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연애’ 논란 후 첫 드라마 복귀작…“류준열에게 있어 최고의 선택” 극찬도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했나. 그 말 그대로 배우 류준열(38)은 작품 인터뷰에 앞서 그간 자신을 둘러싼 각종 논란에 대한 심경으로 먼저 입을 뗐다. 배우 한소희, 혜리와의 삼각관계에서 불거진 ‘환승연애’ 논란과 자신의 행동과 다소 모순된 ‘환경 운동’ 논란은 그를 마음껏 난도질할 수 있는 대중의 심판대에 올려놨었다. 자신의 뜻대로 올라가지도, 또 내려가지도 못하는 곳에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던 류준열은 이 모든 게 결국 자신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늦은 나이에 데뷔해서 배우를 시작할 땐 이렇게 될 것이란 기대감이 전혀 없었어요. 그러니 지금의 제 모습이 신기하기도, 감사하기도 했는데 그 사이에 자꾸 놓치는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디 에이트 쇼’에서 인물들이 계속 자극적인 걸 찾는 것처럼 저 역시도 욕심이나 욕망이 점점 커졌던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다들 많이 실망하셨을 거고요. 저로서는 한편으로 이 순간에서 저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논란 후 류준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디 에이트(8) 쇼’로 다시 대중 앞에 섰다. ‘디 에이트 쇼’는 삶의 벼랑 끝에 몰린 8명의 인물이 8층으로 나뉜 비밀스러운 공간에 갇혀 ‘시간이 쌓이면 돈을 버는’ 달콤하지만 위험한 쇼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가운데 류준열은 사채에 허덕이다 쇼에 참가한 3층의 인물, 배진수를 연기했다. 화려하지도, 근사하지도 않은 이 지질한 인물을 처절하게 그려낸 류준열에겐 “이번 작품이 그에게 있어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극찬이 쏟아지기도 했다.
“진수는 어떤 한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한 가지 선택만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떨 땐 실수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욕망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도 해요. 좋은 사람이었다가 비겁한 사람이었다가 다양한 상황 속에서 그만큼 또 다양한 감정을 쏟아낼 수 있죠. 이런 여러 레이어를 여과없이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배우로서 연기하며 희열을 느끼는 순간인 것 같아요. 저 보고 다들 이 작품에서 ‘망가졌다’는 말씀을 많이 주시는데요, 오히려 이 작품이었기에 그렇게 마음껏 망가질 수 있었던 거죠(웃음).”
‘디 에이트 쇼’는 돈과 권력, 사회적 지위의 많고 적음과 높고 낮음을 두고 밑바닥 본성을 드러내면서도 하찮은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 군상을 낱낱이 훑어낸다. 역겹고 어두우면서 자극적인 욕망이 가득한 후반부에 비해 전반부는 작품의 블랙 코미디적 성향에 중점을 두고 있어 시청자들로 하여금 조금은 마음 편히 시청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든다. 공개 후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화제가 됐던 7층(박정민 분)의 ‘코코더(코로 부는 리코더)’와 배진수의 열정적인 댄스 등 게임 참가자들이 시간을 벌기 위해 펼친 장기자랑 신도 전반부에 등장했다.
“(박)정민 씨의 ‘코코더’에 경쟁의식은 없었지만, 적어도 제 댄스가 벌 수 있는 시간이 18분보단 더 받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은 있었어요(웃음). 아무리 그래도 18분은 좀 아니지 않나?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드렸다면 그거보단 더 받았어야죠(웃음). 원래 진수의 댄스는 ‘잘 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니 아니었다’라는, 비트는 식의 유머가 있는 장면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의도가 잘 살지 않아서 감독님이 급하게 바꿔 수정한 게 그 장면이에요. 사실 지금도 미스터리 같고 몰래카메라 같긴 한데, 애초 의도와 달리 다들 제가 너무 잘 춘다고 하셔서 변경된 거죠(웃음).”
이처럼 한없이 지질하고, 멋없고, 비겁하지만, 꼭 필요할 때만은 정의감과 용기를 펼쳐 보이는 배진수는 그를 연기한 류준열에게도 꽤나 매력적인 캐릭터였다고 했다. 특히 이처럼 다면성을 지녔으면서 동시에 작품의 안과 밖에서 모두 기능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작품 안에서 배진수는 게임의 ‘하류층’ 참가자이자 소시민이고, 밖에서는 시청자와 작품을 잇는 화자로 존재한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대사는 입 밖으로 내뱉게 되지만, 배진수만은 내레이션과 속마음까지 모두 대사에 포함됐기 때문에 배우의 모습이 직접 촬영 프레임에 등장하지 않을 때에도 ‘목소리’에 만큼은 감정을 묻혀야 했다.
“제가 내레이션을 많이 해봐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괜찮더라고요. 농담이고요(웃음), 사실 양이 워낙 많았던 데다 보통의 내레이션은 설명이나 전달에 그쳤다면 이건 제 속마음을 드러내야 하다 보니 연기가 아니어도 계산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반대로 한재림 감독님과의 작업이 너무나 좋았던 것도 이 내레이션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을 하면서 내레이션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마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면 정말 ‘척 하면 척’이었거든요. 처음엔 내레이션이 너무 많아서 시청자들이 지루해 하시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이렇게 칭찬을 많이 들으니까 다음 작품에서도 내레이션이 많았으면 좋겠어요(웃음).”
이렇게 작품의 안과 밖을 오가며 작가와 감독의 입을 대변한 배진수가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자극만을 좇는 지금의 세태다. 처음엔 자극적이더라도 소비되는 순간은 찰나에 불과해 쉽게 지루해지고, 그렇게 무뎌진 대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창작자는 더 크고 강렬하며 오래가는 자극으로 그들에게 극한의 도파민을 제공하려 한다. 자극을 위해서라면 인간을 어디까지 도구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 이야기는 그 누구보다 연예인들이 더 처절하게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최근까지 이런 도파민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류준열이라면 더더욱.
“그동안 ‘내가 교만했다’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큰 부침 없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내가 잘하고 있어서 그래’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부침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순간이 오지 않았나 싶죠. 이제라도 더 신중하고,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그때도 그랬지만 제게 들어오는 어떤 이야기도 비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 비판으로 여기고 하나하나 곱씹어 생각하고 있어요. 다 털어버리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니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혼날 땐 혼나고, 응원받을 땐 받으면서 좋은 사람이자 좋은 배우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