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포석 ‘당헌·당규 개정’ 찐명 몇몇 반대 불구 강행…이 대표 측근 쓴소리 ‘레드팀’ 역할 해석도
더불어민주당이 6월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헌·당규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어 12일 비공개 당무위원회의를 열어 이를 가결했다. 6월 17일 열릴 중앙위원회에서 의결되면 최종 확정된다.
현행 당헌에서는 당대표 및 최고위원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선거일 1년 전 사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엔 당대표 및 최고위원 사퇴 시한과 관련, ‘상당하거나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당무위원회가 결정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넣었다. 사퇴 시점을 조정할 수 있는 당무위 의장은 당대표가 맡고 있다.
6월 10일 최고위는 당직자가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 등 부정부패 관련 혐의로 기소되면 사무총장이 그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한 당헌도 폐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국회의장 후보 및 원내대표 경선에 권리당원 표 20%를 반영하는 등 권리당원 권한 강화 당규 조항도 반영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이재명 대표의 ‘일극체제’가 공고해졌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도 사실상 마음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당대표를 계속 이어갈 생각이 없다면 당헌·당규 개정에 무리해서 나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번 개정을 두고 ‘이재명 대권 맞춤형’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당대표 선거 1년 전 사퇴시한 예외조항’ 당헌 개정이 가장 큰 논란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대통령 궐위와 같은 비상상황 발생 시에 대한 규정이 없어 이를 보완하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대표직 연임, 더 나아가 대권가도를 뒷받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현행 당헌대로라면 이 대표가 오는 8월 당대표 연임하더라도 차기 대선을 1년 남겨둔 2026년 3월 전에 사퇴해야 한다. 그런데 당헌이 개정되면 2026년 6월 열리는 지방선거에서 공천권을 행사한 후 차기 대선 선거대책위원회가 꾸려질 시점에 대표직에서 물러날 수 있다.
친명계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원조 친명’ 의원들이 먼저 나섰다. 김영진 의원은 ‘충치론’을 내며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헌 개정에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김 의원은 6월 7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것(당헌·당규 개정)은 이 대표의 대선 승리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민주당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아주 나쁜 길이다. 이 대표가 계속 설탕만 먹고 있다면 이빨이 다 썩을 수 있다. 이빨이 썩으면 나중에 못 싸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민주당은 유능하고 유연한 정당이라서 현재 있는 조항으로도 상당하고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최고위와 당무위 의결로 (당대표 사퇴시한 예외) 정할 수 있다”며 “이런 의결에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굳이 왜 이런 조항을 만들까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탐대실”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좌장’ 정성호 의원 역시 1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당헌·당규 개정에 “굳이 손 볼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다. 아주 특별한 예외 사정을 감안해서 규정을 둔 것 같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지 않겠나”라며 걱정했다. 무게감 있는 친명 의원들이 연이어 이 대표를 염두에 둔 비판에 나선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이 대표가 당헌·당규 개정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는 말도 전해졌다. 6월 7일 심야 최고위와 12일 당무위에서 “자칫 대권가도를 위한 조치로 오해받을 수 있다”며 “당대표 사퇴시한에 대한 개정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그러자 이번엔 친명 지도부가 이 대표 대신 앞장서 총대를 멨다. 정청래 최고위원과 당헌·당규 개정 TF 단장을 역임한 장경태 최고위원 등이 TF 개정시안에 포함된 ‘전국 단위 선거’ ‘대통령 궐위’ ‘대선 일정 변경’ 등 구체적 문구를 뺀 수정안으로 설득하면서 의결을 밀어붙였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당무위를 끝내고 “이 대표가 너무 반대를 많이 해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며 “당헌 개정이 이 대표를 위한 게 아니다. 예외조항이 없어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가 너무 반대하기에 ‘욕을 먹더라도 일찍 먹는 게 낫고 매를 맞더라도 일찍 맞는 게 낫다. 그냥 욕먹으시라’고 했다”며 “이 대표가 너무 착하다. 나보다 더 착하다”고 옹호했다.
이런 양상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친명계가 분화 양상을 겪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표의 초기 측근그룹 ‘7인회’ 중 정성호 김영진 문진석 의원만이 22대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들은 현재 주요 당직을 맡고 있지 않다.
김영진 의원은 앞서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 대표와 내 관계는 상하관계, 충성과 복종의 관계가 아니다. 나는 내 정치적 방향과 가치가 이 대표와 같고, 그가 도움을 필요로 했기에 도와드린 것”이라며 “올바르지 않은 방향에 동의할 생각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 의원은 앞서 2022년 이 대표가 대선에서 패배한 후 3개월 만에 인천 계양을 재보궐 선거 출마, 전당대회 당대표 도전할 때도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이 대표와 김 의원 관계가 한때 멀어졌다는 말까지 나왔다.
7인회 등 원조 친명을 대신해 박찬대 원내대표와 정청래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가 최측근 그룹으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당 안팎에서는 현재 ‘이재명의 복심’은 박찬대 원내대표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 원내대표가 22대 국회 민주당 첫 원내대표에 추대 형식으로 선출된 것도 이 대표의 의중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대표적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 출신인 의원들도 친명 실세로 꼽힌다. 더민주혁신회의는 22대 총선에서 김우영 박균택 김현 김현정 황명선 등 31명의 의원을 배출하며 민주당 내 최대 조직으로 급부상했다. 6월 2일 열린 2기 출범식 및 전국대회에서는 1000여 명의 당원들과 박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더민주혁신회의는 당원 주권 강화론을 주장했고, 실제 이재명 지도부는 당원권 강화를 위한 당헌·당규 개정에 들어갔다.
하지만 친명계 내부 갈등 및 분화 해석에 대해 정성호 의원은 앞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민주당이 건강하다는 증표”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김영진 의원이나 나는 과거에도 늘 쓴소리를 해왔다”며 “이재명 대표와 가깝다고 하는 의원들이 다른 의견도 내고 하는 것이 민주적 정당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원조 친명 의원들이 여전히 당내에서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는 반론도 있다. 경기지역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에 경기도를 지역구로 둔 의원들 사이에서 김영진 의원은 가장 존재감이 큰 의원 중 한 명이다. ‘인천에 박찬대, 경기도에 김영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이 대표가 그만큼 여전히 신뢰하고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성호 김영진 의원 등이 쓴소리를 통해 내부 견제기능을 하는 이른바 레드팀(조직 내 전략의 취약점을 발견해 공격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팀)이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는다. 더민주혁신회의 소속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정성호 김영진 의원의 반대 입장은 순전히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충심이다. 쓴소리를 해야 당내 균형이 잡힌다는 것이다. 이들의 모든 관심은 차기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하고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에 쏠려 있다”며 “이 대표 역시 이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계속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로 굳건히 이해하는 관계”라고 전했다.
원조 친명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헌·당규 개정을 통한 ‘이재명 철옹성’ 구축을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것이 이 대표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 대표를 향한 사정기관의 ‘사법리스크’ 압박이 더욱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21대 국회 때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던 트라우마도 자연스럽게 따라 붙는다.
이런 상황에서 당권을 강하게 쥐고 있어야 차기 대선에 도전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야권 한 관계자는 “검찰은 이 대표를 사법처리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 살 방법은 사실상 대통령이 되는 수밖에 없다. 이에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민주당 한 재선 의원도 이렇게 설명했다.
“체포동의안 가결, 총선 공천 때의 반발 등 이 대표가 당 내홍으로 얼마나 많은 곤욕을 치렀느냐. 자신을 향한 사법리스크가 커질수록 당 내부의 비토가 커진다는 것을 그때 몸소 체험했다. 여전히 많은 인사들이 이 대표가 타격 받기를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다. 이 대표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무엇보다 확실한 당 장악이다. 그 어떤 위기라도 대선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말이다.”
6월 12일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서현욱)는 이 대표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외국환거래법 위반,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번 추가 기소로 이 대표는 총 4개 재판을 동시에 받게 됐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 관련 개발비리 및 성남 FC 불법후원금 사건 △공직선거법 위반 △검사 사칭 사건 관련 위증교사 혐의 등 3건이 진행되고 있다. 수원지법에서 대북송금 사건 관련 제3자 뇌물 혐의 재판이 열리면 이 대표는 당대표직을 연임한다는 가정 하에 당대표직을 수행하면서, 서울중앙지법과 수원지법을 번갈아 가며 출석해야 하는 부담감을 갖게 됐다(관련기사 4개의 공판시계 돈다…새로운 국면 접어든 이재명 사법리스크).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에 기소된 대북송금 사건은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신준우)에 배당됐다. 앞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유죄를 인정해 징역 9년 6월의 중형을 선고한 재판부다. 앞서 민주당은 이 전 부지사에 대한 재판부 선고에 대해 “검찰이 자행한 조작 수사가 점차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검찰의 주장을 상당 부분 채택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