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급력·화제성 올킬한 ‘2024년의 남자’…“선재는 저에게 특별해, 빨리 보내주기 싫어”
“아무래도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제 주변에서 계속 일어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웃음). 얼마 전엔 뉴욕 타임스퀘어에 제 사진이 걸리기도 하고, 음원 차트에 이클립스(‘선재 업고 튀어’에서 선재가 속한 톱밴드)의 곡들이 올라오는 걸 봤거든요. ‘합성한 건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웃음). 사실 저는 이런 순간을 항상 바라왔고 꿈꿔왔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이게 진짜가 맞다고?’라는 생각이 오히려 더 많이 들더라고요. 그만큼 정말 비현실적인 느낌이에요. 어리둥절하고, 또 신기해요(웃음).”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변우석은 ‘선재 업고 튀어’ 이후 가장 체감되는 내면의 변화로 자신감의 상승을 꼽았다. 2016년부터 8년 동안 배우 활동을 하며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선재 업고 튀어’ 이후로는 그 사랑에 소심해질 구석이 없어졌다는 게 달라진 지점이라고. 변우석이란 이름보다 극 중 배역 이름인 ‘류선재’로 불리는 일이 조금 더 많아지다 보니 “변우석은 몰라도 류선재는 알아주실 것”이란 자신감이 생겨 사람들에게도 먼저 성큼 다가갈 수 있게 됐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예전엔 그럴 용기가 없었어요. 제가 먼저 다가갔는데 사람들이 ‘어어’ 하면서 피하실 수도 있고 당황하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많이 쭈뼛거렸거든요. 떠올려 보면 그때는 제가 자신감도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만일 제가 먼저 다가갔는데 상대분이 ‘저 키 큰 친구는 누구야’ 하시면 어떡하나 걱정됐거든요(웃음). 그렇다고 지금은 제가 막 ‘다들 내가 누군지 알겠지?’라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건 아니고요, 많은 분들이 먼저 제게 ‘선재야’라고 불러주셨기 때문에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웃음).”
‘선재 업고 튀어’에서 변우석이 연기한 류선재는 주인공 임솔(김혜윤 분)과는 또 다른 결의 순애보를 보여주며 절절한 사랑을 그려냈다. 현재의 시간 선에서 선재는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서 있는 톱밴드 이클립스의 보컬이자 솔이의 영원한 ‘최애’이며, 삶의 은인이고, 과거로 돌아간 2008년에선 반대로 솔이를 자신의 첫사랑으로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지낸 순정 소년이다. 어떤 시간에서 어떤 미래를 맞닥뜨리더라도 서로를 가슴 저리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애틋한 이야기는 변우석의 심장에도 묵직한 충격을 주었다고 했다.
“대본을 받자마자 ‘이 작품 무조건 해야겠다, 난 무조건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한 달 넘게 저희 회사 이사님께 ‘선업튀 (캐스팅) 어떻게 되고 있어요?’ 하고 매일매일 물어보기도 했고요. 그만큼 작품에 아예 꽂혀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이 제게 온 건 정말 행운인 거죠. 대본을 읽을 때도 ‘이 작품을 내게 주셨다고?’ 믿기지가 않더라고요. 제작까지 우여곡절도 많았고, 다른 배우들에게도 콘택트가 들어갔는데 저에게까지 오게 된 순간을 생각해 보면 정말 저는 운이 좋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웃음).”
이야기의 초반 빌드업이 고정 시청층을 잡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로맨스의 특성상, 과거로 돌아간 솔선재 커플의 풋풋한 10대 시절을 먼저 보여준 것도 ‘선재 업고 튀어’의 화제몰이에 큰 몫을 해냈다. 특히 모델 출신 변우석의 190cm에 육박하는 길쭉한 기럭지가 160cm를 조금 넘는 김혜윤과 설레는 키 차이를 만들어내며 그저 둘이 함께 서 있기만 해도 설레는 케미스트리를 완성해 냈다는 극호평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여성들의 죽어버린 연애 세포에 불을 지핀 기럭지를 만들어낸 비결로 ‘김치, 우유, 텐○(아동용 영양제)’ 등을 꼽은 변우석은 케미스트리의 공을 김혜윤에게 돌리며 웃음 지었다.
“어떤 분은 ‘선재와 솔이가 키 차이가 많이 나서 보기 좋다’고 하시는가 하면, 또 다른 분은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것 같다’며 안 좋게 보시는 분도 계셨어요. 보는 시선에 따라 반응이 조금 달랐던 것 같기도 해요. 연기할 땐 아무래도 서로 시선을 주고받아야 하는 순간들이 있어서 제가 다리를 벌리고 몸을 굽혀서 키를 조절할 때도 있었고, 혜윤이가 받침대 위에 올라갈 때도 있었죠(웃음). 그런데 단순히 키 차이가 많이 났다는 것만으로 촬영할 때 감정이 극대화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저 저희가 각자 선재와 솔이의 입장에서 몰입해서 연기했기 때문에 그런 (로맨스) 신들이 더 잘 나오지 않았나 싶죠.”
변우석이 류선재였기에 가능했던 비현실적인 로맨스에 리얼리티를 한 스푼 더한 것이 김혜윤의 임솔이었다. 변우석을 놓고 “선재 그 자체인 것처럼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는 김혜윤의 칭찬에 뿌듯함과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변우석도 김혜윤을 향해 “제가 선재로서 연기할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며 ‘칭찬 품앗이’를 이어나갔다.
“저는 혜윤이가 제게 주는 솔이의 감정이 너무 좋았어요. 그것에 맞춰서 선재로서 연기하면 충분히 함께 마주할 수 있는 감정들이 나왔거든요. 저희는 ‘전지적 짝사랑 시점’이란 웹드라마를 같이 찍으면서 딱 한 번 봤었는데요, 이번 작품에선 고교시절을 먼저 촬영하다가 그 풋풋한 배경에서 서로 장난을 치다 보니 빨리 친해지게 됐어요. 혜윤이의 첫인상을 설명하자면 밝고 기분 좋고, 한편으론 불편한데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제가 처음 만난 사람한테 바로 편안해 하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혜윤이랑은 함께 촬영하면서 너무 편해졌거든요(웃음).”
선재는 솔이를 향해, 솔이는 선재를 향해 세상 그 무엇도 아깝거나 아쉽지 않을 만큼 커다란 애정을 쏟아붓는다. 조건 없이 무한정 샘솟기만 하는 이런 사랑은 부모님과 자식, 그리고 연예인과 그 팬들 사이에서나 볼 수 있는 독특한 감정의 형태다. 최근 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 한복판에 서 있는 변우석에겐 이런 애정들이 전보다 좀 더 절절하게 느껴지고 있다고 했다.
“저는 그 감정이 엄청 특이하고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만나서 피부를 맞닿아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멀리서 제 모습을 보고 좋아해 주시는 감정들이잖아요. 그런 쉽지 않은 애정을 보여주시니 그분들이 ‘선재야’ ‘우석아’하고 저를 불러주실 때마다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이렇게 조건 없이 누군가에게 모든 감정을 주고 그를 좋아해 줄 수 있다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니까요. 어떻게 그렇게까지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 그런 걸 생각하면 정말 소중한 감정인 것 같아요.”
종영한 뒤까지도 ‘류선재’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변우석에게 누군가는 변우석 아닌 류선재라는 이름표가 생각보다 더 길게 그의 뒤에 따라 붙을 것을 걱정했다. 하나의 캐릭터로 이토록 깊은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모든 배우에게 꿈같은 일이지만, 동시에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그들의 발목을 무겁게 만드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류선재보단 배우 변우석으로 ‘선재 업고 튀어’ 이후의 삶을 그려나가야 할 그에게도 아직은 이를 수 있지만, 한 번쯤 깊게 고민해 볼만 한 지점이지 않을까.
“제가 연기한 모든 캐릭터들은 계속해서 제 인생과 함께 하는, 마치 한 권의 책을 이루는 페이지 같다고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선재는 더 특별하게 느껴지고요. 저는 사실 연기했던 캐릭터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 편이지만, 다들 선재를 이렇게 좋아해 주시는데도 ‘다음 작품을 위해 빨리 선재를 보내야 해’하는 건 싫어요. 저는 대본을 읽고 연기하는 순간부터 선재를 너무 사랑했거든요. 그래서 더 특별하고, 또 더 보내주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사람들이 계속 나를 선재로만 불러주면, 선재로만 봐주면 어떡하지’하고 조바심 내며 걱정하는 것보단 제가 계속해왔던 것처럼, 꾸준히 제 단점을 보완하면서 다음 스텝으로 향하는 게 앞으로의 변우석의 삶이자 배우로서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