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만 만나면 작아지는 박세웅…총체적 난국 나균안
#박세웅은 한화전이 문제
롯데의 '안경 에이스' 박세웅은 한화 이글스만 만나면 유독 작아진다. 지난 2015년 1군 데뷔 후 한화전 통산 17경기(선발 16경기)에서 80⅓이닝을 던졌는데, 1승 9패 평균자책점 8.51로 극심한 천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원정에선 더 심했다. 통산 10경기(48이닝)에 선발등판했지만 승리 없이 8패 평균자책점 9.00으로 난타당했다.
지난 5월 28일 대전 한화전에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박세웅은 이날 데뷔 후 한 경기 최다인 10점을 내주며 고개를 숙였다. 5월 16일 KT 위즈전에서 6이닝 무실점, 5월 22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8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던 흐름이 대전에서 한화를 만나면서 뚝 끊겼다.
초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4회까지는 2점만 내주면서 3-2 리드를 잡아 마침내 대전구장 징크스를 털어내는 듯했다. 그러나 선발승 요건을 앞둔 5회로 접어들자마자 갑자기 제구가 흔들리더니 슬라이더 투구를 고집하다 집중타를 맞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6안타 2볼넷 1사구로 8실점하면서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김태형 감독은 벤치에서 냉정하게 그 모습을 지켜봤다. 박세웅이 투구 수 100개를 넘겨 112개에 달할 때까지 마운드에서 내리지 않았다. 한화가 타자 일순하면서 5회 11번째 타자인 요나단 페라자가 안타를 때려내자 마지못해 투수 교체 사인을 냈다. 10실점 중 9점이 자책점이었던 박세웅의 평균자책점은 이 경기 후 3.59에서 4.62로 치솟았다.
김태형 감독은 5월 30일 취재진과 만나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박세웅의 문제점을 짚었다. 김 감독은 "5회까지 책임지고 내려오라는 의미로 내버려둬 봤다. 유독 대전구장에서 약하다고 이런저런 얘기가 많은데, (극복하라고) 팀의 에이스가 그러면 안 된다"며 "작년에는 (피하려는 건지) 아예 대전에서 안 던진 것 같더라. 나는 앞으로 대전 경기에 맞춰서 계속 (박세웅을) 올릴까 싶다"고 농담 섞인 아쉬움을 드러냈다.
실제로 박세웅은 롯데의 토종 에이스이자 국가대표급 오른손 선발 투수다. 특정 투수가 특정 팀 경기나 특정 구장에서 유독 약한 사례는 종종 보였지만, 이렇게 장기간 지속적으로 고전하는 건 유례를 찾아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박세웅이 롯데에서 선발 투수로 자리잡는 사이 한화는 꾸준히 하위권을 맴돌았고, 주전 타자들의 얼굴도 끊임없이 바뀌었다. 그런데도 박세웅은 10년 가까이 이어온 '한화 공포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팀도, 선수 자신도 한화전 등판을 꺼릴 수밖에 없다. 박세웅은 지난해에는 27경기에 선발 등판했지만, 한화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5월 18일 대전 한화전에 선발 등판할 차례가 왔는데, 래리 서튼 감독이 선발 로테이션을 바꿔서 박세웅의 대전 등판을 피했다. 그 경기에 대신 등판한 롯데 투수 한현희는 6이닝 무실점 호투로 팀의 7-3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이런 '배려' 혹은 '변칙'은 김태형 감독에겐 통하지 않는다. 박세웅이 롯데의 얼굴과도 같은 투수라 더 그렇다. 한 시즌에 팀당 16경기씩을 치르는데, 언제까지나 한화전을 피해가며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는 없다. 김 감독이 박세웅에게 강력한 '극복'을 주문한 이유다.
김 감독은 또 "직구가 맞으니까 마운드에서 변화구를 많이 썼는데, 너무 많이 (스트라이크존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런 모습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며 "슬라이더 비중이 너무 높았던 것도 이유를 모르겠다. 스트라이크존에 던져서 빠른 카운트에 결과를 봐야 하는데, 투구 수가 많아지고 카운트가 불리해지니 더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스스로 힘든 경기를 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부상으로 결장한 주전 포수 유강남 대신 백업 포수 손성빈과 호흡을 맞추는 변수가 있었지만, 김 감독은 이와 관련해서도 "물론 유강남이 박세웅의 투구 패턴과 스타일을 더 잘 알지만, 박세웅 정도 투수라면 포수 문제를 거론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본인이 포수를 끌고 가면서 리드해야 한다"고 책임감을 강조했다.
롯데는 올 시즌 한화와 10경기를 더 남겨두고 있다. 다음 맞대결은 6월 28~30일 홈 3연전이다. 대전에서는 비로 취소됐던 4월 3일 경기와 아직 미편성된 2경기를 포함해 총 3게임이 남아 있다. 김 감독이 정면 승부를 예고한 이상, 박세웅은 향후 로테이션이 맞아 떨어질 경우 다시 한화전에 나와 만회를 노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나균안은 총체적 난국
특정 경기가 문제인 박세웅과 달리, 나균안은 올 시즌 전반적인 부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11경기 성적이 1승 7패 평균자책점 8.27다.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투구 3자책점 이하)는 두 번뿐이었고, 5점 이상 허용한 경기가 여섯 번이나 됐다. 외국인 에이스 찰리 반즈가 내전근 부상으로 한 달가량 이탈한 롯데는 나균안의 호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5월 3일 삼성 라이온즈전(4이닝 5실점)-9일 한화전(3이닝 4실점)-18일 두산 베어스전(4⅓이닝 7실점)-24일 삼성전(4이닝 5실점)에서 잇달아 5회도 채우지 못하고 대량 실점하자 김태형 감독의 인내심도 바닥을 보였다. 김 감독은 결국 삼성전 다음 날인 5월 25일 "한 번 더 던지는 것을 지켜본 뒤 (선발 등판 지속 여부를) 판단하겠다"며 사실상의 최후 통첩을 날렸다. 그러나 나균안은 결국 그 기대에 완전히 어긋나는 피칭을 했다.
나균안은 5월 30일 대전 한화전에서 3⅓이닝 동안 6피안타 6볼넷 3탈삼진 7실점으로 부진했다. 나균안이 한화 타선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내려간 4회, 롯데는 한 이닝에 7점을 내주는 빅이닝을 허용하며 경기 흐름을 빼앗겼다. 결국 0-15라는 굴욕적인 스코어로 패하면서 주중 원정 3연전 스윕을 당해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균안은 지난해 23경기에서 130⅓이닝을 던지면서 6승 8패 평균자책점 3.80 탈삼진 114개로 활약했다. 롯데의 붙박이 선발 한 자리를 꿰찼고, 9월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에 뽑혀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당연히 롯데의 올 시즌 준비 과정에서 '계산이 서는' 선발 전력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그 후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정규시즌 개막 전 사생활 이슈에 휘말렸는데도 나균안에게 꾸준히 선발 기회를 줬던 김태형 감독조차 더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사실 김 감독은 최후 통첩 후에도 나균안을 향한 기대만은 버리지 않았다. 한화와의 주중 3연전 첫날이었던 5월 28일 경기를 앞두고 "나균안은 어쨌든 선발로 던져줘야 할 선수다. 한두 번 안 좋으면 더 부담을 갖고 던지다 경기가 더 꼬이는 것 같다"며 "30일 경기에선 초반에 점수를 줘도 5회까는 끌고 가겠다. 조금 더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균안은 4이닝을 채 버티지 못하고 0-5로 뒤진 4회 1사 2·3루에서 교체됐고, 불펜 한현희가 노시환에게 3점 홈런을 맞아 실점이 7점으로 불었다.
무엇보다 제구가 문제였다. 직전 등판인 삼성전에서 4이닝 동안 볼넷 7개를 내줬는데, 이날도 볼넷이 6개로 비슷했다. 투구 수 90개 중 스트라이크(46개)와 볼(44개) 비율이 거의 비슷할 정도였다. 실제로 나균안의 9이닝당 볼넷 수는 지난해 2.9개에서 올해 5.7개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평균자책점은 7.49에서 8.27로 치솟아 5월까지 40이닝 이상 던진 10개 구단 투수 38명 중 가장 높았다.
김 감독은 결국 다음 날 나균안을 2군으로 보냈다. 이어 "나균안은 자꾸 경기 초반에 점수를 준다. 정면 승부를 하면 (안타를) 맞고, 유인구를 던지면 볼넷이 된다"며 "범타가 나와 흐름이 끊어지면 좋은데, 좀 더 어렵게 승부하려다 타자들이 볼을 골라내 결국 수 싸움에서 지고 들어간다"고 지적했다. 또 "나균안은 구속으로 압도하기보다 공의 움직임 등을 살려 타자와 승부하는 투수인데, 그런 결과로는 감독이 계속 쓰기 힘들다"며 "2군에서 더 정비를 하고 올라오면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