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교환에 공개 러브콜 ‘첫 만남’ 성사, 촬영 2년 지났지만 아직도 설레…“스스로를 후회없이 내던진 작품”
‘소원성취’를 축하한다는 인사에 고개를 떨군 채 크게 웃음을 터뜨린 배우 이제훈(40)은 그가 공개적인 ‘러브콜’을 보냈던 당사자이자 이번 작품의 상대역인 배우 구교환(42)을 놓고 끊임없는 칭찬을 신나게 이어나갔다. 7월 3일 개봉 예정인 영화 ‘탈주’는 이제훈의 러브콜 직후 성사된 두 사람의 첫 작품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늘 원해왔던 상대와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는 게 촬영이 끝난 지 2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제훈에겐 가슴 울렁거리는 설렘으로 남아있었다.
“(구)교환 형이 맡은 배역인 리현상은 처음 등장과 초반까지는 냉철하고, 여유로운 백조 같은 모습을 보여요. 그런데 제가 맡은 임규남이 남조선으로 탈주한 뒤 그 뒤를 쫓으면서부터는 정말 사자가 먹이를 쫓듯 추격하죠. 한 작품에서 그렇게 온도 차가 심한 모습을 보여주니 배우로서도 구교환이란 사람에 치일 수밖에 없는데, 인간으로서도 교환 형이 너무 재미있고 천진난만하다 보니 제가 더 형을 따르면서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도굴’(2020) 이후 이제훈의 4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탈주’는 희망을 위해 남한으로의 탈출을 꿈꾸는 북한 최전방 군부대 소속 중사 규남과, 그에게 현실을 직시하고 운명을 순응할 것을 강요하는 보위부 소좌 현상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그린 영화다. 휴전선 인근에서 10년 만기 군 생활을 채운 규남은 라디오 전파로 잡히는 철책 너머 방송을 몰래 들으며 남한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꾼다. 목숨 걸고 지뢰밭을 누비며 찾아낸 안전한 길로 지도를 완성한 뒤, 적당한 때를 노려 탈주에 성공하는 것만이 규남의 마지막 남은 희망이다.
“규남이 지향하는 목적은 너무나 분명하기에 타협점이 없어요. 그곳에 반드시 도달해야만 한다는 거죠. 북한에서 그의 삶을 보면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고, 그저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운명을 받아들인다면 먹고 사는 일은 해결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게 진실로 내가 원하는 것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봐요. 내가 원하는 걸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 기회를 누리는 삶을 산다는 게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배우로서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정말 목숨을 걸고 했거든요. 집안이 풍족하지도 않았고, 제게 기대하는 가족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먹고 사는 것이 보장되지 않는 불확실성이 큰 직업을 선택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규남을 연기할 때도 인간 이제훈으로서의 삶을 투영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목숨을 건 탈주 계획은 이를 눈치채고 먼저 탈주를 시도한 하급 병사 동혁(홍사빈 분) 탓에 물거품이 되고, 규남은 그를 말리려다 함께 탈주병으로 체포된다. 즉결 처분을 받을 위기에 처한 규남을 구한 것은 어린 시절 그와 인연이 있던 보위부 소좌 현상이다. 현상의 조작에 규남은 탈주병을 체포한 ‘노력 영웅’으로 뒤바뀌어 사단장 직속 보좌의 자리에 오르지만, 자유와 희망을 버린다면 체제 속 안락함을 보장하겠다는 현상의 유혹에도 규남은 결국 탈주를 택하고 현상 역시 물러설 길 없는 추격을 시작한다. 이처럼 러닝타임 내내 직선으로 이어지는 탈주 속 끝없이 평행선을 달려야만 하는 이 두 사람의 서사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역으로 관객들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시켰다.
“규남은 탐험가 아문센의 위인전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준 사람이 현상이에요. 비록 실패할지라도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에 가서 살고 싶단 순수한 마음이 들게 만들었던, 그 마음의 씨앗을 제시해준 인물이었던 거죠. 현상도 과거 음악을 사랑하고 피아노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지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지금의 현실을 사는 중이에요. 그렇기에 목숨을 걸지언정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규남을 쫓고 또 바라보며 자신을 투영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단순히 쫓고 쫓기는 관계가 아니라 맞닿아 있는 지점이 매우 끈끈하게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래서 그 둘의 관계가 더 특별한 거고요.”
쫓는 입장인 현상보다 그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면서 꿈까지 거머쥐어야 하는 규남의 어깨가 훨씬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기도 했다. 그를 연기한 이제훈 역시 “‘탈주’만큼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작품을 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먹을 것이 변변찮은 최전방 부대에서의 10년 동안 군 생활로 인해 형편없어진 몸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부터 빗발치는 총알을 피해 풀밭과 진흙 늪을 내달려야 했던 당시를 생각하면 두 번은 다시 못할 일이라는 게 그의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다.
“규남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며 정말 극단적인 식단조절을 했어요. 하루에 기본적으로 단백질 셰이크 정도만 마셨던 것 같아요. 촬영하다 에너지를 다 써서 눈앞이 핑핑 돌 때는 당분과 물을 섭취해야 했지만 그때마다 ‘이게 맞나’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규남이는 먹을 게 없으니까요. 연기하는 순간과 규남이 처한 상황 사이에 괴리감이 없게 하려면 저 자신을 더 갈아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달릴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여기서 잡히면 끝’이란 생각을 촬영마다 생각하며 저를 온전히 던졌죠. ‘탈주’만큼 저를 더 한계에 몰아붙이는 작품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없는 것 같아요(웃음). 이 작품이 저를 진짜로 몰아붙이는 마지막 작품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후회 없이 저를 내던졌습니다(웃음).”
스스로를 후회 없이 내던진 작품인 만큼 크랭크업부터 꽤 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제훈에게 규남은 공감과 애정이 한데 섞인 묵직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불확실한 미래의 막연한 희망일수록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공통점이 규남을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도록 했다고. 인간 이제훈이 배우 이제훈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18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좇아야 하는 길을 쭉 따라가고 싶다는 그는 ‘탈주’의 관객들에게 “각자가 생각하는 것이라면 어떤 목표든 도전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힘주어 말했다.
“저는 아직도 계속 제 목표를 향해 꿈꾸는 중이에요. 제가 그걸 이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전혀 없거든요. 그저 저를 봐주신 관객 분들이나 시청자 분들께 계속해서 끊임없는 행복과 좋은 기억을 안겨드리고 싶다는 목표 하나만으로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고 싶어요. 그런 만큼 다른 사람들도 각자가 생각하는 목표가 어떤 것이든 꼭 도전하셨으면 좋겠어요. 설사 달성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곳까지 나아가는 그 과정이 중요한 거니까요. 그렇게 솔직하고 후회 없이 목표를 향해 달렸다면 스스로 박수 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게 인생을 사는 힘이 될 거예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