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 본 하이브 ‘어도어 이사진 물갈이’로 대응…민희진 대표 기자회견서 화해 의사 표하기도
#‘배신’일 순 있어도 ‘배임’은 아니다
5월 7일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하이브(대표이사 박지원) 측을 상대로 낸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김상훈)는 5월 30일 민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하이브는 5월 31일 열린 어도어 임시주주총회에서 안건으로 오른 민 대표의 해임안에 찬성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됐고, 이를 어길 시엔 민 대표에게 200억 원의 간접강제금을 지급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재판부가 지적한 핵심은 하이브의 주장대로 민 대표가 어도어 설립 이후 보인 행보가 ‘배임’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하이브 측은 민 대표를 위시한 어도어 경영진이 하이브로부터 독립하는 방안을 모색하며 사모펀드 운영사에 하이브가 보유한 지분을 매수할 의사가 있는지 묻고 다녔고, VC(벤처캐피털) 투자자들과 만나 ‘뉴진스(NewJeans)를 데리고 나오라’는 조언을 듣는 한편, 어도어와 뉴진스의 전속계약을 해지시킬 의도로 뉴진스 멤버 부모들에게 하이브에 대한 항의 메일을 작성하도록 종용했다는 점을 주장했다. 이로 인해 가치가 크게 하락한 어도어를 민 대표가 헐값에 취득하려 한 것인 만큼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하이브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민희진이 뉴진스를 데리고 하이브의 지배 범위를 이탈하거나 하이브를 압박,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을 팔게 해 독립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면서도 “모색의 단계를 거쳐 구체적인 실행 행위까지 나아갔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이브’에 대한 배신적 행위가 될 수는 있겠지만 ‘어도어’에 대한 배임 행위가 된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어도어 대표이사인 민 대표가 어도어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거나 어도어 대표이사로서의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이상 하이브에겐 민 대표를 해임할 사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가처분 인용 결정은 현재 하이브가 민 대표 측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형사고발한 사건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가처분과 형사고발 두 사건에서 하이브 측이 주장한 내용과 증거자료 등이 거의 동일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가처분 결정 이후 새로운 배임 증거가 확보되지 않는 이상 고발 건 역시 무혐의로 종결될 여지가 있다. 하이브로서는 결국 상처만 남는 싸움이 되는 셈이다.
#하이브 측 이사진, 어도어 경영 손댈까
민희진 대표가 신청한 가처분의 대상이 민 대표 자신에게만 한정된 만큼, 이 사건 인용 결정 역시 민 대표에 한해서만 적용된다. 민 대표의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세종 측이 5월 30일 인용 결정이 나온 직후 공식입장을 내고 “민 대표에게 이사 해임의 사유가 없는 이상 민 대표 측 사내이사 두 명에게도 이사 해임의 사유가 없으므로 하이브가 위 이사들을 해임할 경우 이는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고 정당한 이유 없이 해임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음에도 하이브 측이 어도어 사내이사 두 명을 해임한 뒤 하이브 측 인사 세 명을 새로 선임했다. 하이브는 새 사내이사로 하이브 임원인 이재상 CSO(최고전략책임자), 김주영 CHRO(최고인사책임자), 이경준 CFO(최고재무책임자) 등을 선임했다.
이번 가처분으로 민 대표의 자리는 일단 유지됐지만 문제는 하이브 인사로 채워진 새로운 이사회에서 민 대표의 해임을 결의할 수 있다는 점이다. 5월 31일 민 대표의 두 번째 기자회견에 참석한 세종 측 이수균 변호사는 "이번 법원의 가처분 인용 결정 취지는 '민희진 대표이사의 해임 사유가 없다'는 것이므로 그 취지를 존중한다면 새로 선임된 하이브 측 이사들도 그런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법적으로는 그런 이사들의 의결권 행사를 강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저희가 여전히 불안한 상황에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짚었다.
여기서 어도어 측이 내세울 수 있는 무기는 하이브와 어도어의 주주 간 계약이다. 해당 계약에 하이브는 민 대표가 어도어의 대표이사로 5년간 재임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조항이 있고, 대표이사를 두 명 이상 선임할 수 있는 정관도 있지만 계약서 자체에 '어도어의 대표이사는 민희진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에 이 두 조항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다면 다시 또 가처분 소송부터 지난한 분쟁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소송전이 진행되는 긴 시간 동안 어도어는 물론, 하이브 역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이브 측 이사진이 민 대표의 해임 없이 당분간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면서도 어도어의 경영과 업무 전반에 지속적으로 어깃장을 놓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경우는 오히려 어도어에 대한 하이브의 배임이자 중대한 업무상 방해 행위로 판단될 수 있다. 민 대표에 따르면 뉴진스는 2025년에 있을 월드투어 준비를 위해 5월과 6월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새 싱글을 발매하는 한편 2024년 연말에도 새 앨범을 낼 계획이다. 민 대표는 "이번 분쟁 탓에 뉴진스의 내년 월드투어까지의 계획이 많이 딜레이되고 혼란스러워진 상태"라며 "대의적으로 어떤 것이 더 실익이고, 모두에게 더 좋은 방향인지 감정적인 부분을 다 내려놓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피’ ‘음반 밀어내기’…하이브가 넘어야 할 산
이번 분쟁은 하이브에게 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만큼 무엇보다 빠른 갈등 봉합을 통한 회복이 급선무로 보인다. 특히 가처분 인용 과정에서 앞서 민 대표 측이 이 사태의 시발점으로 지목했던 하이브 산하 레이블 빌리프랩(BELIFT LAB) 소속 신인 걸그룹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 하이브의 어도어에 대한 '음반 밀어내기' 등이 단순한 의혹이 아니라 일부 실재한다는 점이 인정되기까지 했다. '이미지가 전부'라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특성에 비춰본다면 하이브로서는 숫자로 표시할 수 없는 막대한 내상을 입은 셈이다.
반대로 이 문제를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해 온 민 대표의 행위는 어도어나 하이브, 빌리프랩에 손해를 끼친 행위가 아니라 뉴진스라는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어도어 대표이사'로서의 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판단됐다. 5월 22일 빌리프랩이 민 대표에 대해 업무방해 및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건 역시 이번 가처분 결정의 영향을 받는다면 무혐의로 종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 상황을 역전시킬 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이상 연전연패가 예고된 하이브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민 대표와의 '불편한 동거'를 이어나가면서 해임의 기회를 계속 엿볼 것인지, 아니면 전쟁을 이쯤에서 멈추고 공통된 대의를 바라볼 것인지가 전부다.
이날 민 대표는 두 번째 기자회견을 통해 하이브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였다. 그는 "어도어의 대표로서 뉴진스와 함께하기로 한 제 일련의 계획을 그대로 이뤄나가고 싶다. 그게 누구에게도 손해는 아닐 것"이라며 "내가 해임되고 뉴진스가 (활동 중단 후) 쉬게 되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 좋은 일일지 그걸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하이브 측은 이번 민 대표의 화해 제안에 대해 아직까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