생계 대책. 50~60대 중년 은퇴자들에게 일자리가 절실하지만 막상 마주한 현실은 춥기만 하다. 이미 은퇴 딱지가 붙은 사람을 다시 써줄 곳을 찾기도 어렵거니와 길게는 20~30년 밥벌이 한 직업과 연계된 일을 찾기란 사치에 가깝다.
은퇴자나 유관기관에 따르면 이들 연령대가 현실적으로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남성은 소위 ‘경비’라 불리는 건물·시설 안전관리직, 여성은 간병인이나 베이비시터 등 돌봄서비스 업종으로 좁혀진다. 홍종희 서울시 50플러스재단 사업운영본부 서부캠퍼스팀 선임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채용정보를 보면 남성은 건물관리직, 여성은 요양보호사 같은 돌봄직군에 집중돼 있다”며 “그 일이 좋아서 택하기보다 중년을 쓰는 곳이 그런 직군밖에 없어 지원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들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고용상태가 불안정한 데다 고된 육체노동이 수반돼 20~40대는 기피하는 직종이다. 요양보호사들의 평균 연령이 60대인 것도 같은 이유다. 그만큼 은퇴자들 다수가 취약한 고용상태에 놓인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지난 3월 보고서를 보면 국내 55~64세 임금근로자 가운데 임시고용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남자 33.2%, 여자 35.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치의 약 4배에 달했다. 끊김이 잦은 일자리는 소득 단절로 이어져 생활 빈곤으로 직행하기 십상이다.
사정이 조금이라도 나은 일자리는 지원 경쟁률이 너무 높아 ‘내 것’으로 탐내기 어렵다. 지난해 서울의 한 자치구 교육프로그램을 수강한 후 건물관리인으로 취업한 70대 남성은 “주5일제에 낮시간 근무, 신축건물인 점 등 비교적 좋은 환경이라 그런지 1명 채용에 30명이나 지원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일하고자 하는 50~60대는 갈수록 는다. 평균 수명 연장에 사실상 80대까지, 은퇴하고도 20~30년 더 일해야 한다는 경우도 많다. 65세 이상 인구 중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비율은 2023년 기준 51%에 그친다. 평균 수령액도 62만 원으로 기본 생계비가 못 된다. 무엇이라도 잡히는 일은 다 하다보니 지난해 60대 고용률이 역대 처음 58%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50대 이상 은퇴자에 맞춘 일자리 지원책이 미비한 현실을 지적한다. 주로 70대 이상 ‘저소득 노년층’에 집중해왔던 대책으로는 ‘중년 백수’ 문제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수년간 국가의 노년 일자리 정책은 공공 중심으로, 기본적인 빈곤을 해소하는 ‘용돈 주기’ 차원이었다”며 “최근의 은퇴 중년층은 과거 세대보다 학력 수준이 높고 개인 역량도 강해 이들의 사회적 관계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 지원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윤주 서울시50플러스재단 사업운영본부장은 “‘4060’으로 묶기보다 40대, 50대, 60대 각기 다른 일자리 지원사업이 필요하며 같은 연령대에서도 다양한 지역과 성별, 소득 수준, 출신 직업 조건에 맞춘 일자리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채용시장에서 다양한 조건의 중년 구직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플랫폼 구축도 요구된다.
정년퇴직 연령 연장, 나아가 폐지 필요성도 제기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국 사례를 보면 고령사회로 진입하며 직군별로 퇴직 연령을 달리하기도 하고 아예 은퇴 연령을 없앤 국가도 있다”며 “단기 해결은 어렵겠지만 (추가) 노동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장기적으로 고민해 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