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부당한 유인” vs 첸백시 “불공정 계약” 맞서…엔터사와 아티스트 간 ‘템퍼링 논란’ 부각
최근 SM 소속이던 엑소(EXO)의 서브그룹인 '첸백시'의 활동 중단 사태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첸백시는 엑소의 첫 번째 유닛그룹으로 2016년 결성됐다.
SM과 첸백시의 갈등은 2023년 6월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났다. 첸백시는 법률대리인을 통해 정산 자료 사본 미제공, 부당한 장기계약 체결 유도 등을 근거로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당시 SM은 모든 정산은 투명하게 이뤄졌으며 전속계약 역시 아티스트 자유 의지로 체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제3의 외부 세력 개입을 의심했다.
지난 10일 SM은 입장문을 통해 “당사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접근한 MC몽, 차가원 측의 부당한 유인(템퍼링)”이라고 했다. 또 오래전부터 MC몽, 차가원 회장 측이 SM과 전속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돼 있는 여러 아티스트들에게 접근해 왔다고 지적했다. 첸백시 소속사 아이앤비100(INB100)은 SM의 주장에 대해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라며 민·형사상 책임을 추궁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날을 세워 향후 양측 갈등은 격화될 전망이다.
템퍼링이란 특정 소속사에 속한 아티스트를 다른 소속사나 개인이 불법적으로 유인해 기존 계약을 위반하게 만드는 행위다. 엔터 산업에서 템퍼링 논란은 꾸준히 발생해왔다. 소속 아티스트가 엔터사의 핵심 자산이기 때문에 템퍼링은 엔터 산업의 리스크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 사태는 가장 크게 주목받은 템퍼링 논란의 대표 사례다. 여성 4인조 아이돌그룹 ‘피프티 피프티’ 멤버들은 정산 미집행 등을 이유로 소속사 어트랙트에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어트랙트는 멤버들을 빼가려는 배후 세력의 농간이라며 맞섰다.
어트랙트 측은 멤버들의 갑작스러운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제기의 배경을 외부 세력의 템퍼링 시도라고 주장했다. 템퍼링 사태의 배경으로 지목된 것은 외주용역업체 ‘더기버스’였다. 당시 더기버스 측과 피프티 피프티 멤버들은 소속사와 신뢰 관계 파탄이 가장 큰 이유라고 맞서며 법정 싸움으로 번졌다. 하지만 이후 멤버 중 한 명이 “피프티 피프티와 어트랙트를 이간질했다”는 사실과 “외주 프로듀서가 전속계약 소송을 제안했다”고 폭로하며 템퍼링 의혹은 사실로 판명났다.
얼마 전 엔터사 하이브와 그 레이블인 어도어의 민희진 CEO 간 갈등도 비슷한 양상이다. 하이브 측은 '민희진 대표가 뉴진스를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고 주장했고, 민 대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엔터 산업에서 ‘템퍼링’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는 이를 규제하거나 금지할 방법이 없어서다. 외부 세력의 개입을 공식적으로 입증하기 까다롭다. 템퍼링은 주로 대화나 문자, 입금 내역 등으로 확인할 수 있기에 외부 세력이나 아티스트의 불리한 증거를 확보할 가능성은 낮다.
템퍼링은 엔터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꼽힌다. 다른 산업은 핵심 자산을 저작권이나 특허권 등록 등의 방식으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지만 엔터 산업은 핵심 자산인 소속 아티스트를 소유할 수 없다. 계약을 통해 일시적인 권리를 주장할 뿐인데, 계약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소속사나 아티스트가 계약 파기로 보상해야 할 책임은 2017년 이전만큼 크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만든 ‘전속계약 표준계약서’에 따르면 엔터사와 아티스트가 계약을 파기할 경우 물어야 할 위약금이 2017년 개정 이후로 대폭 감소했다.
김정섭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대학원 교수는 “아티스트는 움직이는 상품이어서 어떤 상황이든 아티스트 본인이 금전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취할 수 있거나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면 계약을 바꿀 수 있다”며 “결국 돈을 비롯한 개인적 욕망 때문에 사건들이 터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엔터사와 아티스트 사이에 신의 성실의 원칙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김정섭 교수는 “욕망보다 신뢰가 우선”이라며 “계약은 신의 성실의 원칙으로 상호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보연 기자 by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