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도 수중전” 빗속에서 3시간 동안 30곡 열창…하늘색 열기구 띄워 2·3층 관객과도 눈높이 맞춰
‘아임 히어로-더 스타디움’은 3박자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공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대의 완성도를 비롯해 임영웅의 배려, 그리고 팬덤의 호응이 적절한 균형을 이뤘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공연 마지막 날인 26일 상암에는 비가 내렸다. 하지만 임영웅과 팬덤 영웅시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임영웅이 손수 준비한 하늘색 우비를 나란히 차려입고 객석을 꽉 메웠다. 약속된 오후 6시 폭죽이 터졌고 임영웅이 등장했다. 18인조 밴드의 선율에 맞춰 그는 ‘무지개’ ‘런던 보이’ ‘보금자리’로 포문을 열었다. ‘런던 보이’를 부를 때는 100명이 넘는 댄서가 그라운드로 달려 나왔다. 이날 공연에는 안무가 158명이 투입됐다. 마치 올림픽 매스게임을 보는 듯한 장관이 펼쳐졌다.
계속된 비에 체력 저하가 우려됐지만 임영웅은 건재했다. 오히려 “하늘이 저를 위한 특수효과를 선물해준다”며 “축구할 때도 수중전이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그는 3시간 동안 혼자 30곡을 너끈히 소화했다. 대표곡인 ‘이제 나만 믿어요’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를 비롯해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우리들의 블루스’ 등을 편곡해 불렀다.
앞서 임영웅의 공연을 본 이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기 위한 철저한 준비와 변주가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신곡 ‘온기’와 ‘홈’의 무대도 이번 공연에서 처음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온기’의 뮤직비디오로 쓰인 단편 영화도 일부 공개됐다. 본편은 향후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등을 통해 개봉될 예정이다.
이날 무대의 백미는 단연 열기구였다. 임영웅이 3면에 돌출 무대를 만들어 팬들에게 다가서려 노력했지만 2·3층 관객과는 일정 거리가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는 하늘색 열기구를 띄웠고, 높이 날아올라 2·3층 관객과도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면서 ‘사랑은 늘 도망가’ ‘사랑역’ ‘사랑해 진짜’ 등 사랑 3부작을 불렀다. 그가 부른 노래의 제목은 ‘사랑은 늘 도망가’였지만 임영웅은 항상 사랑하는 팬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가려 노력하고 있다는 의중을 담은 퍼포먼스였던 셈이다.
트롯을 좋아하는 팬들을 위한 무대도 마련됐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부터 ‘어쩌다 마주친 그대’ ‘아파트’ ‘남행열차’ 등을 메들리로 들려주자 관객들도 어깨춤을 췄다. 또한 임영웅은 ‘따라따라’를 부른 뒤 “저도 제법 트롯 곡들이 많아서 트롯 곡만 모아서 콘서트를 하는 건 어떨까 생각해봤다. 어떠신가”라고 물었고 팬들은 크게 환호했다.
#배려의 아이콘, 임영웅
이번 콘서트를 준비하며 임영웅은 광활한 그라운드에 하얀 천을 덮어 씌웠다. 평소 축구 경기를 치르는 구장의 잔디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대신 구장 북측에 대형 전광판을 설치했고, 팬들도 더 가까이서 호흡할 수 있도록 돌출무대를 설치했다.
우비도 임영웅의 아이디어였다. 원래 임영웅은 매 공연마다 중장년 팬들을 위한 방석을 준비한다. 하지만 비 소식을 접한 후 우비로 대체했다. 비를 피하는 동시에 중장년 팬들의 체온 저하를 막는 역할을 하는 적절한 선물이었다.
공연장 앞에는 대형 종합안내소가 설치됐다. 티켓 색상별로 유도선을 깔아 동선을 정리했고, 촘촘하게 배치된 300여 명의 안내 요원은 공연장부터 근처 지하철역까지 줄지어 서서 10만 명에 이르는 관객의 귀갓길을 도왔다. 여성 관객이 많은 것을 고려해 간이 화장실을 늘리고 의무실을 설치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임영웅의 이런 ‘배려 바이러스’는 안내 요원에게 전파됐다. 25일 공연 때는 한 안내 요원이 거동이 불편한 관객을 업고 객석에 안내해 화제를 모았다. 이 사진이 공개되며 칭찬이 이어졌고, 임영웅은 26일 공연에서 해당 안내 요원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했다. 그는 “어제 우리 연로하신 어르신을 업은 진행요원이 한 분 계신다. 여기 2층에 계시다고 들었다. 고맙다. 정말 멋진 일을 하셨다. 진행하시는 모든 분이 친절하게 진행해주셨다. 따뜻한 박수 부탁드린다”고 청했고 대형 스크린에 등장한 이 안내 요원은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신드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마무리된 ‘아임 히어로’는 2023년 10월 시작됐다. 서울, 대구, 부산, 대전, 광주, 고양을 거쳐 다시 서울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총 23회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임영웅의 공연은 온 가족이, 3대가, 전연령층이 함께 즐기는 축제로 유명하다. 공연을 찾은 팬들 중 최고령자는 98세다. 1월 광주 콘서트에 98세 어머니를 모시고 다녀왔다는 팬은 “공연 도중 임영웅이 엄마를 기억해 주고, 찾던 순간엔 심장이 멎을 뻔했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임영웅은 이 팬을 직접 만나 사인을 건네며 “100세 때도 꼭 콘서트에 오시라”고 당부했다.
이번 전국 투어를 통해 임영웅이 만난 팬은 총 32만 명이다. 상암 공연 전까지 22만 명을 모았고, 이틀간 10만 명을 보탰다. 하지만 공연장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을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임영웅은 “공연장 밖에 있는 영웅시대도 함성을 질러달라”고 요청했고, 우레와 같은 환호가 공연장 담을 넘어 들렸다. 미처 티켓을 구하지 못했지만 그 열기를 느끼기 위해 경기장 주변에 머문 팬들도 족히 1만 명은 된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번 공연 티케팅 때 대기자 수만 40만 명이 넘은 것을 고려할 때 ‘임영웅 신드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안진용 문화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