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속어’ 썼다고 신고→계정 영구차단→헤비 업로더 탈주…다음 측 “기준 충족시 이용 정지 해제 예정”
다음 카페를 중심으로 유례없는 대규모 규제 칼바람이 분 것은 4월 중순부터다. 규제된 대다수 회원들은 규제 사유로 ‘욕설 및 비방 게시물·댓글 작성’이 적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5월 15일 기준 이 같은 사유로 다수 회원들의 규제 조치가 적용된 카페는 △쭉빵카페(회원수 139만 5458명) △이종격투기(91만 3362명) △여성시대(84만 4050명) △도탁스(56만 6772명) △성공다이어트/비만과의 전쟁(48만 5303명) △한류열풍사랑(16만 4655명) △밀리토리네(12만 4460명) △소울드레서(10만 7085명) △락사커(9만 3898명) 등 대형 커뮤니티로 확인됐다. 일부 커뮤니티 운영진은 사태 파악에 나서 영구 차단 조치된 회원들을 구제하는 한편, 다음 측에 규제 조치 완화를 호소했지만 별다른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클린다음’이란 자체 규제 시스템을 통해 운영 규정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 회원들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있다. 게시물이나 댓글이 규정에 위배될 경우 제삼자의 신고를 받아 규제하는 식이다. 처음 신고될 경우 3일 이내 회원 스스로 위반 내용을 시정하도록 경고 메일을 보내고, 경고가 누적되면 1차로 활동 일주일 정지(서비스 이용제한) 조치가 이뤄진다. 2차 규제로는 30일 간 다음 내 모든 서비스에 로그인 할 수 없는 이용중지 규제가, 마지막으로는 계정 접속이 영구적으로 차단되는 '영구중지' 조치가 이뤄진다. 영구중지된 계정은 다음의 전체 서비스에 무기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카페는 물론, 이메일까지 사용할 수 없다.
문제는 클린다음이 신고에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이번 대규모 규제가 단기간에 누적된 신고를 토대로 기계적으로 이뤄지면서 회원들이 미처 시정할 틈도 없이 곧바로 영구중지 조치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회원들은 최소 수년, 최대 십수년 전에 작성한 글로 인해 계정을 완전히 잃게 되는 처지에 놓였다.
익명을 원한 한 카페 운영자는 “이전의 클린다음 규제의 경우 실제 위법 행위 또는 선정적인 사진이나 영상 게재, 개인정보 침해나 특정인 비방 글에 주로 이뤄졌는데 이처럼 10여 년 전에 쓴 단순 일상 글에 적힌 가벼운 욕설이나 은어, 비속어까지 모조리 신고돼 영구중지 규제로까지 이어진 것은 이번 사태가 처음”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는 “규제 초기에는 남초 카페에선 여초 카페가, 여초 카페에선 남초 카페가 서로를 신고했다고 의심했지만 양측 모두 무차별적으로 규제되고 있는 게 확인되면서 특정 외부 커뮤니티가 신고를 넣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각 카페의 이번 대규모 규제가 4월 중순이라는 동일한 시점에서부터 이뤄졌고, 불특정 다수의 신고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볼 때 개인이 아닌 집단의 의도적인 행위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의 신고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카페 운영진들은 현행 카페 운영 방향과 다음의 규정이 맞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다른 카페 운영자는 “다음은 사이트 개설 초기인 1990년대 후반 한메일(카카오메일의 전신) 계정을 만든 회원들이 지금까지 꾸준히 이용해 오고 있어 카페 이용자 역시 90% 이상이 성인”이라며 “지금 대규모 규제로 문제된 카페도 무조건 성인으로 확인된 회원만 가입을 받고 있는데 청소년의 건강한 정신 함양에 위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비속어, 은어까지 위법행위와 동일하게 영구 차단에 이를 정도로 규제한다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본다”고 짚었다.
카페 운영진들은 4월 25일부터 ‘다음 카페 서포터즈’를 통해 다음 측에 항의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 카페 서포터즈’는 다음에서 공식 운영하는 카페 회원 및 운영진 전용 커뮤니티로 고객센터와 유사하게 지원 및 공지가 이뤄진다.
‘성공다이어트/비만과의 전쟁’의 운영자는 “이전부터 이용연령의 증가에 발맞추지 못한 다음 카페의 청소년 기준 약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라며 “만약 혐오성 단어가 문제라면 뉴스 댓글쓰기의 경고나 ‘*’표처럼 기술적으로 차단을 하거나 경고했어야 할 것이지 아이디를 영구정지시켜 10여 년 동안 수만 개 올린 글들을 다 삭제하게 하는 것은 매우 반 커뮤니티적인 운영 처사”라고 짚었다.
이번 규제로 인해 이른바 ‘헤비 업로더’로 불리며 다량으로 글을 올려오던 회원들이 작성한 글을 모두 삭제하며 몸을 사리기 시작해 커뮤니티 전체가 침체되고 있다는 것이 운영진들의 공통된 우려다. 일부 카페의 경우는 외부 사이트를 개설해 전체 회원을 이주시키는 방침을 논의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락사커’의 관리자 역시 “지난해와 지금 시점의 카페를 비교해 보면 클린다음의 문제로 인해 수많은 업로더들이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한 상태”라며 “이에 대한 해법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현 다음 카페 시스템 하에서는 더 이상 커뮤니티를 운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이용자들의 대량 이탈이 예고된 가운데 다음 측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최근 회원들의 신고가 많아지면서 처리량이 증가해 대량 규제가 이뤄진 것으로 별도로 (규제)규정이 강화된 것은 아니”라면서도 “다만 최근 게시글 신고 및 규제로 카페 회원들이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신속한 정책 마련의 일환으로 일정 기준을 충족한 경우 이용자 제재 해제가 가능한 정책을 이번 주부터 적용하고, 해당 기준을 충족한 이용자들은 순차적으로 이용 중지가 해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취재가 진행된 5월 14일 저녁부터 이번 대량 규제로 이용 정지 조치를 당한 일부 회원들의 규제가 해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