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연임 포석 ‘당원권 강화’ 친명계서도 문제제기…“이낙연 아닌 ‘문재인의 길’ 벤치마킹 해야”
5월 30일 민주당은 22대 국회 첫 의원총회에서 당원권 강화를 위한 당헌·당규 개정안을 띄웠다. 국회의장단과 원내대표 경선에서 권리당원 투표를 20% 반영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 대표적이다. 전국대의원대회 명칭을 전국당원대회로 일괄 개정하고, 시·도당위원장 선출 시에도 대의원 권리당원 비율을 20 대 1 미만으로 하는 안건도 담겼다. 중앙당 전담 부서에는 주권국을 설치해 당원 중심 정당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대선 출마 1년 전 당대표 사퇴 조항까지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당대표나 최고위원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선거 1년 전 사퇴하도록 한 현행 당헌·당규에 ‘상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사퇴 시점을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붙이겠다는 것이다. 8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당대표는 2027년 3월 대선에 출마하려면 2026년 3월까지 물러나야 하는데, 친명계는 당대표 없이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부정부패로 기소되면 직무가 정지되는 규정을 삭제하는 것도 검토한다.
정가에선 이재명 대표 연임과 차기 대권 가도를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 연임이 유력시되는 이 대표가 지방선거 공천권까지 행사하고, 대선 후보 경선 직전까지 당대표로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친명계 한 의원은 “개헌이나 탄핵 등으로 인해 대선 시기가 2027년 3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개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친명계에서조차 이에 대한 반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친명계 한 핵심 의원은 당헌·당규 개정안 보고에 대해 “의원들의 의견을 더 들어봐야 할 사안이다. 이렇게 보고만 하고 넘어가선 안 된다”며 의총에서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의원은 이재명 대표 핵심 측근 그룹 ‘7인회’ 출신이다. 또 다른 재선 의원도 “개인 의원들의 의견을 추후에 어떻게 받을 것이냐”고 따져 물으며 충분한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5월 30일 친명계 좌장 정성호 민주당 의원도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민주당의 국회의원들이 당원들만의 대표가 아니다”라며 “당원들의 의사가 당의 의사 결정 과정에 반영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국회의원들은 당원들의 대표, 정당의 대표도 되겠지만 기본적으로 국민의 대표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민주당 한 의원은 “1년 전 당대표 사퇴 규정은 대선 경선 공정성 확보를 위해 만들어졌다. 지방선거 3개월 전에 당대표를 사퇴하면 지장이 있다는 친명계 주장에 동의 안 된다”며 “국회의장과 원내대표는 그야말로 의원들 대표다. 당원 투표를 반영하겠다는 건 의원들이 뽑는 걸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뜻인가. 국회의원이라면 당연히 문제의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20%라는 비율이 터무니없이 높다. 당원들 의견은 한쪽으로 쏠리기 때문에 포퓰리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반발이 나오자 이재명 대표는 선수별 의원 간담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민주당은 당초 의총에서 개정안을 보고한 뒤 6월 3일 당무위원회와 중앙위원회를 차례로 열어 신속하게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었다. 당헌·당규 개정 TF 단장인 장경태 최고위원은 6월 3일 당무위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나 “오늘 당무위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좋겠다고 제안했지만, 이 대표가 조금 더 의견을 수렴하고 경청하겠다고 해서 미뤄졌다”고 말했다.
6월 3일 이재명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과 관련한 의견을 듣고자 5선 의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김태년 박지원 안규백 윤호중 정동영 정성호 의원이 참석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엔 4선 의원들과 만찬을 했고, 초선∼3선 의원들과도 간담회를 해 추가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6월 5일에는 국회의원·원외 지역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당헌 당규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오찬에 참석했던 한 중진 의원은 “당원들 의사가 당의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부분엔 다들 공감했다”며 “다만 어떻게 소통구조를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원내대표는 당을 대표하니까 당원들이 참여해도 괜찮지만, 국회의장은 여야 국회의원을 대표하는 자리다. 이 대표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진 의원은 “당대표가 지방선거 공천권을 행사한 뒤 사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1년 전 사퇴는 그대로 있다고 설명을 들었다. 개헌 등으로 대선 시기가 앞당겨지는 그런 특수한 부분을 위한 조항이라고 한다”며 “당원 투표를 반영하는 것에 대해선 찬성, 반대 등 여러 의견이 나왔다. 다만 원내대표와 국회의장단 경선 과정에서 당원 지지를 받기 위해서 선거 운동하다 보면 중도층 국민께서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들이 나왔다”고 말했다.
여론은 이재명 대표 연임에 호의적이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5월 27~2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이재명 대표 연임의 적절성 여부를 조사한 결과, ‘부적절하다’는 응답은 49%, ‘적절하다’는 39%로 각각 집계됐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층(없음·모름·무응답 포함)에선 50%가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적절하다’는 응답이 77%에 달했다. 당심과 중도층 간에 괴리감이 상당했다(여론조사 자세한 내용은 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럼에도 당 지도부는 여전히 연임을 강조하고 있다. 6월 4일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이재명 대표가 연임하는 것이 정권 탈환의 지름길”이라며 “나는 (이 대표에게 당대표직을) 연임하시라. 또 대선주자로서 당대표를 겸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라고 밝혔다.
정가 일각에선 이재명 대표가 ‘이낙연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는 문재인 정부 시절 ‘어대낙’(어차피 대통령 후보는 이낙연) 바람을 일으키며 유력 차기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이낙연 대세론 장기화는 피로감으로 이어졌고, 결국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대표에게 대선 후보 자리를 내줬다. 이 대표가 2016년 20대 총선을 승리로 이끈 뒤 이듬해 대권 재도전에 성공한 ‘문재인의 길’을 따라야 한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권에 도전하지 않고 ‘친문’ 지도부 체제를 탄생시켰고, 2017년 대선에서 당선되는 데 성공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재명 대표가 연임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우선 이재명 대표 피로감이 너무 크다”며 “이번 총선도 이 대표가 잘해서 이긴 것 아니다. 그런데 또 연임한다면 국민들 기절할 것이다. 그런 최악의 판단을 하지 않을 것이다. 또 윤석열 대통령 임기 말로 접어드는 22대 국회는 험악할 수밖에 없다.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무차별 공방전 중심에 서게 된다. 대선 이미지에 먹칠할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영순위 차기 대권 주자다. 한발 물러나 있다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들 부름에 나타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국민적 눈높이다. 이걸 거부하면 역풍 맞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