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드파밍’ 해외 이용자 코인 모아 한국에 덤핑 친 정황 포착…국내 가상자산 이용자 분통
최근 가상자산법 1호 범죄가 될지도 모를 사건이 벌어져 업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7월 23일 빗썸에 상장된 어베일(AVAIL)과 관련해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어베일은 후오비, 게이트 아이오(Gate io) 등에 상장됐는데 상장 직후부터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김치 프리미엄(김프)이 무려 1000%에 달할 정도로 치솟으면서 해외 거래소와 가격 차가 10배 가까이 벌어졌다. 김치 프리미엄은 한국 프리미엄을 뜻하는 말로 국내 코인 가격이 해외 코인 가격보다 높게 거래되는 현상을 말한다. 어베일은 23일 오후 10시 상장 직후 10시 10분께 코인 1개 가격이 3500원까지 치솟았다.
이렇게 가격차가 생기면서 에어드롭으로 어베일을 확보한 유저들은 빗썸에 입금해 고점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매도세를 못 이겼는지 어베일은 다음 날 곧바로 전일 대비 80% 이상 폭락하면서 상승분을 대부분 토해냈다. 어베일은 7월 26일 오전 8시 빗썸 기준 282원에 거래 중이다. 상장 호재가 있다고 하지만, 다른 거래소와 10배 가격 차이가 벌어졌다가 곧바로 약 90% 폭락한 것에 대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한 유저가 김프를 이용해 외국인이 보유한 코인을 한국 시장에 덤핑 친 정황까지 발견돼 논란이 커졌다.
트위터(현 X) ‘일드파밍’(yieldfarming)이 어베일을 두고 김프를 이용했던 정확이 포착됐다. 일드파밍은 “누군가 만약 내 주소로 어베일 코인을 보내면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해서 팔고 불려 주겠다. 48시간에서 72시간 이내에 더 불려서 보내줄 테니 만약 사기라고 생각한다면 보내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일드파밍이 올린 주소로 모인 코인은 빗썸 고점 기준 약 40억 원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가상자산 이용자들의 반발이 거셌다. 먼저 불특정 다수 외국인이 보유한 코인을 모아 한국 거래소로 보낸 후 한국 코인 투자자들에게 덤핑을 쳤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들은 해외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확보한 코인을 한국에서 김프가 낀 사이에 5배에서 10배 비싸게 팔아 차익을 남기고, 이 가운데 이익 일부를 자신들에게 코인을 맡긴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비즈니스를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드파밍은 ‘검머외 캐피탈’이라는 텔레그램 방도 운영하고 있다. 검머외 캐피탈 대문에 일드파밍 외 2명을 운영자로 공개해뒀다. 검머외 캐피털 운영자는 매도를 끝낸 후로 추정되는 시각에 ‘수고하셨습니다. 한국인 사랑해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해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분노를 야기했다.
이들이 가진 빗썸 계좌를 대리로 이용한다는 점을 볼 때 이들 고객은 주로 빗썸을 이용할 수 없는 외국인일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이 가진 코인이 대리매매로 매도됐다는 게 확인된다면, 이상거래 혹은 가상자산법 위반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코인 가운데 해킹·마약·테러·북한 등 연관된 자금이 있다면 문제는 더 커질 전망이다.
검머외 캐피탈 등이 공개한 내용을 토대로 할 때 코인을 모아 빗썸에 보냈다고 인증한 양이 빗썸 내부 유통량 상당수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들이 작업했던 시간대로 추정되는 24일 0시 30분 기준 빗썸 내부 유통량은 약 155만 개인데, 일드파밍이 운영하는 ‘검머외 캐피탈’이라는 그룹에서 자신들이 빗썸에 보냈다고 인증한 어베일 양은 117만 개에 이른다. 이들의 인증이 사실이라면 빗썸 유통량 대부분이 이들이 보유한 코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트위터 이용자가 올린 계좌에 뭘 믿고 입금했나’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가상자산 업계 뉴스를 다루는 ‘변창호 코인사관학교’ 운영자 변창호 씨는 “2만 명이 넘는 팔로어를 확보했고 트위터에서 나름 인지도가 있어 ‘네임드’(유명인)로 알고 있다. ‘네임드가 설마 떼어먹겠냐’는 마음으로 소액을 보낸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일드파밍은 최종 보유 원화 가격 6억 8000만 원을 인증하면서 “대여해준(personal loan) AVAIL보다 더 많은 양의 AVAIL을 24~72시간 이내에 돌려주겠다”고 트윗을 올렸다. 이미 거래소에서 판매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에서 2~3일 시간을 더 둔 것은 원화로 어베일을 매도 후 충분히 김프가 빠질 때까지 기다리거나 타 해외 거래소 출금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어베일이 상장된 주요 거래소 중 출금이 열린 곳은 빗썸뿐이었다.
일드파밍은 논란이 불거지자 “한국 국적이다. ‘검머외’(검은머리 외국인, 주로 외국 여권이 있는 한국인을 가리킨다)지 외국인 아니다”면서 “내가 (법) 경계선에 있을 수도 있는 것도 맞고, 보따리(거래소로 물량을 가져와서 파는 일) 처음으로 먹어서 신난 상태로 경솔하게 남이 기분 나쁠 만하게 꺼드럭댄 것도 맞는데 굳이 싸울 필요 있나”라고 말했다. 이어 일드파밍은 “내가 돈 벌려고 한 건데 문제되면 책임지겠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에 대해 가상자산법 1호 위반 사례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텔레그램 운영자 머니보틀은 가상자산법 중 ‘가상자산 거래소는 이상거래를 상시감시하고, 불공정거래행위로 의심되는 경우 금융당국에 통보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된 부분을 올리면서 “가상자산법에 의하면 이번 사건이 이상거래고 빗썸이 막지 못했으니 1호 범죄 아니냐”고 지적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법 시행 이후 첫 번째 사건인 만큼 무조건 범죄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금융당국의 움직임을 지켜봐야 한다는 시선도 있다. 현재 이상거래 등 가상자산 관련 1차 담당부처는 금융감독원(금감원)이다. 금감원 조사 결과 혐의가 있으면 수사당국에 신고한다.
한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가상자산법 시행 후에는 기존 사고가 터졌던 하루, 델리오 같은 업체처럼 위탁받은 자산을 다른 곳에 투자하는 방식의 사업(가상자산운용)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알고 있다. 사업자가 자기 몫 가상자산과 이용자 가상자산을 분리해서 보관해야 하고, 고객에게 위탁 받은 가상자산과 별도로 동일한 종류와 수량의 가상자산을 실질적으로 보유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이에 비춰볼 때 일드파밍 건은 명백하게 법 위반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해당 논란에 대한 일요신문i의 질문에 빗썸 측은 "당사는 24시간 가상자산 입금 모니터링을 하고 있으며, 트래블룰을 준수하여 송금자의 정보를 철저히 확인 및 파악하고 있다. 해당 건은 이에 따른 모니터링과 심사, 가상자산 입금 관련 내부규정 적용 등이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며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불공정거래 행위 및 이상거래 감시에 대해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