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 그룹’ 전현희·이언주·박주민 하마평…강성 지지층 사이 추미애·정청래 지지 높아
#밀어붙이는 야당, 방책 없는 여당
법사위원장 자리는 역대 국회 원 구성 때마다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었다. 법사위의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법사위는 체계·자구 심사권이 있다. 이 권한을 통해 다른 상임위의 법안 통과 과정에 개입할 수 있다. 법사위가 ‘소국회’ 또는 ‘사실상의 상원’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를 우회할 방법으로 ‘안건신속처리제도(패스트트랙)’이 있지만, 최장 330일이 걸린다(관련기사 ‘체계·자구 심사권’이 얼마나 대단하길래…막 오른 법사위원장 쟁탈전).
민주당은 법사위원장 자리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5월 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운영위와 법사위는 무조건 민주당이 위원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박 원내대표는 “국회법에 따른 다수결 원칙에 의해 (상임위원장이) 결정되는 것이 적절하다”며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다 가져와서 (상임위) 전체를 운영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새 원내대표는 5월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현재 민주당은 다수당 지위로 원 구성을 독식하려 한다. 국회의장뿐 아니라 운영위·법사위원장까지 민주당 몫으로 하겠다는 입장을 쏟아냈다”며 “역대 원 구성은 여야 간 견제와 균형을 이뤄왔던 것이 국회 전례이고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추 원내대표는 “이런 관례와 사실을 외면한 채 의장에 이어 운영위·법사위까지 독식한다는 발상은 입법독재를 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양당 원내대표는 5월 21일 서울 모처에서 만나 22대 국회 원 구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 자리에는 배준영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와 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배석했다. 두 원내대표는 입장차만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5월 22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타협점을 이야기 할 때는 분위기가 안 좋았다. 전혀 이야기가 안 됐다”며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받았다. 윤석열 정권의 독주를 막을 상임위가 법사위다. 반드시 (법사위 확보를) 관철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사위원장 등을 두고 양당의 줄다리기가 길어질 경우 국회 원 구성은 늦춰질 전망이다. 21대 국회는 원 구성 협상이 지연되면서 7월 16일 개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 후보는 5월 17일 같은 방송에 출연해 원 구성 데드라인에 대해 “6월 중으로 끝내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우 후보는 “너무 합의가 안 된다. 그러면 국회법이 정한 절차대로 (다수결로 할 것)”라며 “국회를 빠른 속도로 개원하는 게 국회의장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밀어붙일 경우 국민의힘으로선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 보인다. 국회법은 본회의 무기명 투표를 통해 각 상임위 구성원 중에서 위원장을 선출하도록 정한다. 과반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원하면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가져갈 수 있는 셈이다. 총선 패배 후유증도 여전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당내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민주당의 상임위 독식 행보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영남권 의원은 “(법사위원장에 대해) 지도부가 대책을 세울 것”이라면서도 “그런데 우리가 숫자가 적으니 민주당이 협치를 생각하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나온다면 막을 힘이 없을 것 같다. 국민들한테 호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의장 선거 재판…누가 돼도 후유증 불가피
국회법은 본회의 선거를 통해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도록 규정한다. 13대 국회 때부터 이 규정은 유명무실화됐다. 교섭단체 정당들이 협상을 통해 의석수 비율에 따라 상임위원장 자리를 나누는 관례가 자리 잡으면서다. 협상은 각 당 원내대표가 진행한다. 친명계 박찬대 원내대표가 제1당인 민주당의 원내대표인 만큼 명심의 향방이 법사위원장 선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법사위원장 후보군에는 친명계 강경파로 분류되는 이들이 자천타천 거론된다. 우선 3선 그룹의 전현희 이언주 당선인, 박주민 의원이다. 전현희 당선인은 4월 19일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법사위원장) 기회가 주어진다면 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의료전문 변호사 출신인 전 당선인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시절부터 윤 대통령과 대립했다(관련기사 [인터뷰] 전현희 민주당 당선인 “윤석열 정부가 날 정치로 불러냈다”).
‘윤석열 저격수’로 꼽히는 이언주 당선인도 오르내린다. 이 당선인은 여러 방송에서 윤 대통령을 비판하며 정권 심판론에 불을 붙였다. 총선 때 이재명 대표가 직접 복당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당선인 역시 법사위원장 자리에 의지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주민 의원은 50세로 후보 중 가장 어리지만 경력은 밀리지 않는다. 박 의원은 원내 입성 전 인권변호사로 활동했고, 이번 국회에서는 법사위원으로 있었다. 최근 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 통과를 위해 전면에 나서고 있다. 박 의원은 재표결 통과를 위해 물밑에서 7~8명의 국민의힘 의원을 설득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상임위원장을 배분할 때 나이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지 않고, 능력 위주로 상임위원장을 배분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3선 이상의 위원들 중 나이순으로 위원장을 맡았던 관행이 깨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앞서의 방송에서 “윤석열 정권의 독주체제를 막을 수 있는 제1전선이 법사위원장”이라며 “실질적으로 성과와 업적을 내고 전문성도 있으면서 조율 (능력도)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나이가 가장 어리지만,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박주민 의원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의 지지 여부가 변수로 꼽힌다. 강성지지층 사이에서는 추 당선인과 정청래 의원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재명 대표 팬카페인 ‘재명이네 마을’에는 두 사람 중 한 명이 법사위원장이 돼야 한다는 게시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추 당선인과 정 의원이 법사위원장 후보로 급부상한 배경이다. 통상 3선에서 위원장을 선출해왔던 것을 감안했을 때, 4선(정청래) 또는 6선(추미애) 위원장이 나올지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추 당선인은 강성 지지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추 당선인이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윤 대통령과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워왔던 점이 높게 평가받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우원식 의원이 선출되자 추미애 당선인을 지지했던 일부 강성 지지층이 거세게 반발했다. 현재까지 약 1만 명이 탈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국회의장 체급인 추 당선인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맡겠다고 나설지는 미지수다.
정 의원도 대표적인 강경파 의원으로 꼽힌다. 정 의원은 2021년 법사위원장 후보로 거론됐었다. 정 의원은 5월 14일 유튜브 방송 ‘겸손은 힘들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법사위를 1순위로 지원했다”고 밝혔다. 진행자가 법사위원장을 노리고 있는지 묻자 “민심이 결정하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누가 법사위원장이 되더라도 후유증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회의장 후보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특정 지지층의 비토 움직임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강경파 위원장에 대한 우려도 뒤를 잇는다. 이재명 대표의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