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과 대학 반발에 의대 증원은 일단 멈춤…‘무전공 확대’ 인문계열 재학생 반발에 곳곳 철회
수시 모집요강 발표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음에도 불확실한 의과대학 증원 규모, 무전공 선발 확대로 인한 학과 통폐합 등 정부의 잦은 정책 변화로 대학 입시를 앞둔 수험생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의대 증원 규모, 법원과 대학 반발에 제동 걸려
교육계에 따르면 4월 30일 각 대학은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이 늘어난 32개 의대 가운데 의학전문대학원인 차의과대를 제외한 31개교가 내년도 모집 인원을 결정해 대학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 사항을 제출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9개 지방 거점 국립대는 증원분의 50%씩 줄여 모집하기로 했고, 사립대는 대부분은 100%를 다 채워 모집하기로 했다. 일부 대학에서 인원을 줄였지만 10~20명 정도다. 정원 규모를 밝히지 않은 사립대가 증원 100%를 채운다고 가정하면 2025학년도 입시에서 확대된 최종 증원 규모는 대략 1509명이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 증원 규모가 확정됐지만 이마저도 최종안은 아니다. 법원과 대학에서 연이어 제동을 걸었다. 서울고법은 같은 날 의대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에서 정부에 “의대 증원 방침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라”며 “법원 결정 전에는 최종 승인이 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법적 구속력까지는 없지만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어 근거를 보고 오는 5월 13~18일에 가처분 인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도 했다.
5월 8일에는 각 대학에서 연이어 학칙 개정 부결 소식이 전해졌다. 7일 부산대에 이어 8일 제주대와 강원대에서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학칙 개정에 실패했다. 학칙 개정은 각 학교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대학평의원회와 교무회의 혹은 교수평의회 등을 거쳐 총장이 확정한다. 부산대는 교무회의에서 부결이 결정된 것으로 확인됐고, 제주대의 경우 규정심의위원회, 학무회, 교수평의회와 대학평의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교수평의회에서 부결로 결론이 났다. 교육부에 따르면 32개교 가운데 현재 20개교에서 학칙 개정이 진행 중이다.
이처럼 연일 삐끗하는 증원 정책에도 정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법원의 제동에 대해서는 일단 근거 자료를 확보해 소명하겠다고 했다. 한편 학칙 개정이 부결된 각 학교에는 “학칙 변경을 부결하면 시정명령 및 행정조치를 하겠다”며 강경 대응했다.
하지만 당장 수시 요강 발표까지 한 달, 모집까지는 두 달을 앞둔 학교와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수험생들은 혼란에 빠졌다. 대치동의 한 입시 전문 강사는 “2023년 10월부터 입시 정책이 하도 많이 바뀌어서 수험생들에게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일단 열심히 하라’는 말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큰 타격이 없을지라도 그 바로 아래 상위권 학생들은 의대 지원 여부가 달린 문제라 다들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십억 지원금에 사라지는 인문학과
2025학년도부터 확대되는 ‘무전공 학부 확대’도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앞서 교육부는 2024년 1월 ‘2024년 대학혁신지원사업 및 국립대학육성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수도권대 51개교와 주요 국립대 22개교를 대상으로 무전공 신입생을 20~25% 이상 받은 학교에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무전공 입학은 전공을 선택하지 않고 입학한 뒤 의대나 사범대를 제외한 어떤 전공이든 수강하다가 2, 3학년 때 학과를 결정하는 제도다.
문제는 이 정책이 교육부에 의해 떠밀리듯 이뤄졌다는 것이다. 대학이 입시 전형을 수정해 무전공 전형을 확대하려면 상당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특히 기존에 무전공 학부가 없던 학교의 경우 다른 학부에서 해당 인원만큼 정원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더 촘촘한 계획이 필요하다.
대학 교수들 사이에서는 무전공 확대 정책이 기초학문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학생들이 취업에 유리한 학과만을 선택하면서 특정 학과로의 쏠림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교육부가 연구 용역을 맡긴 무전공 확대 정책의 기대효과에 대한 보고서는 아직 결과조차 나오지 않았다.
각 대학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교육부는 인센티브제에서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한발 물러섰다. 모집 비율에 따라 가산점을 차등 부여하고 사업비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수도권 사립대의 경우 S등급(가중치 1.6)을 받은 대학은 60억 3200만 원, A등급(1.3)은 49억 100만 원, B등급(1.0)은 37억 7000만 원, C등급(0.7)은 26억 3900만 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는다.
국립대는 S등급에 148억 원, A등급에 120억 2500만 원, B등급에 92억 5800만 원, C등급에 64억 9600만 원의 사업비가 지원된다. 선택이라고 하지만 언제나 재정 부족에 시달리는 대학 입장에서는 수십억 원의 지원금을 무시할 수도 없어 사실상 강제나 다름없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건국대, 한양대 등 상당수의 대학은 무전공 신입생 확대 방침을 밝혔고 명지대와 덕성여대, 경기대는 이미 인문계열의 학과 통폐합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어느 학과의 정원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과가 통합되면 폐과 학생은 어떻게 되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을 밝힌 학교는 많지 않았다.
한순간에 학과를 잃게 된 학생들은 반발했다. 308명 규모의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하기로 한 건국대에서는 최근 학생들이 12개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면서 본부를 점거했다. 재학생 A 씨는 “학기 중인데 당장 내년부터 학과가 사라지는 것이 말이 되냐”고 분노했다. 조재희 건국대 총학생회장은 “학생들에게 통보식의 형태로 합의 없이 학과가 개편됐다”며 “학교는 최소 8년은 학과가 유지될 것이라고 했지만 신입생이 없으면 재학생이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교들은 무전공 선발 계획을 검토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서울대는 무전공 선발 인원을 400명까지 늘리겠다고 했으나 최근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중앙대 역시 무전공 선발 확대를 계획했다가 철회했다.
현장의 교사와 강사들은 교육부의 잦은 정책 변화가 수험생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대 증원은 소수 학생들의 문제라고 해도 무전공 확대는 모든 입시생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9년 차 입시 컨설턴트는 “2023년에는 킬러문항 배제라는 폭탄을 던지더니 2024년은 더 심하다”며 “기존에 자유전공이 없던 대학은 전년도 입결도 없어 비교군도 없는 데다 학과를 신설하기 위해서는 다른 과에서 정원을 빼와야 하는데 여러 과가 섞이면 평균 입결을 내기도 힘들어진다”고 지적했다.
내년 수능을 치를 고2 학생들 상황도 좋지 않다. 2026학년도 무전공 선발 인원이 발표됐지만 올해 규모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2026학년도 모집 인원은 더 불확실한 까닭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2025학년도 전형계획은 현재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고, 2026학년도는 추후 큰 폭으로 변경될 수 있어 현재로선 고3, 고2 모두 구체적 정보가 없는 상태”라며 “수험생 입장에서는 입시전략 수립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의대 증원 규모와 무전공 확대 정책 모두 5월 안으로 확정될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5월 말까지는 ‘2025학년도 모집요강’을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5월 말 전후로 무전공 선발 계획에 대한 현황도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